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제8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있었던 날

진한솔 / 기사승인 : 2019-10-09 15: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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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본무대에 일렁이는 노란 물결

 

임을 위한 행진곡.. “원래 시였어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원래 시였어요?” 서초동 7차 촛불문화제(9월 28일)를 다녀온 나는 그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분은 자신이 옛날에 교육했던 PPT를 켜며 나에게 말을 이어갔다. 백기완선생님이 쓰신 ‘묏 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5.18 민주화 운동을 하던 광주시민들을 보며 백기완 선생님은 그것을 춤에 비유해서 시를 썼던 것이었다. 시가 노래형식을 띈 가사로 축약되었다는 게 그분의 설명이었다. 나는 7차 촛불문화제(9월 28일)를 시작하던 때를 떠올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자 많은 시민이 따라 불렀다. 내가 앉은 자리는 무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멀었다. 그럼에도 전주가 나오자 가사를 아는 시민들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라는 말은 나에게 먼저 몸이 살아서 움직이는 자와 정신이 살아서 움직이는 자 그 두 개로 해석이 되었다. 

 

나는 그분에게 물었다. ‘저 이번 서초동 8차 촛불문화제(10월 5일)는 혼자 가게 돼서 조금 두려워요. 저희를 안 좋아하는 세력이 있거든요.’ 그분은 나를 보고 말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편히 다녀오슈.’ 그분은 나의 아버지다. 지금 생각해보면, 콩알만한 딸이 혼자 집회를 다녀오겠다고 말했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내 신념을 존중해주고 격려해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 너도 함께 가자. 내가 오늘 가야 할 곳에 함께 가자.

 

10월 5일 아침 바람이 차가웠다. 나는 가방에 걸려있는 물건 하나를 보았다. 봉하마을에서 나의 생각이 된 노란색 작은 바람개비.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달고 거리를 나서게 되면 좀 더 신경 쓰며 바깥활동을 하게 된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에서도 사람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게 된 상황 속에서도 노란 리본을 떠올리며 더욱 정직함에 힘을 쓰게 하는 물건이었다. 나에게는 이 노란 바람개비도 그 물건과 비슷했다. 달고 다니게 되면 그것이 나의 다른 양심인 것 마냥 정직하게 바르게 행동하게 했다.

 

▲기억공간 TV가 나오는 방

 

서울에 도착하자 나는 광화문역을 찾았다. 어떤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저번 광화문 집회 때 세월호를 상징하는 공간에서 욕설을 내뱉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나는 왜 그들이 또 한 번 아픔을 겪은 후에 떠올리는 걸까. 노란리본공작소는 기억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기억공간을 둘러보았다. TV가 켜져 있는 방에 들어가자 세월호 사건의 시간이 나열돼 있는 것을 보았다. 읽는 도중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들리는 TV 소리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판결이 진행되고 있었다. 차라리 진상규명이라도 했더라면... 나는 TV방을 나왔다. 방을 나온 옆에는 작은 아이패드 같은 화면이 보였다. 이 아이패드 속에는 과거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적혀 있었고 클릭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나는 미래를 클릭했다.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이곳에 들르면서 남기고 간 메모가 있었다. 나도 펜을 들어 메모를 했다. ‘또 올게요.’ 노란 리본까지 마지막에 그렸지만 내 그림 실력은 형편없는 듯하다. 마지막 공간에는 노란 리본을 만들고 관리하는 분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곳에서 노란 리본을 챙긴 후 노란 바람개비 옆에 달아주었다. 그래 너도 함께 가자. 내가 오늘 가야 할 곳에 함께 가자. 

 

▲본무대 뒤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

 

제8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10월 5일)

 

오후 1시 다되는 시간 때쯤 교대역에 도착했다. 1정거장을 더 가야 서초역이지만 난 교대역에서 내려서 걷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분들을 보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서초역으로 가는 길에는 피켓을 주기 위해 대기하던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저녁까지 있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LED 촛불을 샀다. 저녁에 서초역은 아니겠지만, 다른 장소에서 들고 다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촛불이 바람에 쉽게 꺼진다고 얘기했던 사람과 대한민국 사람들은 냄비근성이라 쉽게 식는다고 말한 사람은 닮아있는 것 같다.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원숭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니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존재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여전히 한국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발언을 하는 자들. 뿌리가 비슷해서 그런가. 닮아도 매우 닮은 듯했다. 이번 촛불문화제를 고작이라고 말하겠지. 본인들 편할 대로 해석하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단결할 수밖에 없다. 

 

버리지 말자. 잊지 말자.

 

