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20-06-26 17: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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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문화진흥원, 백양사 주최·주관
6.25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 위로
25일, 울산시민 번영과 안녕 위한 국태민안 수륙대재 봉행
▲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리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전후에 울산에서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2020년 국태민안 수륙대재가 25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통도사) 소속 울산 백양사에서 열렸다. ⓒ이기암 기자
 

[울산저널]이기암 기자=6.25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리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전후에 울산에서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2020년 국태민안 수륙대재가 25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통도사) 소속 울산 백양사에서 열렸다. 수륙대재는 국가 무형문화재 제125로 바다(물)와 육지에서 외롭게 죽어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일체 유주무주 고혼들의 넋을 위로하고 제도하는 불교전통의례다. 

 

특히 백양사는 1960년에 울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들의 합동묘와 추모비가 조성된 곳이다. 그러나 이후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합동묘와 추모비가 이유 없이 사라졌고 오늘 수륙대재는 60여 년 만에 외로이 사라져간 영혼들을 달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식순은 삼귀의례, 육법공양, 108헌다례, 국민의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태화문화진흥원 이사장 산옹스님의 봉행사 순으로 진행됐다. 

 

사단법인 태화문화진흥원 이사장 산옹스님은 “오늘은 6.25 70주년으로써 임진왜란과 건국 이래 순국선열, 호국영령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외로운 모든 이들에 대한 천도대제를 봉행하게 됐고 특히 울산 대운산 일대에서는 870여명의 유해가 발굴됐고 이 분들의 주검은 백양사 앞 함월루 주변 가묘에 모셨다가 어느날 어디론가 사라졌다”며 “870명 중 이름이 있는 분이 415명, 이름이 없는 분이 455명, 유족이 없는 분이 210명”이라고 말했다. 산옹스님은 “오늘은 이분들의 70년 한(恨)을 풀어드리고 그 유족들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이 됐으면 한다”며 “근래에 와서 울산에 그분들의 추모비가 건립되고 대법원의 보상 판결 등 그동안 묶여있던 매듭도 풀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은 “울산 보도연맹 사건 등 의미도 모른 채 희생당한 분들의 억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오늘 장대비가 쏟아지는 중에도 스님들과 불자들이 정성으로 희생자들을 위로했고, 당시 외로이 죽어간 모든 이들이 극락왕생 하셨을 것”이라고 설했다.

조종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유족회 회장은 “백양사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들의 유해가 가묘돼 인연이 많은 곳으로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함월산 봉은 침묵으로 세월을 이겨냈다”며 “태화문화진흥원과 백양사에서 주관·주최해 외로운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시고 나라의 평안과 울산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륙대제를 봉행해주니 유족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해마다 체육관을 빌어 위패를 모시고 지내왔지만 현 시장님과 시의회의 도움으로 위령탑을 세우게 돼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송철호 울산시장도 “오늘 이 비는 오랜 시간 울산지역을 외롭게 떠돌던 영혼들의 위로를 받고 흘리는 고마움의 눈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천도재를 계기로 원혼들이 극락정토세계로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추도했다.

 

▲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리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전후에 울산에서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2020년 국태민안 수륙대재가 25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통도사) 소속 울산 백양사에서 열렸다. ⓒ이기암 기자

 

▲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리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전후에 울산에서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2020년 국태민안 수륙대재가 25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통도사) 소속 울산 백양사에서 열렸다. ⓒ이기암 기자


이수진 전 회장 “울산사건도 희생자유족 손 들어주는 판결 나올 것으로 기대”
“전국적으로 유족들의 움직임 많은 것으로 알아”


천도재에 앞서 울산언론발전을 위한 모임(상임공동대표 : 박창홍, 김정호, 최근영)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수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전 회장은 “울산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도연맹 사건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며 그동안 왜곡도 많아 유족들의 서러움이 컸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기록영상에 의하면 당시 보도연맹에 붙들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박재갑씨의 경우 15~16살의 어린나이에도 가입이 됐는데 그때는 가입하지 않으면 요즘말로 왕따당하는 분위기도 있었다”며 “다행히 박 씨는 미국의 처형금지명령이 내려져서 살아 돌아온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 유족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에 대해 이 회장은 “울산사건도 대법으로 올라가서 다시 파기환송 됐으며 위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국회가 정상화되면 그에 따른 법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며 “전국적으로 유족들의 움직임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에 소멸시효 적용하는 것은 위헌

