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이 아닌 렌즈 바깥의 세상을 보자”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20-10-08 17: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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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선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초대회장 ⓒ이기암 기자

 

[울산저널]이기암 기자=요즘같이 바쁜 시기에 현대인들이 독서를 생활화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옛날과 달리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독서를 할 때 e-book을 많이 이용한다. 이처럼 생활 전 분야에 걸쳐 개인화, 스마트화돼 있는 요즘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이다. ‘망원경’은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뛰어넘어 혼자서는 읽기 힘든 난해한 책들을 선정해 다 같이 읽음으로써 나와 타인이 섞이는 ‘집단지성’을 추구하는 모임이다.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장점,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최미선 망원경 초대회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울산저널 이기암 기자(이하 이)=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보니 철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인문학을 논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용어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처음 일반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가 인문학을 접하는 데 있어 중요하지 싶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인문학에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명 부탁드린다.


최미선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초대회장(이하 최)=인문학이라는 분야를 접하지 않은 분들이 우리 독서토론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도 최대한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먼저 인문학협동조합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수년 전 친한 지인이 내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런저런 상담을 해왔다. 처음엔 어느 정도 상담을 해주다가 이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딱히 치료법도 없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 한계가 있는 거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같이 모색해보자고 했고, 그때 책을 같이 읽자고 제안했던 것이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이 탄생한 모티브가 됐다.

 
이=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책을 같이 읽게 됐다는 얘기인가?
 

최=모티브가 좀 단순하긴 하지만 그땐 그게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그때 처음 선택한 책이 좀 어려웠던 니체 책이었는데 그 책은 내가 삶을 끌어나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됐던 책이었다. 이후 동조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좀 더 전문적인 식견을 넓히고 싶어서 울산대 철학과 교수님께 강의도 부탁하게 됐다. 그렇게 점차 영역을 넓혀가게 됐고 지금의 인문학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이=보통 일반인들이 인문학을 접하기 쉽지 않은데, 대학교수님께 강의도 부탁했다니 의지가 대단했던 것 같다.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만의 장점을 얘기한다면?
 

최=우리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하면 첫 번째는 책 선정을 잘한다는 것이다. 우린 처음부터 난해한 책을 골라 읽었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책을 선정한 것이다. 누구나 다 쉽게 다 읽을 수 있는 책을 읽는 것보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책을 선택하고 그 책을 다 같이 읽은 후 토론하면 성취감이 남다르다고 해야 하나. 초창기 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책들을 선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전략적으로 잘 맞아 떨어져서 우리 독서클럽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나와 타인이 섞이는 ‘집단지성’이 중요
뛰어난 한 명이 아닌 동반성장 시스템


이=기자인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보통 어려운 책은 한 번 읽으면 이해가 안 되지 않나? 여러 번 읽는다는 얘기인지?
 

최=그렇다. 어려운 책은 혼자 읽어서는 이해도 안 되고 또 자기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그런데 어려운 책을 여러 명이 같이 읽게 되면 ‘집단지성’이라고 해서 자기가 이해한 것과 타인이 이해한 것이 섞이는 과정에서 이해의 폭이 확 넓어지는 것이다. 분명 모든 사람이 같은 책을 읽었다 해도 그에 대한 해석차는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어야만 비로소 하나의 책을 여러 각도로 분석해 읽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조미정 강사는 지난 9월 22일 울산강남고등학교에서 독서동아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2회에 걸쳐 카프카의 <변신> 특강을 진행했다.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제공.


최=또한 우리는 시스템화를 잘 시켰다. 다른 독서클럽도 마찬가지겠지만 ‘뛰어난 한 명의 영웅’이 이끌어가다가 그 사람이 사정이 생겨 모임에서 빠져버리면 그 조직은 와해돼 버린다. 우린 최대한 그런 것을 피하려 했다. 한 명의 뛰어난 사람이 아닌 다 같이 성장하고자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시스템 구축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는데 그렇게 1~2년 흐르다 보니 부류가 조금씩 갈라졌다. 책을 계속 읽어온 부류, 막 책을 읽기 시작한 부류, 어쩌다 생각나면 나오는 부류 등으로 나뉘었다. 각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서 대화하는데 사용하는 용어도 서로 다르고 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화하는 데 어려워하더라. 그래서 각 부류 사람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강의에도 커리큘럼이 있듯이, 시스템 구축 후 부류마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얘기인가?
 

