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청 8.15 광복절에 맞춰 일제강점기 야학운동 조명

배문석 / 기사승인 : 2019-08-14 14: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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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노동역사관에 QR코드 현판 설치
교육독립운동 100년, 네 번째 걸음

“독립운동 기간에 우리는 교육을 힘씀이 마땅할까요? 나는 단언하오. 독립운동 기간일수록 더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0년 1월 20일자 <독립신문>에 기고한 ‘우리 민족 6대 사업’의 하나로 교육을 꼽으며 한 말이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먼저 배워야 하고 민족계몽을 위해 더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교육청(노옥희 교육감)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펼치는 네 번째 기념사업으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은 일제강점기 울산 야학운동”을 조명한다. 8월 14일 오전 11시에 노동야학을 소개하는 전시를 담고 있는 울산노동역사관(북구 산업로)에 QR코드 현판을 설치한다. 2월 병영초등학교, 5월 울산교육청, 6월 옛 울산초등학교 터(북정동)에 이어서다. 아울러 이번 행사에는 북구청(이동권 청장), 북구의회(이주언 의장)와 울산시의회 교육위원회(천기옥 의원) 가 함께 참석한다.
 

▲ 전시 판넬


일제강점기 항일의식을 심어준 야학운동

일제강점기 울산에서 벌어진 민중교육운동인 야학(夜學)은 민족사립학교가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고, 공립보통학교는 학생을 다 받지 않는 현실에서 시작됐다. 특히 만세운동 뒤인 1920년 직후에 울산 곳곳으로 확산돼 많게는 100여 곳에 문을 열만큼 뜨거웠다. 


야학을 주도한 이들은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청년들과 지역유지들이었다. 당시 울산에 만들어진 35개의 청년회가 앞다퉈 교육을 시작했다. 특히 수업료를 내지 못해 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학령기를 지난 청년들을 학생으로 모집했는데,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해야 했지만 교육의지가 매우 높았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울산교육청 소속 울산교육독립운동연구회(이현호 회장)는 그동안 조사를 바탕으로 울산야학의 특별한 점으로 여성야학의 비중이 높았던 점을 꼽는다. 그리고 가난한 아이, 농민, 노동자, 여성 등 일제강점기 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육은 주로 조선어 수업을 했고 민족의식을 높이는 역사공부도 더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면 야학에 대한 탄압을 전면화한다. 사상이 불온한 교사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병영노동야학과 언양농민야학에 폐쇄명령을 내렸는데, 여기서 ‘불온’은 강철(姜徹 1899~?)이나 신학업(申學業 1901~1975)처럼 청년운동과 독립운동을 앞장서 이끈 이들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신간회 울산지회가 주도한 울산노동야학연합회 창립식을 일제 경찰을 동원해 금지시킨 사건도 있다. 

 

▲ 울산 야학강습소 전체 분포도

모든 농민, 노동자에게 글을 주라! ‘가갸거겨’를 주라!

야학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가 있다. 1928년 2월에 작성된 ‘궁근정노동야학’에 대한 소개 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졸던 눈을 뜨게 하는 소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글’이다. 그들에게 글을 주라. 글을 주라! 글을 주지 아니하고는 그들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농부와 모든 노동자에게 ‘가갸거겨’를 주라! 그리하면 그 ‘가갸거겨’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것이다.
오늘날의 학교와 신문잡지와 모든 서적은 거의 전부가 선민계급의 독점이요. 그것이 있게 한 주인이 되는 농민이나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들의 땀으로 입고 먹는 선민들에게는 그 은인이요, 주인인 그들에게 적더라도 ‘가갸거겨’를 갚아 줄 의무가 있을 것이다. “빈부에 따라 나누어 돈과 곡식을 내놓아 유지비를 삼아가면서” 조선어, 한문, 산술, 일어 등을 배우려 하는 경남 울산의 궁근정에 사는 빈궁한 동포들을 생각해 보라. 노동야학이 금일에 시작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금일에 더욱 긴요한 것은 사실이다.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나 그 무엇임을 막론하고 진실로 조선인을 사랑하는 자일진대 빈궁한 동포들에게 ‘가갸거겨’를 주라고 할 것이다. 그리하는 것이 그들의 사업 기초인 까닭이다.


글의 마지막 부분 “민족주의건 사회주의자건 막론하고 조선인을 사랑한다면 빈궁한 동포들에게 ‘가갸거겨’를 주라”는 말은 큰 울림을 준다. 야학은 그렇게 좌우를 가리지 않고 민족교육, 민중교육, 가장 낮은 곳 그리고 맨 앞자리에서 펼쳐졌다. 새끼를 꼬아서 모은 돈으로 학교를 열었고, 독지가들은 후원을 했으며, 교사들은 대부분 무보수로 가르쳤다.  

 

▲ 1928년 1월 10일자 중외일보(中外日報) 신문기사. 조선어 수업을 중심에 둔 야학 수업 과목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울산야학이 주는 교훈

울산에서는 매해 삼일절 행사와 광복절 행사를 진행하지만 늘 엇비슷한 기념식으로 치렀다. 다행히 올해는 울산교육청에서 지금껏 주목하지 않던 일제강점기 교육독립운동을 다양한 부분에서 깊이 있게 다뤄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항일은 이름난 독립운동가 몇 명만 했던 것이 아니다. 친일파와 부역자들과 다른 길에서 스스로 독립을 일구었던 수 없이 많은 무명 운동가들을 알아야 한다. 야학은 바로 그렇게 이름을 내세우지 않은 소중한 선조들이 열정을 녹여낸 공간이었다. 


더 나아가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 배상판결을 들먹이며 시작된 일본 아베 정부 수출규제가 촉발된 상황에서 살펴볼 교훈이 있다. 일본 정부의 도발에 분노한 우리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펼친 지 한 달을 훌쩍 넘겼다. 그 와중에 국민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어 ‘토왜’ ‘신친일파’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일본이 우리보다 우월하고,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들도 성공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차별은 없었다고 역사를 왜곡해 강변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교육 하나만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울산에서 일제강점기 보통학교 취학률은 1920년까지 3% 수준에 머물렀고 1933년 울산거주자 중 문맹률은 80%를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까막눈’이란 말이 다 사라진 세상이다. 모든 국민들이 당연히 의무교육을 보장받고, 국가 책임도 훨씬 커진 자주독립국가에 살지 않는가. 


우리는 야학을 통해 식민지를 벗어나 독립으로 가기 위한 100년 전의 절실함을 잊어선 안 된다. 한 명이라도 더 배우고, 더 가르치고,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민족교육, 민중교육이 야학임을 기억해야 한다.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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