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 바흐가 흐른다” 대구 살롱 골목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1-07-12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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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인이 말하는 너의 앉은 그 자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던 꽃자리일까. 얼마나 애달픈 지금은 지고 없는 꽃자리일까. 얼마나 사무치는 향기를 남긴 꽃자리일까.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을 들락거리는 공사 차량과 소음으로 북성로가 혼잡하다. 그 길을 따라가 보니 전쟁 피란 문인들이 모여 구상 시인의 출판 기념회가 열렸던 꽃자리 다방 간판이 없어지고 다른 간판이 걸렸다. 폐허의 건물에 시간의 숨을 불어넣고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던 한 마을재생가의 노력은 자본에 밀려 며칠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철골 에펠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모파상이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 이유를 묻자 파리에서 에펠탑을 볼 수 없는 유일한 곳이라는 대답을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 한 도시에서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유형의 건축물은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유형보다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도시가 가진 사라지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무형의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섬유공업의 메카로 여름에 어느 곳보다 높은 기온을 찍는 대구벌에 대한 평이한 인상을 예인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낭만의 도시로 이미지를 바꿔준 이들은 대구의 지인인 두 시인이다. 한 사람은 중학교 국어교사 이동훈 시인이고 또 한 분은 방화문을 만드는 일을 하는 초설 시인이다. 여고 동창이기도 한 시 낭송가 김민서와 함께 동행했다. 그녀가 두 시인의 출판 기념회에 초대돼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던 인연이 있다. 두 시인이 미리 짜주었던 대구 문화 골목 투어 여정을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어디든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요란한 예보대로 바람이 불고 비는 흩뿌렸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치마를 부여잡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 향촌동, 한국전쟁 피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던 클래식 다방 ‘르네상스’ 앞에서 이동훈, 초설, 대구 두 시인과 시 낭송가 김민서.

조선 선조 때 일본의 침략을 대비해 쌓은 대구읍성 안에는 드문 남아있는 적산가옥이 눈에 띈다.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을 걷고 있는 듯 도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들은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마도 부슬거리며 내리는 비가 조연이어서일까. 지금은 공구 거리로 바뀐 성곽길 살롱 골목이 있는 향촌동은 1930년 즈음이 전성기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게다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던 유흥가 골목이 다시 성황하게 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 예술인들이 모이면서부터다. 최초의 클래식 다방 ‘르네상스’,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 찻값으로 대신하며 드나들었던 이중섭의 ‘백록다방’ 문인들이 묵었던 ‘화월여관’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숙박업소나 유흥주점이 됐다. 그 시대의 문화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는 물론 다르겠지만 사라지고 없는 그 자취에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 북성로 성곽길 살롱 골목이 있는 향촌동 골목에는 백록다방과 화월여관의 자리가 남아있다.

두 시인의 단골 아지트라고 하는 서성로의 ‘라일락뜨락1956’으로 들어섰다. 오래전부터 뜨락의 명성은 자자해서 몹시 기대하고 있었던 곳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 생가터다. 4년 동안 폐허처럼 버려진 골목 끝에 자리한 집 뜨락에서 몸을 뒤틀며 200년 동안 생명을 이어가는 라일락 나무 한 그루에 반해서 문화복합공간으로 탄생시킨 사람은 권도훈 대표다. 그가 그린 강렬한 색상을 배경으로 중절모를 쓴 이상화 시인의 초상화와 봄이라는 글자에 보랏빛 꽃이 피어오른 라일락 나무를 접목한 굿즈, 여러 작품은 그가 얼마나 정성으로 뜨락을 가꾸고 상화의 정신을 이어나가려는지 잘 알 수 있다. 친절하게 카페를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 안도가 인다. 어쩐지 자본에 밀려 사라지지 않도록 영원히 지켜줄 것만 같은 열정이 느껴져서다. 수제 맥주와 버터 향이 가득한 소문난 크루아상, 그가 직접 볶고 내린 ‘상화커피’를 함께 나눴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드립한 커피는 이상화 시인이 유럽에 유학 가기 전 일본에서 프랑스 말을 배울 때 마셨을 법한 커피라고 소개돼 있다. 라일락 꽃은 지고 없었지만 굵고 검은 가지 사이로 도라지가 하얀 꽃을 피웠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미리 와 있던 이 시인은 작은 뜨락의 식물을 주인장과 함께 공부했다며 식물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기 바쁘다. 좋아하는 것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모든 예술과 문학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낮 달맞이꽃이 반겨주는 비 내리는 라일락뜨락1956