한편 울산 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8월께 군·경이 보도연맹 소속 민간인 870여명을 이념상의 이유로 울주군 온양읍 대운산과 청량면 반정고개에서 집단 총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진실이 규명되고 최근 대법원에선 희생자 유족에 대한 보상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9일 ‘울산 보도연맹 사건’ 피해 유족들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울산 보도연맹 사건이 이승만정권의 민간인 집단학살이었다는 사실관계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확인된 후 유족들은 2016년 소송에 나섰지만 1·2심에서 패소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민법)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있은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하는데 전심(1심과 2심)은 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60년 전의 일이고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도 과거사정리위 결정이 나온 때로부터 9년이 지난 뒤였다면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관련 민법 조문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이 있었는데 위헌결정의 요지는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에 한해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법원은 울산 보도연맹 학살 사건 피해 유족 43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 사단법인 태화문화진흥원 이사장 산옹스님은 “오늘은 6.25 70주년으로써 임진왜란과 건국 이래 순국선열, 호국영령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외로운 모든 이들에 대한 천도대제를 봉행하게 됐으며 특히 울산에서는 870여명의 유해가 발굴돼 이 분들의 주검은 백양사 앞 함월루 주변 가묘에 모시게 돼 백양사와 인연이 깊다”고 설명했다. ⓒ이기암 기자


<다음은 울산 언론발전을 위한 모임에서 진행한 이수진 유족회 전 회장 인터뷰내용>

 

이수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전 회장 인터뷰.
(언론발전을 위한 모임 박창홍, 김정호 상임공동대표 진행)


박창홍 울산 언론발전을 위한모임 상임대표(이하 박)=유족들도 그동안 말하기 꺼려왔고 피해의식이 트라우마처럼 있었기 때문에.. 우리 외할아버지도 명단에 올랐다가.. 외솔 최현배 선생이 이 앞에 위령비도 세웠는데 어딘가에 보관돼 있는 걸로 알아..

이수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전 회장(이하 이)=보도연맹 사건은 한국근대사의 비극이다. 왜곡도 많이 되고..

박=울산지역에만 800여구 정도 시신이 있는 걸로 안다.

이=유골수습은 870여개 정도다. 희생자로 결정된 것은 407명으로 알고 있다. (이후 417명으로 추가됨)

박=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남겨놔야 할 것이다. 유족들 모두 각자 밝히기 힘든 이야기들이 있을 것.. 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본다. 이것도 우리의 역사의 하나다. 당시 보도연맹 가입할 때 인원할당량을 정해서 적으라고 하기도 했다는데.. 한 마을 인원의 3분의 1정도가 적기도 했다고..

이=박재갑씨라고 그 분이 보도연맹에 붙들려갔다가 살아온 사람이다. 기록영상에서의 그 분 말에 의하면 그 당시에 전부다 그런 조직에 가입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이가 어린데도 가입하고.. 요즘 말로 안 들어가면 왕따 당하는 그런 분위기속에서 자기도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에 보도연맹원을 3단계 A급, B급, C급으로 나눴다. A급은 일찍 희생을 당했고 차례로 B,C급도 희생당했다. 당시 박재갑씨는 나이도 어렸는데(15~16살로 추정) 한국에서 처형이 마구 진행되던 중 미국이 처형금지명령을 내려 살아 돌아온 케이스였다.

이 “희생자명부 누락된 부분많아.. 이것도 밝혀야 할 문제”

=얼마 전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는데? (중대한 인권침해에 관한 청구권은 소멸시효 적용 안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대법원은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유족측에 유리한 결정을 한 것)

이=원고가 42명이다. 그쪽 유족 부회장을 만났는데 그 분들도 서울에 국가문서보관하는 곳에다 공개요청을 해서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분들이 청구한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됐다. 연말 내에 판결이 날 것으로 보인다. 울산사건도 위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나 본다. 전국적으로 유족들의 움직임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국회가 정상화 되면 그에 따른 법이 만들어지지 않겠나.

