다양하고 소소한 장면들을 위하여 - 구미리, 월평리, 봉계리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3-09 00:00:57
  • -
  • +
  • 인쇄
씨네울산-울산365경
▲ 구미리 민속박물관 단지들. ©이민정

 

▲ 구미리 민속박물관장이 수국으로 가득했던 지난봄 정원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정

 

▲ 필세(筆洗), 붓 씻는 그릇. ©이민정

 

▲ 물레와 붓글씨. ©이민정

 

▲ 호국형제로에 있는 대형 개인 무덤가의 잘린 고목. ©이민정

 

▲ 호국형제로에서 보이는 신축주택단지. ©이민정

 

▲ 월평리 삽다리못. ©이민정

 

▲ 삽다리못을 끼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말 일곱 마리가 있다. 말들이 김교학 작가를 좋아했다. ©이민정

 

▲ 두동농동단지와 봉계산업단지 건너편 풍경. 아파트가 거슬린다. ©이민정

 

▲ 두동농동단지와 봉계산업단지 전경. ©이민정

 

1월 중순 경 갈 예정이었던 봉계리를 이제야 다녀왔다. 지난 번 마무리 지점인 주원마을회관에서 출발해 구미리, 월평리, 봉계리를 찍었다. 초대형 지도와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보는 것보다 발길을 이끄는 곳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봉계교에서 경상북도를 알리는 표지판과 뒤편의 울산광역시 표지판을 봤을 땐 뿌듯하기까지 했다. 천전각석로와 인보구미로에 절과 무당집이 많았다면 은편리에서 봉계리까지 이어지는 두동로에는 신축 주택단지와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박물관 등 볼거리들이 소소하게 있어 찍을 오브제들이 제법 있었다.


지도상으로 못[沚]이 제법 많아서 이번 촬영에는 못과 주변 풍광을 주로 담으려 했다. 가는 길에 왼편으로 커다란 단지들이 하얀 칠을 뒤집어쓰고 도로가에 줄지어 있기에 단지만 찍고 가자 했는데 오른편을 보니 민속박물관이라는 입식 표지판이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요강을 층층이 쌓아둔 것과 요강과 함께 쌓여 있는 탕기였다. 오줌통과 약통이라니.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에 전구가 여러 개 달렸고, 빈틈없이 여기저기 손길 닿은 흔적들이 있었다. 잘 자란 소나무에 매달린 풍경(風磬)과 전구, 넝쿨 조명, 이런저런 소품들. 안에서 순백발의 노인과 희끗희끗한 장발의 노인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허락도 안 받고 얼른 두 사람을 찍은 뒤 사진 찍어도 될까요, 라 묻고 몇 장 더 찍었다.


관장이라 소개한 장발의 노인은 안으로 들어와 차 한 잔 하고 가라 했다. 작은 건물 내부에는 이런저런 작가들의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아주 오래된 물건들도 많았다. 100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예컨대 물레라든가 필세(筆洗), 간장 항아리 같은 것들도 있었다. 관장은 오래된 것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고, 십수 년 전 이 터를 구입해 은퇴 후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다고 한다. 올해 칠순인 관장은 목공예, 서각(書閣)을 해온 지 제법 됐고, 작품도 많았다. 밖에 임시로 지어 놓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목침(木枕), 재봉틀, 농기구 등도 가득 차 있었다. 관장은, 공예품 매장은 민속품 판매만 하는 곳이고, 민속박물관은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한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만큼의 물량을 보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당에는 약(藥)절구, 절구통, 석재 사료통, 떡판, 전통 다리미 등 수 많은 물품이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관장은 이곳에서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볼거리와 체험을 통한 삶의 기쁨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넓은 뒷마당은 올봄에 수국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한다. 지난봄 앞마당에 가득했던 풍경 사진을 보여주며 봄이 오면 꼭 다시 방문하길 요청했다.


민속박물관을 나와 300미터쯤 가니 ‘그린야생화효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한때 효소 만들기가 유행해서 마트에 흑설탕이 동나곤 했다는데, 별별 효소를 다 들어 봤지만 야생화 효소는 처음 봤다. 무작정 마당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았다. 300평 남짓한 곳의 입구에는 작은 구옥(舊屋) 한 채가 있고, 바로 옆에는 예전 서울역 앞에 있었던 ‘자유의 집’ 같은 작은 건물이 있다.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제법 관리를 잘한 듯 보였다.


