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마을, 시라카와고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0-02-20 15: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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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 훨훨’

처음엔 그랬다. 눈이 내린 마을 지붕에 별들이 내려앉는 하얀 나라에서 며칠 묵어야지. 그칠 것 같지 않은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는 그곳에서 후생을 약속하고 찾아온 그를 만나야지. 녹기 전에 쌓이고 쌓여 갈 길을 잃으면, 눈이 물이 되어 흐르는 봄에 꽃 한 송이 꺾어 나와야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반짝거리는 두 눈만 내놓고 줄을 섰다. 눈에는 약간의 염려와 불안, 공포가 느껴진다. 언젠가 잡지를 보다 하얀 눈을 이고 선 지붕들끼리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선 시골 마을에 반해 나고야행 티켓을 예약한 지 몇 개월. 기대로 가득했던 일정은 출발 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여정이 늘 순순할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라니, 가만히 바라보면 영락없는 스릴러를 쓰게 된 게 아닌가. 로맨스가 호러가 되는 서문은 조금 두렵고 황당했으나 왠지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연일 언론에서는 도시를 활보하는 감염자의 동선 좌표를 찍어대고,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했다. 미리 예약해 둔 여행사에서도 중국인들이 많으니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연락을 수차례 받았다. 사람 많은 공항을 이용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신경을 써서 마스크를 하고 청결에 유의하는 데 애를 쓰기로 했다.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면직물, 도자기의 집산지로 상업이 발전했고 도요타 자동차, 군수 방위산업 등, 중화학공업의 일본 생산량을 꽤 차지하고 있는 나고야는 첫 방문이었고 울산과 비슷한 공업도시라는 막연한 동질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17세기 초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일로 애도시대 250년을 이끌어가는 기점이 됐던 나고야는 내게 ‘일본스럽다, 라는 그 느낌은 과연 뭘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 과거 히다국의 수도로 에도시대 정취를 고스란 간직해 작은 쿄토라 불리는 기후현의 전통마을 다카야마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시라카와고 마을은 나고야에서 세 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돼서 중심가에 숙소를 잡았다. 겨울 같지 않은 기온 때문에 챙겨 입은 속옷이 젖어 호텔이 도착하자마자 세탁해 놓고 자전거를 빌렸다. 며칠 묵어야 할 곳의 근방과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골목골목 살피며 며칠을 묵어갈 정을 붙인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치는 일보다 개나 고양이의 나른한 모습들이 일본에선 더 익숙하다. 어느 곳이든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해거름 매직 아워의 깊은 블루를 만나고 조금 이르게 숙소에 돌아와 도시의 밤을 건넌다.


이른 아침,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자그마한 여고생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가 예약한 사람들을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지막까지 한국인 가이드와 수소문해 가려 애를 써봤지만 다 취소가 되고 중국인들이 타는 버스에 탑승하게 됐다. 중국인 가이드, 그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람들 틈에 유일한 이방인으로 앉아있는 내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이것저것 상냥하기 그지없다. 그들도 나도 다 여행자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녀의 배려가 오히려 약간의 경계를 가졌던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사람들을 태우고서 버스가 출발했다. 반쯤 공기를 내뿜고 동그랗게 흩어지는 중국말, 들은 때마다 신기해서 그녀의 노래처럼 듣고 있자니 한국어로 번역된 동영상 유튜브를 보여주며 웃는다. 


그렇게 두 시간쯤 버스가 달렸을까, 차창 밖으로 거짓말처럼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긴장과 아쉬움으로 적막 같던 버스 안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산 중턱 높은 곳에 자리한 휴게소에서 모두 내려 하염없이 퍼 붇는 눈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었다. 뭔지 모를 선물 같은 눈, 모두 경계의 눈빛은 풀어지고 서로 찍고 찍히며 웃음이 피어났다. 그 후로 한 시간을 더 달린 버스는 아침 시장이 열리는 일본의 전통마을 기후현 다카야마에서 멈췄다.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는 골목골목마다 눈비에 젖은 나무 비늘 판자들이 검은 색을 띄며 처음부터 심어져 있던 나무처럼 섰다. 나무에서 자라난 집들 같다. 과거 히다국의 수도로 상업이 번성하자 사치를 방지하고자 고급 목재 집을 짓는 것을 금지시켜 그을음이나, 감물로 목재에 발라 검소하게 보이도록 했다고 한다. 