박=과거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이 찾아오고 했는데.. 언론에는 다르게 비춰져서 경계심을 가졌다고도 하는데?

이=사실 이게 민족의 전근대사의 아픔인데.. 치유할 건 치유하고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또.. 그래서 어디 가면 이 얘기를 잘 안한다. 가족들과 연관된 사람이 있으면 그제야 말을 한다. 이 일들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잘못 알려진 부분도 많고 정치적으로도 이용당했기 때문에 그동안 유족들이 깊은 상처가 많았다. 연좌제도..

박=오늘 산옹스님이 오셔서 천도제를 통해 원을 푸는 식을 했는데 올 11월에 위령비도 울산시에서 만들어진다고 알고 있다. 내년 위령제를 11월에 같은 날이 지내는 거 같은데, 울산 시민들은 아직도 대다수가 잘 모르는 거 같다. 회장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게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니까 여기 희생된 분들 바라보는 관점이 좀 변화되어야.. 그 분들이 무슨 이데올로기가 있어서 희생된 것도 아니고.. 무고하게 희생되지 않았나. 오늘도 백양사 스님께서 울산 지역의 평화를 위해 유족들에게 하나의 비용도 부담안주고 천도를 해주겠다고 하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박=과거 박정희 정권 때 실제 870여구 시신을 여기서 야밤에 군사작전 하듯이 유족들 동의도 안 구하고 삼산동일대에서 일주일동안 태웠다고 하는데, 결정문에 나온 희생자 수와 차이가 나는 건 왜인가?

이=결정문을 받았는데.. 전에는 희생자명부 전체를 다 못 봤고 아마 누락된 부분이 있지 않겠나.. 그것도 밝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 이수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전 회장은 “울산지역의 보도연맹 사건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며 그동안 왜곡도 많아 유족들의 서러움이 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얼마 전 대법원에서 유족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에 대해 “울산사건도 대법으로 올라가서 다시 파기환송 됐으며 위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국회가 정상화되면 그에 따른 법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기암 기자

 

이 “당시 옥교동 사무실 앞 대공분실로 수시로 불러다녀.. 운동한 것도 아닌데”

박=회장님은 자라면서 보도연맹과 관련돼 부친에 대한 얘기를 언제 들었나?

이=울산농고가 모교인데.. 그 당시에는 입 밖에도 못 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옥교동 사무실앞 대공분실로 불려다녔다. 내가 별도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유족들 일부 중에도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고등고시 1차를 합격해도 2차를 몇 번을 떨어진 걸로 안다. 공무원시험 합격해도 연좌제 때문에.. 젊을 때는 이런 것들을 하소연할 때도 없고.. 결국 모든 것은 사필귀정 아니겠나. 온 국민이 이런 것들을 보듬어야..

박=보도연맹과 관련 돼 관심을 가지고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영화를 하는 분들도 있고.. 지금 정부가 들어와서 다시 관심이 생겨 이런 행사를 하게 됐는데.. 일찍부터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면 이 문제는 정권의 상황을 떠나서 역사를 바르게 화합의 길로 가기 위해서 이것은 사회 모든 시민들이 같이 알고 이해를 해야..

박=바람이 있다면 이런 것을 통해 위령제를 통해 마음의 응어리도 풀고해야 할 것이다. 유족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 분들이 다 돌아기시기 전에.. 유족분들끼리 적극적으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런 부분에 대해 같이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유족들도 마음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우리 사무실에 와서 그제서야 억눌린 피해의식 때문에 조금씩 입을 떼지.. 앞으로는 다 같이 모든 걸 풀어야 발전할 수 있는 것..

박=이런 행사(천도재)는 그 전에 있었나?

이=여기서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오신 백양사 스님께서 여기 오니 기운이 안 좋고 또 비극이 있어서 어떻게 하든 기운을 맑게 해야 한다고 해서.. 유족들에게 부담감은 안주고 같이 하자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 왔다.

배문석 울산노동역사관 사무국장(이하 배)=유족회 분들 많이 오셨는지?

이=일찍이 9시부터 왔다가 가신 분들도 있고..