건물의 미닫이문을 열고 계시냐 물으니 기세등등한 60대 초반의 여성이 나온다. 처음엔 무척 경계하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입춘부터 단오 전까지 야생화를 채취해서 발효시키고, 차로 마시거나 약으로 마실 수 있게 가공한다. 단오가 지나면 꽃이나 열매로 영양분이 다 빠져 약으로 쓸 수 없다고 했다. 땅의 영양을 가득 머금은 지금이 가장 약효가 좋단다. 일종의 기치료 같은 것도 하는 모양인데, ‘회장님’들이 ‘약’을 사기 위해 왔다가 쉬어가는 황토방도 여럿 있었다. 솔직히 여인숙 같은 느낌이었다. 인삼보다 훨씬 더 큰 도라지로 담은 술병도 수십 병 있었고, 가공 중인 야생화 봉투도 최소한 수백 또는 그 이상 돼 보였다. 이분이 강조하기로, 자신은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마케팅하며 인터넷이나 광고는 일절 하지 않는, 말하자면 신뢰가 무척 높은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입소문 마케팅은 객관적 검증이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 구미리 민속박물관. ©김교학

 

▲ 구미리 민속박물관 정원의 요강과 탕기(湯器). ©김교학

 

▲ 구미리 민속박물관장과 대화중인 필자. ©김교학

 

▲ 구미리 민속박물관의 간장 담는 그릇. ©김교학

 

▲ 구미리 민속박물관 창고에 있는 목침(木枕). ©김교학

 

▲ 구미리 민속박물관의 다리미. 왼쪽은 한복용, 오른쪽은 양복용.

 

▲ ‘그린야생화효소’의 대형 솥. ©김교학

 

▲ 봉계교 북단. 울산과 경주의 경계선. 표지판부터 울산광역시. ©김교학

 

▲ 월평리 도로. ©김교학

 

▲ 호국4형제로. ©김교학

구미월평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멋진 길들이 많다. 굽이진 길들은 나이 먹은 가로수들로 풍경이 멋진데, 대체로 구간이 짧다는 점이 아쉽다. 박제상유적지 쪽으로 가면 ‘호국4형제로’가 나온다. 검색해보니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4형제가 전사(戰死)한 것을 기리는 길이다. 2005년이 돼서야 추모사업회가 결성됐는데, 유족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고 한다. 아시아 35억 인구 중 한 집안의 네 형제가 유공자인 것은 이민건, 이태건, 이영건, 이승건 형제가 유일하다고 한다. 6형제 가운데 첫째, 둘째, 셋째는 한국전쟁에서, 넷째는 월남전에서 전사했다. 비장한 스토리텔링이 있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


가끔 경산에서 일찍 퇴근할 때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이면 국도로 울산에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인상 깊었던 곳이 월평리의 삽다리못이다. 운전석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제법 그럴싸했는데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니 눈(目)과 심상(心想)만큼 장면을 잡아내지 못한다. 아쉬운 대로 황량한 ‘두동쉼터’를 한 컷 담고 삽다리못을 끼고 난 길로 계속 걸어가니 저 멀리 길이 끝나는 지점에 건물 두 채가 있다. 롱숏으로 한 컷 찍고 렌즈로 바싹 잡아당기니 뭔가 움직이는 생명체가 보였다. 낙타 같은 게 어른거려서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세상에, 말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가까이 갈수록 계속 늘어나더니 일곱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예전 고양시에서 촬영차 말 농장에 갔다가 말이 얼마나 영리하고 친인간적인지, 얼마나 감정이 섬세한 동물인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잠시 말을 탄 적도 있지만 육교도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내가 즐길 스포츠는 아니라서 그만뒀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한 마리씩 다가오는 모양새가 괜스레 반가웠다. 김교학 작가가 가까이 다가가니 번갈아 가며 머리를 들이밀고 친한 척을 한다. 어슬렁거리던 한 마리가 저쪽으로 가서 푸지직 똥을 싸는데, 덩치만큼 양과 떨어지는 기세가 풍성하고 날랬다.

