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진실에 마음을 여는 데 있다

박가화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인문강사, 수필가 / 기사승인 : 2021-11-16 00: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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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등’이라는 말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그러나 절대 평등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인간 세상처럼 역사, 문화, 경제 상황 등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변수가 있는 곳에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절대 평등이란 어쩌면 이상적인 관념일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것은 단연 남녀평등이다. 역사적으로 성차별적인 남성주의 사회를 거쳐온 여성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억압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최근 남녀평등이라는 의미를 가진 페미니즘 운동은 급물살을 타며 번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왜곡된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넘어 남성 혐오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불리는 이반 일리치는 <젠더>를 통해 성차별을 불평등으로 이야기하기보다 비대칭적 관계로 풀어낸다. 차이를 우선 인정하는 지반에서 시작하는 젠더 평등이다. 이는 페미니즘과는 결이 조금 다른 양성평등이다. 이 때문에 1983년 <젠더>가 출간된 이후 수많은 오해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리치는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문명과 급진전한 자본주의 사회가 ‘성(sex)’을 만들어냈을 뿐 본래 인간은 ‘젠더(gender)’로 태어나서 자랐다 주장한다. 생물학적 성(sex)만을 원초적으로 보는 것은 근대 과학의 획일적인 논리에서 나온 허구의 관념일 뿐이다.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이 사회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젠더의 개념이 산업사회가 되면서 상품과 소비의 편리함으로 그 역할이 파괴됐고, 성(sex)이라는 끊어질 수 없는 경제단위로 묶어져 오히려 불평등한 성차별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젠더(gender)에는 ‘성(sex)’과 달리 훨씬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젠더는 사회의 근본적인 양극성을 지칭하며 어디서도 같은 모습을 띠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녀가 할 수 없거나 해야 하는 일은 마을마다 달랐다. 


“젠더는 두 다리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행동거지마다 존재하는 것이다.”(p68)


그는 우선 산업사회가 두 가지 신화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이 사회의 성적 계보에 관한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사회가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신화다. 그러나 이 두 신화는 이른바 ‘제2의 성’에 속하는 사람들이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임을 비판한다.


예전 사회인 토박이 문화에서는 장소, 시간, 도구, 일, 말투와 몸짓, 감각 등을 남자와 결부시키거나 여자와 결부시켜 구분했으며 이를 젠더라 불렀다. 젠더 간에는 신비롭고 비대칭적 상보성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날 성차별이 심해진 것은 이런 젠더의 고유한 영역을 파괴하고 경제적 성으로 변화시킨 산업사회의 영향 때문이다. 산업사회는 중성적인 노동자를 경제주체로 보고 있기에 남자와 여자의 고유한 젠더를 고려하지 않으며, 필요에 의해 젠더는 경제적 성으로 탈바꿈됐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고 같은 현실을 느끼며 겉모습은 달라도 욕구는 같다는 젠더 없는 단일 성(Unisex)을 전제로 하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토박이 문화에서 가구 단위로 부과되는 노동을 젠더로 나눠 수행하던 방식이 자본주의화되면서 임금노동과 그림자 노동이라는 경제적 분업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두 노동은 새로 발견된 남녀의 성 특징에 맞춰 차별적으로 배당됐다. 이 점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특히 여성들에게 삼중의 차별을 가했다. 통계로 보고되는 경제에서의 차별과 보고되지 않은 비공식 부문(뇌물경제, 지하경제)에서의 차별, 그리고 앞의 두 공식경제의 지하 부문인 그림자 노동에서의 차별이다. 그림자 노동의 대표적인 것이 무보수 가사노동이다. 이 무보수 가사노동은 산업사회 들어와서 새로 생긴 것으로서 비산업 사회의 젠더 노동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물품 및 서비스 생산과 달리 상품소비자가 수행하는 노동이며, 특히 가정에서의 소비활동이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해 사용 가능한 물건으로 전환하는 데 기울이는 노동은 모두 그림자 노동이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 영역을 축소하고 공유지의 회복과 자급에 기반한 삶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현대 사회가 상품의 소비 집약적이다 보니, 소비에 필요한 시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무보수 가사노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차별 없는 경제를 꿈꾸느니, 경제 축소 정책을 추진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는 그만의 묵직한 역설일 것이다. 


어느 사회나 과거가 있어야 한다. 현재가 의미가 있으려면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알맞은 과거가 있어야 한다. 일리치는 공유(the commoms)를 회복하라 한다. 공유란 ‘경제적 자원’의 반대말이다. 토박이 문화가 점점 사라지면서 역사의 주체가 계급이라든지 국가라든지 기업이나 부부처럼 ‘우리’라는 그럴싸한 틀에 맞춰 만든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바뀌었다. 공유 회복에 요구되는 행동을 이론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역사의 주체를 기괴하게 변모시킨 병인(炳因)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리치는 젠더(gender)가 경제적 중성이라는 이중의 게토에 갇혀 있음을 엄중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경제적 성이 제공하는 안락함을 거부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는 한 현대적 삶의 기술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 


현대적 삶의 기술은 회복될 수 없다. 그러한 삶의 기술에 다가갈 수 있는 희망은 감상적 태도를 버리고 놀라운 진실들에 마음을 여는 데 있다. <젠더>는 성차별이 마치 양성의 싸움처럼 되어버린 현실에서 역사를 거슬러 과거 문화 속에서 오히려 차별성을 인정하며 다양한 공동체를 꾸려 나가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풍요롭고 건강했던 과거 문화 속의 젠더를 복원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박가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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