본무대는 6시. 사전무대는 4시. 지금은 1시. 그럼에도 시민이 많이 있었다. 혼자 쏘다니자 혼자 오신 아버님 두 분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어디서 어떻게 온 건지는 서로 모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뭉쳤다는 것 하나는 격렬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가 한눈에 보일 수 있을 만한 곳에서 둘러보니 노란색 피켓들과 태극무늬가 담긴 피켓이 일렁거렸다. 무대 쪽에서는 노래가 흘러들어오고 꽤 적지 않은 인원들이 노래에 맞춰서 피켓들을 흔들어댔다. 나도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작게나마 흥을 돋우고 있을 때 OO당의 깃발을 달고 노란 피켓이 일렁이는 장소 안을 활개치면서 다니는 분들과 노란 피켓들을 향해 욕설을 하며 지나다니던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약간의 언쟁은 있었지만 경찰이 막아서기도 했고 촛불문화제 시민들이 함께 동참해서 떨어트려놓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임에도 촛불문화제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싶어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충돌이 생기는 순간부터 이 촛불문화제의 본질은 흐려질 테니까. 굳이 저들 때문에 우리가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촛불문화제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이 시민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왔을 것이다. 나이도 다양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난 멋지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나오는 노래에 취해있을 때쯤 어떤 분이 노란 피켓을 관목(작은나무)위에 버리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화가 난 나는 관목 위에 버려진 노란 피켓과 태극 피켓을 주웠다. 그리고 버린 사람을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오해했기를. 그 분이 다시 돌아와서 피켓을 주워 가기를  하고 바랐지만 관목 위에 피켓을 버리고 간 사람은 멀어지기만 했다. 나는 피켓을 잡고 나만큼은 버리지 말자고, 신념도 생각도 피켓도 사람도 버리지 말자고,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커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버리지 말자. 잊지 말자.

 

▲왼쪽은 제8차 촛불문화제. 오른쪽은 제7차 촛불문화제 피켓이다.

 

썬그라스를 낀 중년

 

다른 일정이 있는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고속터미널 쪽으로 이동했다. 근처가 지하철 서초역이었지만 고속터미널로 이동한 이유는 멀리서 노란 물결을 더 오래보기 위해서였다. 원래 낯가림이 있어서 그 많은 노란 피켓 사이로 들어갈 용기 같은 건 없었지만, 그날따라 나는 좀 더 당당할 수 있었다. 왜였을까. 노란 피켓들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큰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본무대와 멀어질수록 한눈에 들어오는 문화제 풍경. 그러나 고속터미널쪽 과 가까워질수록 경찰들이 그 주변 일대를 막아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꽤 삼엄한 표정으로 말이다. 저 서초역 앞에서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과는 다른 표정과 다른 분위기였다. 나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서 멍하게 경찰 쪽만 바라보았다. 

 

나는 좀 더 오래 노란 피켓을 바라보며 여운을 남기고 싶은데. 어쩌지? 그렇게 고민할 때 쯤 반대쪽에서 내려오던 썬그라스를 낀 중년의 어떤 분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윽고 나에게 “부끄러운 지 알아! 때가 어느 때인데.” 어쩌고저쩌고. 반말부터 하는 순간에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분을 ‘상대할 필요가 없겠구나’라고 느꼈고 그대로 손동작으로 ‘저리로 내려 가세요’라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그러자 썬그라스의 중년 분은 나를 지나쳐 내려가시면서 ‘학생이 말이야!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는데!’라고 외치며 멀어졌다. 어... 학생은 아니에요... 그래도 젊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전날 밤 아버지랑 얘기 나눌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봐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놀라지도 않았다. 아까부터 많이 봐와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상대하지 않는 게 낫다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던 걸까. 그제야 다른 집회를 이 촛불문화제의 꼬리 되는 부분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아채기도 했다. 이곳을 막고 있는 경찰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린 이유는 같은 길 위에서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무너트리고 싶어 하는 자들이 서로 서게 될 테니까 말이다. 

 

거짓말쟁이들 말고!

 

내성적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나 자신. 그런 내가 8차 촛불문화제에 잠시라도 참석하려고 했던 이유는 거짓말쟁이들 때문이다. 7차 촛불문화제를 친구랑 함께 참석했고 그 많은 인원을 보고도 거짓말을 하는 자들. 그것에 나는 분노했던 것이다. 진실을 숨기려고 한다. 그것이 원동력이 돼 서울 가는 시간을 앞당겨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였기도 했다. 물론 나는 잠깐의 참석일 뿐이었지만, 내가 그곳 그날에 존재했고 함께 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거짓말쟁이들은 진실 보도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유튜브였다. 나는 서초 8차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날에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응원도 하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몸은 없지만 마음으로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국기였던 태극기는 어느 날 균형이 깨져 한쪽 세력에서만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태극무늬를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계속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 외치게 된다면 이 균형은 언젠간 맞춰질 것이고 어떠한 색깔 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날이 올 것이다. 이은미 가수는 마지막 무대를 위해 나와서 태극기 피켓을 들고 시민들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태극기 포퍼먼스. 자원봉사자들이 길이를 확인하는 듯했다. 큰 태극기가 펴지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는 경찰에 연행된 사람이 이번에도 없는 평화 문화제임을 다시 입증했다. 시민들은 MBC를 보고 ‘만나면 좋은 친구~’라며 MBC 노래를 부르다가도 ‘물들어올 때 잘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촛불문화제 본무대 맨 뒤쪽에서 다른 세력들이 다른 구호를 외치면 우리 구호로 바꾸어서 소리를 내어주기도 했다. 또한 무대 소리가 전혀 들리지도 않는 맨 뒤에 있는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한 시민의 주도하에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며 구호를 외쳤고, 아예 기타 같은 악기를 가지고 와서 바위처럼을 연주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독일에서 미국에서 제주도에서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숫자로 본질을 흐리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인원은 밝히지 않을 것임을 얘기했고 그 질문을 해오는 기자들에게는 본인들이 보고 판단해서 집회 인원을 쓰라고 말했다. 나는 주말 교육일정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촛불문화제 참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서울뿐만이 아닌 울산에서도 이 작은 불씨가 타올랐으면 좋겠다. 

 

▲ 8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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