 

▲ 서성로 이상화 시인의 생가 ‘라일락뜨락1956’ 권도훈 대표가 그린 이상화 초상화

마지막 대구 하루 여정을 마무리할 곳으로 동훈 시인이 좋아하는 다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성로 서쪽 진골목에 위치한 다방 입구로 들어서자 70년대 달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서구 미인형 여인의 누드 사진이 걸려있다. 시간 위에 쌓인 더께를 일부러 걷어내고 닦아내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놓인 수족관 안에서 유유자적 노니는 금붕어, 차를 마시고 있는 동네 어르신, 색동 방석이 가지런히 놓인 소파, 40여 년 전 처음 생긴 이곳의 시간과 사람은 그대로 멈춰있다.

 

▲ 대구 진골목 40여 년 전통의 미도다방은 여전히 어르신들의 놀이터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청년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올드 팝송 폴 앵카의 다이애나가 흐른다. 아주 오래돼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름,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금 낡은 선풍기가 후텁지근한 공기를 이리저리 밀어내며 휘휘 돌아간다. 


“뭐 드릴까예?”


“쌍화차로 다섯 잔 주세요.”


“노른자는요?”


“동동 띄워주세요. 동.동”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노른자 띄운 쌍화차를 시키면서 부려보는 허세. 그 옛날 차 한 잔 값이 몇백 원이었을 때 주인에게 턱 하니 십만 원을 맡기던, 동네에서 잘나가는 유지들이 드나들었다던 40년 전통 미도다방이니까. 소파 위에 삐딱하게 앉아 팔을 걸치고 다리를 길게 내밀어 꼬고 나도 일행들 사이에 앉았다.

Hold me darling hold me tight~
oh please stay by me diana~
oh please diana~
나를 안아주세요 꼭 안아주세요~
제발 내 곁에 있어 주세요 나의 사랑 다이애나~

요즘 유행인 빈티지나 레트로로 젊은 사람들을 겨냥한 인테리어로 잘 차려진 다방이 아닐까 싶게 넓고 깨끗하다. 혹시나 했는데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두 분이 들어오셔서 단골인 듯 자연스럽게 앉아 차를 마시고 직원들과도 가족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동안 진골목 미도다방을 지킨 안주인 정인숙 여사님, 아니 정마담님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겠다.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소문 그대로 인자하고 밝다. 꼭 다방이 아니더라도 손님을 상대하는 사십 년 세월이면 얼굴에 고단도 베었을 법한데 말이다. 다방을 나서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 톡으로 전송해 달라며 명함을 건네주신다. 우아하고 세련됐다. 


과거는 현재와 이어져 있고 현재는 미래와 이어져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물성은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고 그 시간을 이어주는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의 것이 아닌 하늘조차도 세를 넓히겠다고 마천루를 쌓는 이 시대에 그 정신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낮은 지붕 아래 뜨락의 라일락이 꽃을 피운다. 그 꽃그늘 아래 그 꽃자리 아래 도란도란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다시 백 년을 천 년을 만 년을 이어갈 것이다. 


‘폐허에서 바흐가 흐른다’고 외신에 보도됐던 르네상스 클래식 다방이 있었던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칠월의 어느 비 오는 날, 골목골목 시간을 거슬렀던 우리들의 모습을 한 컷 남겼다. 돌아와 사진을 흑백으로 편집해 함께한 고마운 이들에게 전송했다. 한 여류 시 낭송가와 시대를 풍미한 두 시인의 향촌동 나들이 모습이라고 혹시 후대에 알려지지는 않을까, 후후. 속으로 웃음을 지어보며 기록을 남긴다.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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