배=울산 기상대 옆에 위령탑 세우는 공간 마련한다고 할 때 선생님도 계셨는지?

이=예전부터 시에서는 유족들이 부지를 사면 지원비를 주겠다고.. 그래서 대운산으로 갔다가 또 정토사에도 갔고 심지어 백양사에도 와서 보고..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와 협조가 안 돼 다가 이번에 송철호 시장님이 되면서 시에서 기상대 밑에 위령탑을 세우게 됐다.

배=자리가 외진 곳에 있어서.. 좀 서운하시지 않나?

이=괜찮다. 시장님께서 또 협조를 잘 해주시고 해서..

배=10월에 위령탑 완공을 목표로 알고 있는데?

=내가 알기론 11월로 알고 있다. 원래 11월 초에 항상 위령제를 지내는 걸로 알고 있다. 날짜가 정해진 게 있나?

이=날짜는 11월 첫째 주에 울산시장님이 참석하시니까 시장님 일정을 맞춰서..

배=유례가 있는 날은 아니다. 왜냐면 첫 위령제는 1월에도 했었고.. 그동안 9번의 위령제를 지냈는데, 올해는 좀 늦어도 위령탑이 조성되면 거기서 할 것이다. 2004년도에 도법스님 칠상사 주지스님 오셔서 이 앞에서 천도재를 한 번 했었다. 과거사위원회 조사하기 전이었다. 지금 과거사 조사위가 하고 난 다음에 다시 유족회가 새롭게 꾸려진 셈..

배 “소송참여인원은 200여명, 과거사위 명단의 절반정도만 참여”

배=백양사에서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유해가 백양사에 안치됐기 때문.. 대법당에 관을 개별적으로 유골들을 봉안해 놨다. 처음에는 유골을 길바닥에 놔둔 게 아니라 백양사에 안치했다가 5미터 규모의 합동묘를 만들어서.. 한 꺼 번에 봉하기로 결정.. 그때가 4.19일어나고 60년 8월 27일인가.. 한 여름이었을 것.. 5미터 정도 거의 왕릉정도의 규모로 합동묘를.. 사진이 유일하게 한 장 남아있다. 이번에 재판에서 보상된다고 하는데.. 과거사위 새롭게 만드는 게 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진 과거사위에서 울산에서 못했던 분들을 추가로 조사를 요청할 수가 있다. 과거사 위원회 조사 전에 거창이나 전라도에서 먼저 했던 적이 있지만 다 패소했고.. 울산이 첫 승소사례다.

이=서울 서초동까지 11번 정도 다녔다. 판결이 나는데 4년이 걸렸다. 결론은 국가가 잘못했으니까 희생자, 배우자에게 각각 얼마씩 배상해준다는 건데..

배=배우자는 7000만원 정도, 유족에게는 4000만원 정도의 규모인데.. 변호사비용이나 지금까지 아픔의 상처로 보면 택도 없는 금액..

이=그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상으로 직접 울산시민여러분에게 사과문을.. 우리가 돈을 요구하기 위해 소송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유족들은 수 십 년간 너무나도 힘들어서 돈 한 푼이라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들도 있었던 것 같다.

배=소송에 과거사위원회 조사결과에서 학살당했다고 판정받은 분들 전부 참가한 것이 아닌걸로 안다.

박=유족회에 얘기해서 추가조사가 가능하고 한 번 이겼기 때문에 앞으로도 열심히 단체에 나오라고 이야기를 하셔야 할 것..

이=희생자수는 870여명이지만 소송에 참여한 것은 200여명 정도 밖에.. 확정된 분들이 407명인데 소송인원은 반 밖에 안 된다. 그 당시는 가정이 없어 다들 흩어져서.. 지금은 연락이..

배=407명에서 추가로 좀 더 인정돼 과거사위에서 명단이 417명이 최종적으로 나왔다. 그 중에 소송에 참가한 분들이 절반인 것이다. 그 외 추정되는 나머지 분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은 시 차원에서 나서줘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리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전후에 울산에서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2020년 국태민안 수륙대재가 25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통도사) 소속 울산 백양사에서 열렸다. ⓒ이기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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