하얀 백발의 머리를 한 할머니 한 분이 진열해놓은 우유를 집었다. 호뜨, 호뜨, 하신다. 무슨 말인가 한참을 헷갈렸는데 가만히 보니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권하시는 거다.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돼 일본 여행은 조금 불편하지만 워낙 친절한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로 설명을 해준다. 불편함을 지우는 친절. 엄지손가락만한 소고기 히다규 스시를 딱 두 점 줄을 서서 먹었다. 비싸기도 하지만 아무도 두 점 이상 사가는 사람이 없다.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점심을 배고프게 먹고 차에 다시 올랐다. 


이제 삼십 분만 달리면 바이러스를 뚫고서라도 보고 싶었던 목적지 시라카와고에 도착한다. 일본의 큰 목조주택에서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초가지붕을 얹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겨울이면 지붕에 2m 정도의 눈이 쌓이는 시라카와고(白川鄕) 마을은 오랜 세월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돼온 산악 지대 일본 전통 역사 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17채의 가옥과 갓쇼즈쿠리(合掌造)라는 독특한 가옥 양식으로 유명하다. 

 

▲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시라카와고의 가옥과 주변을 둘러싼 삼나무의 겨울 풍경


갓쇼는 합장이란 뜻인데 두 손을 가지런히 기도하는 모양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눈이 너무 많이 오는 지역이다 보니 겨울, 몇 개월 동안 눈이 쌓이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파르게 지붕을 세운 것이다. 혹독한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생활환경에 맞게 완벽하게 구성된 전통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쇼와강을 건너는 다리는 많이 흔들렸다. 아래로는 물이 세차게 흘렀고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수호신 같은 강물의 힘이 느껴진다. 매년 2월이면 몇 차례 마을 집들이 동시에 밤 등불을 밝혀 신비로움을 연출하는 세계적인 라이트업 행사가 열리는데, 올해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이곳에도 미쳐 눈이 내리지 않아 이례적으로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고 한다. 


내가 도착하는 날, 그 순간에 누군가 시간에 맞춰 솜덩이를 잘라 날리듯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운이 좋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비현실감, 상상으로 그리워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20년에 한 번씩 억새로 교체하는 지붕은 마을 공동 작업으로 장정 수십 명이 일 년에 걸쳐 해야 할 만큼 규모가 크다. 못 없이 목재로 기둥보를 만들고 이엉을 엮어 쌓아 올린 수십 미터의 지붕에는 넓은 공간의 단이 생기는데 칸을 가로질러 누에를 길러 비단을 생산한다고 한다. 고립된 마을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을 터, 양잠업은 자연스레 생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 수백 년 동안 지붕을 교체해가며 이어져 내려오는 갓쇼츠쿠리의 전통가옥
▲ 지붕의 칸을 나눠 누에를 기르고 비단을 만들어냈던 가옥의 형태


마을 전체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살펴보면 남북으로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람 방향으로 큰 길이 나 있다. 창에 햇볕이 들게 하기 위해 동서쪽으로 난 창문까지, 척박한 환경에 놓일수록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사진을 찍자니 흔들리는 듯 빛 퍼짐의 창문들이 보석처럼 빛이 난다. 애도 막부 시절 전국에 흩어져있던 야쿠자들이 깊은 산골로 도망을 왔던 곳이 아닐까, 눈 내리는 시라카와고는 그 자체로 소설 속의 마을 같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라카와고 마을 모습. 남북으로 큰길이 나 있고 창이 동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호주에서 난 산불로 수십억 동물들이 생명을 잃은 일,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가 생겨나는 것, 눈이 와야 할 곳에 눈이 오지 않는 겨울, 실제 지구의 환경 파괴와 온난화, 숲의 멸실은 곳곳을 다니다 보면 그 심각성이 결코 공허한 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갈 곳 잃은 동물은 사람과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숙주가 돼 서로를 위협하고, 연신 지구 연평균 최저 기온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도 이제 더는 눈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일본행은 처음부터 기대했던 스케치를 충분히 담아내는 여정은 되지 못했다. 불편하고 불안했으며, 예기치 않게 흘러갔다. 그럼에도 지난 어느 여정보다 특별했고 남달랐던 의미들이 많았다. 불편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궁리해보는 것, 잃어가는 것들을 지킬 수 있도록 연대하는 것, 내가 남기는 발자국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 길 위의 사람을 감싸 안는 것.


버스가 떠나야 할 시간, 눈송이가 점점 더 커진다. 천진난만한 모습의 중국인 가이드 아가씨가 달뜬 모습으로 혼자 셀카를 찍어댄다. 슬몃 다가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넘겨받은 폰 카메라, 그 네모난 앵글 속에 소리 없는 그녀의 웃음 위로 눈이 내린다. 아름다운 시라카와고에, 그치지 않고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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