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김미진 울산형마을교육공동체 TF팀장 / 기사승인 : 2019-01-30 17: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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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내가 어릴 적에는 ‘마을’이란 말을 안 썼고 ‘동네’라고 했다. 흔히들 동네는 마을에 비해 행정적 용어로 많이 쓴다고들 하지만, 내 나이 또래들의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 ‘마을’이 살아있었다. 엄마가 저녁을 하시다가 옆집에 가서 간장이나 소금을 좀 얻어오라고도 하셨고, 갑자기 쌀이 떨어졌는데 돈이 없을 때는 동네 쌀집에 가서 외상으로 쌀을 사오는 심부름도 하곤 했다. 남의 집 자식이라도 학교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겐 (조금은 시기도 있었지만) 동네 어른들이 제 자식 같이 기특해 하시곤 했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싸움이 나곤 해도 동네 어른들 눈이 무서워 함부로는 못했었다. 희한한 것이 그때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아이들도 많이 알았다.


몇 년 전 내가 최고로 열광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응팔의 덕선이와 내가 나이가 같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재밌고 눈물 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사라져버린 골목, 잃어버린 이웃, 잊혀진 추억이 소환되자 내 안의 덕선이가 바로 응답하는 것이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동네’에 관한 나의 옛날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요즘은 ‘마을’이라 그런다. 마을... 지금의 나에게 마을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시골 작은 학교 운동장의 느티나무이고,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아이들로 함께 키우던 마을 언니들이고,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시끌벅적한, 그런 것이다. 작은 산골마을이 나에게 준 마을의 이미지들이다.


16년 전 산골마을로 이사를 들어간 것은 마을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집보다, 학교보다 큰 느티나무 때문이었다. 그렇게 큰 나무를 처음 보았다. 그 커다란 나무 아래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그래, 아이들은 이런 데서 커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커다란 나무 아래 뛰놀고 자라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그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양말 바닥이 늘 빵구가 나 있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뛰어 놀았다. 그리고 이제 스무 살들이 넘었다.

 
산골마을로 오기 전엔 아파트에 살았다. 돌이켜보니 나도 아파트 칸칸만큼이나 엘리베이터 층층만큼이나 될 법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험한 세상에 내 아이 만큼은 내가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이 아파트 층수만큼이나 높았던 것 같다. 믿을 데, 부담 없는 곳이라곤 친정 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 그런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산골마을에 와서 그 모든 경계가 무장해제되었다. 담도 없고, 심지어 현관문도 안 잠그고 다니는데도 걱정이 안 되었다. 남들은 아무것도 없는 그 깜깜한 시골에 살면 무섭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늘 반사해서 질문을 했다. 도시에 살아서 무섭지 않냐고... 퇴근이 늦어져 돌아와 아이들이 집에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온 마을이 CCTV나 마찬가지였다. 마을 어딘가에 아이들이 있고, 누군가 한 어른은 그걸 알고 있다.


마을에 몇 안 되는 친구, 형, 언니들과 하루 종일 놀고도 저녁에 또 같이 자면 안 되냐고 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마을 아이들이 다 보인다. 누가 어떤 성향인지, 누가 오늘 표정이 안 좋은 건 왜 그런지... 마을 언니들은 내가 잘 못 보고 있었던 내 아이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사랑해 주었다. 나 또한 그 집 아이들이 ‘우리’ 아이로 보아지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건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을에서 그렇게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


그러다보니 작은 산골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연이, 마을이 아이를 키워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의 할매, 할배들은 그러신다. “아이고~ 인자 사람 사는 거 같네.”라고. 아이 울음소리 끊어진지 오래된 시골이 대부분인데,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 노는 소리가 시끌벅적하니... 그래 사람 사는 것 같은 거다. 아이들 키우는 거 같은 거다. 마을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건 ‘사람 사는 것 같은’ 거다.


김미진 울산형마을교육공동체 TF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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