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2-01-26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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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겨울방학을 맞이해 애들을 시댁에 2박 3일간 보냈다. 금요일에 인수인계가 이뤄졌다. 애들이 할머니 차에 냉큼 탄다. 아이들 시선에서 할머니는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다. 먹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를 해주시니까. 안 봐도 비디오다. 아이들은 라면과 치킨을 먹을 테고 유튜브를 볼 테고 옷과 장난감을 살 거다. 할머니 지갑이 자주 열릴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도 2박 3일이 주어졌다. 아이들과 같이 못 먹는 거나 가기 어려운 곳을 이럴 때 해봐야 한다. 먼저 퇴근한 남편과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 큰 양푼이에 이것저것 식재료를 담다 보니 많아졌다. 마라탕은 양 조절에서 자주 실패한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이 문 닫을 때 집에 가는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공부하다가 밤 10시에 마친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생 때 심야 한다고 밤 12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야자는 필수고 심야는 선택이었는데 그때도 굳이 심야를 했다. 끝까지 남아서 공부했다는 충만함을 좋아하나 보다.


토요일엔 울산에 새로 생긴 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애들은 미술관을 지루해한다. 같이 가면 언제까지 전시 볼 거냐고 계속 묻는다. 그런 압박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말로만 듣던 행위예술을 처음으로 봤다. 외국인 5명이 새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직이는 걸 지켜봤다. 생소했지만 흥미로웠다. 그들의 손끝이나 시선이 닿는 것까지 다 예술로 느껴졌다.


관람을 마치고 성남동에서 인도 음식을 먹었다. 역시 이때의 선정 기준도 애들과 먹기 어려운 것이다. 블로그 리뷰에서 봤던 세트 메뉴를 시켰다. 그런데 실제로 나온 구성은 두 가지가 빠져서 헐렁했다. 내가 리뷰를 잘 못 봤나. 개인적으로 음식값에 못 미치는 세트 메뉴였다.


다음으로 책과 빵을 파는 서점으로 갔다. 평소 가고 싶었으나 애들과 가기가 번잡스러워 미뤘던 곳이다. 사장님의 안목으로 고른 책들은 남달랐다.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했다. 빵은 안 좋아해서 눈길만 갔지만 책은 손길이 자주 갔다. 서점 입구에 울산페이로 책을 사면 도서관에서 책값을 돌려준다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다음에는 울산페이를 두둑하게 충전하고 와야겠다. 빈손으로 나왔으나 마음만은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집에 오기 전에 자동차매장을 들렀다. 새해를 맞이해 가계 대출을 청산했기 때문이다. 대출 시작 기점으로 4년 5개월의 대장정이 끝났다. 매월 대출을 갚으며 26평 중에 은행 자리가 얼마큼 남았나 생각하곤 했다. 나는 이제 빚쟁이가 아니다. 비로소 집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 이 땅에 태어나 집을 가지게 돼 기쁘다. 내가 집주인이 되다니 얼떨떨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공사 중일 때부터 봐왔던 곳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길 건너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이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던 바람이 이뤄졌다. 단지에 나무가 많아 새소리를 자주 들어 좋다.


대출을 다 갚고 나면 차를 바꾸고 싶었다. 11년 전에 베르나를 600만 원 주고 중고로 구입했다. 그간 베르나는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우리 가족을 태우고 다녔다. 이제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SUV 차로 바꾸고 싶어서 매장에 갔더니 14개월을 기다려야 한단다. 아직 계약한 것도 아니니 베르나가 2년은 더 수고해줘야겠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2박 3일간 잘 보냈다. 애들은 아예 할머니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후기가 좋았다. 아이들을 며칠 맡길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나도 요정 같은 할머니가 되는 날이 오리라.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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