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고래 살육의 기록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 기사승인 : 2020-02-20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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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 녀석의 물보라는 곡식가리처럼 크고, 해마다 양털을 깎은 뒤 수북이 쌓아놓은 낸터컷 양털처럼 하얗다. 녀석은 돌풍에 찢어진 삼각돛처럼 꼬리를 흔들지, 제기랄! 자네들이 본 녀석이 바로 모비 딕이다. 모비 딕, 모비 딕이야.’ 

 


소설 <모비딕>에서 에이하브 선장이 향유고래를 묘사한 대목이다. 1852년 미국에서 초판이 12권이 팔렸다고 알려진다. 서머셋 모옴이 극찬한 20세기 이후 재평가되면서 영미문학의 대표작이란 지금의 명성을 얻었지만 가독성이 떨어져 완독하기는 쉽지 않다. 


<모비딕>의 전체 구성은 화자인 이슈마엘이 포경선인 범선 피쿼드 호에 승선하기 전과 승선 후 고래사냥하는 선원과 포경선의 활동, 그리고 실제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피쿼드 호가 향유고래에게 부딪혀 침몰하면서 화자를 뺀 선원 모두가 죽는- 비극적 결말의 과정이다. 


앞부분에서 허먼 멜빌은 19세기 기독교의 타락과 물질적 쾌락을 탐닉하는 사회상을 보여주는 한편, 식인종이면서 퀘이커교도인 동료 선원을 만나 우정을 나누면서 문명과 야만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힌 에이하브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이란 캐릭터의 대립이 극적 긴장을 형성하면서 서사가 진행된다. 이 책에는 19세기 미국, 영국 등이 주도한 고래잡이의 규모와 실태, 생물학적 고래에 대한 정보가 오류-허먼 멜빌은 고래를 인간과 같은 포유류가 아닌 대형 물고기로 본다-를 포함한 채 수록돼 있다.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바다와 고래, 포경산업이 특수한 현장이기 때문에 묘사가 성실할수록 읽는 독자는 그것을 상상하면서, 비슷한 그림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열망에 빠진다.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에 이르면, 포경선에 탑재한 가공할만한 사냥도구들과 고래잡이 선원들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는 거대한 향유고래가 요동치는 바다, 몰락과 파괴의 끔찍한 현장을 떠올리며 마치 에이하브 선장의 이상한 광기에 전염된 듯 몸살이 날 지경이 된다. 그래서 책을 다 읽자마자 모비딕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의 흥분과 감동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모비딕의 경우엔 더욱. 


지금은 책을 읽으면서 향유고래의 사진이나 도감을 비교해볼 수 있으니 작가의 묘사가 얼마나 정확한지 놀라울 정도이고, 허먼 멜빌이 실제 고래잡이 현장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결코 쓸 수 없는 소설이란 걸 알 수 있다. 


2019년 8월 허먼 멜빌 사후 200주년을 기념해 <바다는 우리의 하늘이었다>가 출판됐다. 전자가 고래를 잡는 에이하브 선장의 관점이라면 후자는 고래의 관점에서 쓴 소설이라고 알려진다. 200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과거 포경국들의 바다와 고래에 대한 관점에 어떤 근본적 변화가 생겼을까? <모비딕>에는 고래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따위는 없다. 현재 일본처럼 상업포경을 하지 않는 미국, 영국 등이 실은 잔인하고 광범위하게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돌며 대형고래를 살육한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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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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