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전쟁을 말하는가 <사마에게>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 기사승인 : 2022-03-01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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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에게>(2019, 와드 알-카팁)는 시리아 내전 한가운데서 21세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6년 12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5년 전부터 교차한다. 정부군이 알레포를 포위한 시점부터 시작해서, 생존자들이 무사히 알레포를 벗어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딸인 사마가 출생하기 전부터 기록해온 이 항거 영상들은 난리통 속에 태어난 생명에게 이 기록을 물려줌으로써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지, 이런 역사가 결코 반복되지 않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 사마 ©네이버영화

영화에서 화자(話者)인 와드의 카메라 외에 휴대폰과 CCTV 화면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녀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알레포 대학의 자유투사다. 아사드 가문의 독재에 대항하는 시위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휴대폰이었다. 군인이 시민을 잔혹하게 때리는 장면도 있다. 시민들의 유일한 도피처인 병원에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장면은 CCTV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동 시간대 상황을 여러 위치에서 잡아내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급박함과 처참함을 강렬하게 제시하고, 짧은 시간 동안 병원의 폭격 상황 전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와드는 항거 수단으로 촬영을 통해 꾸준히 기록해왔다. 대부분 장면에서 폭격 굉음이 들려온다. 컴퓨터 앞에서나, 사마에게 분유를 먹일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카메라는 대부분 다급하게 움직이는 와드의 동선에 따라 흔들리는데, 급박한 상황에서의 촬영이 익숙한 와드는 위험한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반복되는 폭격 동선(動線)을 파악해 카메라를 미리 대기한다. 다큐멘터리는 의외성과 예외성이 본질인데, 이런 예측된 카메라 워킹을 통해 전쟁의 위험이 얼마나 불합리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폭격 때문에 딸 사마를 찾으며 다니면서도 카메라를 가능한 정면으로 놓는다. 폭격, 신생아들, 외침, 피떡이 된 사람들을 통해 딸을 걱정하는 감독의 마음을 관객에게 동일화시키고 있다. 이는 이 다큐멘터리의 드라마적 요소다.

 

▲ 감독 와드 알-카팁 ©네이버영화

와드는 촬영 중인 본인의 모습을 거울에 자주 드러낸다. 백미러, 엘리베이터, 거울, 화장실 등에서 와드는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본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주체를 관객들에게 철저히 객체로 자리하게 함으로써 이 영화가 객관적 사실의 기록임을 강조한다. 알레포를 떠나 피난 가는 상황이 돼서야 카메라 렌즈를 마주하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자신의 슬픔을 관객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다큐멘터리 메시지의 정점이다.


알레포에 남는 것이 가장 위험하면서도 강력한 항거 수단이었던 이들에게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을 만큼 처절하고 잔혹한 상황들은 영화에서 시체와 피로 나타난다. 죽음과 공포를 직관적으로 화면 안에 우겨넣은 것이다. 도입부에서 폭격 이후 날 것 그대로의 피와 심각한 부상들이 등장한다. 동(東)알레포 강에서 발견된 시체들은 모두 민간인이고, 고문 흔적과 함께 수갑을 찬 채 머리에 총성이 있다. 시체가 쌓였지만 시체는 계속 나온다. 비닐에 싸여 광장 가득 널려 있는 시체들은 총알로 머리가 터졌고,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린 바닥, 관 대신 천 조각으로 둘러싼 시체를 구덩이에 밀어 넣어 쌓은 뒤 흙으로 파묻는 장면들은 실사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 <사마에게> 포스터 ©네이버영화

병원이 폭격된 뒤 폐건물을 임시병원으로 사용하는데, 하루 300여 명의 환자가 몰리고, 30여 명의 의사는 알레포 탈출 전까지 20일 동안 6000명이 넘는 환자를 받았다. 얼굴이 피떡이 돼 실려 가는 환자보다 더 섬뜩한 것은 바닥에 길게 이어진 굵은 핏자국과 그 위를 무심하게 다니는 사람들의 발이다. 핏자국 끝에는 왼쪽 팔이 사라진 반주검 상태의 환자가 맨바닥의 비닐 위에 누워 알몸 상태로 수액을 맞고 있다. 곧이어 누군가 그 환자의 발을 잡아끌고 가면 앞의 그 핏자국은 잘려 나간 팔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피로 이어진다. 죽어가는 아기를 보며 절규하는 여성은 카메라를 향해 모든 것을 다 찍으라며 소리를 지르고, 그 갈라지고 찢어지는 음성은 핏자국이 즐비한 바닥 위로 온몸이 꺾인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핏덩어리 시체 위로 흩어진다.


피와 죽음은 잔혹성의 현현(顯現)으로서뿐만 아니라 아이러니의 매개로도 활용된다. 응급실에 실려 온 산모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의사들은 제왕절개로 태아를 끄집어내는데, 미동도 없는 태아를 숨 쉬게 하기 위해 응급처치를 한다. 엉망진창인 수술실에서 새로운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절박함에 관객은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 정부군 공격으로 폐허가 된 알레포 ©네이버영화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리 렌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했더라도 극(劇)이 아님을 알기에 거친 화면 속 모든 요소가 두려운 어떤 것이 된다. 전쟁이 나면 젊은 세대를 시작으로 전 국민이 죽어 나간다.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모았듯 어떻게든 생존해내겠지. 그러나 국민을 책임지려는 자, 어디 감히 전쟁의 위기를 자극하는가. 그에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란 말인가.


이민정 영화인, 대경대 방송영상과 겸임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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