최=그렇다. ‘훌쩍’ 프로그램의 경우는 입문자를 위한 프로그램인데 처음 1년은 8권 정도 선정해서 입문자들과 같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존 망원경 회원들에게 책을 한 권씩 지정해서 같이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 명의 강사가 한 권의 책으로 ‘훌쩍’ 프로그램을 통해 강의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읽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삶에 녹이는 방식들을 만들어냈고 그 노하우를 같이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기존에 스터디해왔던 사람들한테도 계속 동기부여와 성취감을 줘야 했기에 이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었다. 현재 다섯 단계 코스를 만들었는데 1년 동안 한 코스씩 진행한다. 지금은 4단계까지 온 상황이다.
 

이=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이 폭발적으로 부흥했던 계기가 있다면?
 

최=망원경을 만들고 나서 첫해였나. 공식적으로 우리 밴드가 만들어진 건 2014년이었는데 연말이 다가오자 우리도 송년회를 하자고 했다. 보통 송년회라고 하면 밥 먹고, 얘기하고 노래방 가고 하는데 우리는 ‘남들과는 좀 다르게 해보자 해서 소극장을 하나 빌려 콘서트를 하게 됐다. 그런데 그 콘서트 각 코너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1년 동안 책을 읽어서 변화된 내 삶의 모습을 얘기하는 코너도 있었고, 만남 코너라고 해서 둘이 대화하는 코너도 있었다. 또 기타연주도 섞어가면서 두 시간 정도 진행했다. 그때 참여했던 사람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그 콘서트를 본 후 삶이 달라졌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초대받고 온 사람들이 우리 독서클럽에 합류하면서 조직이 더 탄탄해진 거 같다.

“연말에 했던 콘서트, 임팩트 컸던 거 같아”
망원경, ‘안경을 닦고 자신을 돌아보자’는 의미


이=그때 송년회 참석했던 사람들이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인데, 울산에서는 이런 문화가 신선했을 거 같은데?
 

최=솔직히 울산에는 이런 문화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얘기하길 울산 자체가 문화적으로 다양성이 없다고 하는데 대부분 비슷하고 단순한 놀이만 향유하던 모습만 보다가 우리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게 되니 그 임팩트가 컸던 것 같다. 그 콘서트에서 우리가 자랑으로 내세운 것이 만담 코너였는데, 회원 한 분이 앉아서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거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때와 어떻게 대화가 달라질까 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얘기해 나갔다. 

 

▲ 지난 9월 28일 동구 카카오봉봉에서 ‘망원경’ 동구지역 모임이 열렸다. 유현준 작가의 <공간이 만든 공간(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으로 각자의 생각을 나눴다.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제공.


최=아이, 남편, 시부모 문제 등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음을 갖고 와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서로 대화를 시켜버린 거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대화는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대화의 요지를 좀 더 설명하자면 남편이나 시부모, 아이라고 하면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아니고 남이다. 나라는 사람이 먼저 초점이 돼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바꾸려는 것이다. 즉, 아이를 어떻게 바꾸고, 남편이 맘에 안 드는 것을 어떻게 바꾸고, 이런 식으로 상대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다. 근데 콘서트에서의 만남의 대화는 ‘나는 왜 이런 시각으로 남편을 대했을까?’, ‘나는 왜 아이한테 이걸 요구하게 됐을까?’라며 나라는 사람에 대한 소위 자아반성을 하게 됐던 거다. 그런 물음을 시도한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던 것 같다. 

 

이=보통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근본적인 원인을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는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 대화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왜 클럽 이름을 ‘망원경’으로 했는지 알 거 같은데?
 

최=망원경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안경을 닦고 자신을 돌아보자는 의미다. 타인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닌, 내 안경을 닦고 내 도수를 높이는 것이다. 작가 빅터 프랭클의 책을 보면 ‘망원경으로 보면 렌즈 바깥세상이 보이고, 만화경으로 보면 렌즈 안 세상만 보인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만화경으로 본다. 자기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만화경이 아닌 렌즈 바깥의 세상을 보자. 그리고 렌즈 바깥을 보는 가장 큰 도구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인문학은 뭐다?’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해준다면?
 

최=말 그대로 한자로 하면 사람 ‘인(人)’자에 글월 ‘문(文)’자다. 굳이 해석하면 사람의 무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람의 발자취가 있는 것은 모두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하지만 그것이 형상화되거나 음악화되지 않으면 표현이 안 되듯이. 즉, 활자화되거나 형상화된 것들을 가지고 인문학이라고 한다. 근데 그 형상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의 감정은 개인적인 감정인데 이걸 형상화해버리면, 예를 들어 글로 쓴다든지, 음악으로 만든다든지 하면 누구나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구나’하고 보편성을 느끼는 거다. 인문학이란 것은 이런 개인적인 것들을 보편화시켜서 그 보편화 된 것을 보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얘기는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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