 

▲ 구미리 민속박물관 뒤쪽 정원 팔각정 위의 단지 꼭지. ©이영순

 

▲ ‘그린야생화효소’. 장은 볕이 드는 곳에, 효소는 그늘진 곳에서 발효시킨다. ©이영순

 

▲ 구미월평로 도로가에 있는 당산회관. ©이영순

 

▲ 월평리 삽다리못에 있는 두동쉼터. ©이영순

 

▲ 구미리 민속박물관 정원 오브제. ©이영순

 

▲ 구미리 민속박물관 뒤뜰. 봄이면 수국으로 가득 찬다고 한다. ©이영순

 

▲ 구미리 민속박물관 뒤뜰에 전시된 자전거 오브제. ©이영순

 

▲ 구미리 야생화 효소 판매점 정원에 있는 구옥(舊屋). ©이영순

 

▲ 구미리 민속박물관의 소형 펜탁스 카메라. ©이영순

이번에는 반드시 울산 경계선까지 가야 한다는 다짐으로 북쪽을 향했다. 지도를 보며 회의할 때 여기는 반드시 찍어야 한다는 두동농공단지와 봉계산업단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온산공단 야경만큼의 감동이 없었다. 도리어 주변의 크게 펼쳐진 논과 간만에 쭉 뻗은 도로가 더 반가웠다. 벼가 제법 자랐을 때 푸르를 이 길은 정말 멋질 것이고, 누렇게 익은 들판 또한 장관일 것이다. 논을 가로질러 산자락 쪽으로 가서 자세를 납작하게 낮춰 보니 제주도 같은 느낌의 언덕이 있었다. 양지바른 곳이라 벌써 파릇파릇한 잎사귀들이 나기 시작해 제법 예뻤다만 툭 튀어 오른 아파트가 거슬렸다. 김포 장릉의 신축 아파트 단지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려나.


마지막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이정표가 보이는 봉계교에 도착했다. 반대편에서 보니 울산광역시라고 돼 있다. 멕시코 국경도 아닌데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양쪽에서 리버스숏으로 담았다. 봉계교 남단 쪽에는 이런저런 조형물을 설치해 놨던데, 울산 중구를 포함해서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과 불협화음의 조형물들이 꽤 많이 보인다. 전라도의 어느 예술인마을은 일개인이 예술인들을 위해 조성했는데, 예술인들은 왕성한 활동을 하며 마을을 멋지게 꾸몄다고 한다. 관(官)에서 집행했을 저 거대 예산들을 차라리 지역주민들이나 지역예술인들에게 일련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직접 지원해주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문화예술정책은 공무원이 아닌 예술정책 또는 예술경영 전문가가 맡는 게 옳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 구미리 민속박물관 전경. ©손방수

 

▲ 구미리 민속박물관 정원의 낡은 세발자전거. ©손방수

 

▲ 구미리 민속박물관 정원의 고목(古木). ©손방수

 

▲ 화장실 외벽에 걸린 명화(名畫). ©손방수

 

▲ 새순이 돋는 나무. ©손방수

 

▲ 구미월평로. ©손방수

드디어 반구대에서 시작해 봉계리 여정을 끝냈다. 다음 주부터 30주 동안 울산저널 기획기사의 일환으로 미리 선정해둔 30곳을 다닐 예정이다. 남구의 장생포, 신화마을 예술인촌, 신선산 수변공원, 남산사 동굴피아, 삼산동 대로, 남구 공원묘지 등 6개소, 중구의 입화산 캠핑장, 성혜마을, 학산동 한국건강관리협회, 학성왜성 등 4개소, 동구의 서부동 판자촌, 몽돌 해녀마을, 남목 옥류천, 남목마성, 꽃바위 공단, 울산 수목원과 봉수대 등 6개소, 북구의 강동 화암 주상절리, 매곡-마우나 길, 박상진 호수공원, 관문성 등 4개소와 1건의 인터뷰, 울주군의 반구대로, 온산공단, 온산의 목도와 춘도, 인보리 선필공소, 신불산 군립공원 단조성터, 영남알프스 길, 보삼마을, 작천정 별빛야영장, 들꽃학습원 등 9개소다. 드론 촬영과 영상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 영화 로케이션 장소 헌팅을 주목적으로 하고, 장소의 의미와 역사 등 콘텍스트를 함께 다룰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


글 이민정, 사진 이민정, 김교학, 이영순, 손방수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