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가던 길, 죽동역

황주경 시인 / 기사승인 : 2019-11-13 14: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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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죽동역에서 바라본 입실 쪽 선로

 

죽동역 

1965년 6월 11일 : 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 개시

1966년 6월 11일 : 을종승차권대매소로 지정

1967년 8월 27일 : 역사 신축

1990년 6월 1일 :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

2007년 6월 1일 : 여객취급 중지. 폐역 조치

 

*죽동역 : 동해남부선 입실역과 불국사역 사이에 있는 폐역으로 경주시 외동읍 죽동리에 있다. 단선승강장으로 2007년 6월 1일부터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폐역됐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E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인사도 하기 전에 다짜고짜 죽동역 취재는 언제 하느냐고 묻는다. 아직 계획이 없다 하자 선뜻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서 가게 되면 그 길에 무조건 함께 하겠단다. 재차 연유를 묻자 마지못한 듯 ‘어릴 적 외가 가던 역’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외가라는 말에 갑자기 전화기 저 안에서 밀려오는 그리움. 

 

‘외가’하면 필자는 이미자의 아씨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가끔씩 가마 타고 시집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서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필자의 외가는 경주 안강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친가는 영천 산골의 황가 집성촌이다. 백두대간의 한줄기인 도덕산을 가운데로 군 경계를 달리하지만 외가와 인접해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친가 동네 사람들은 영천장보다는 거리가 가까운 안강장을 많이 이용했다. 그래도 그 길은 새벽에 출발해서 장을 보고 돌아오면 하루가 저무는 먼 길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죽동역. 고속도로 진입로가 옆으로 지나가기 전에는 들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었다.

 



어느 날 안강장에 간 우리 할아버지는 대폿집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두 어른은 술잔을 주고받다가 자식들의 혼사를 언약하게 된다. 주막에서 약속된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60년대 어느 해 봄, 연지 곤지 찍고 족두리를 쓴 우리 어머니는 신랑의 얼굴도 모른 채 가마에 올라 복사꽃 곱게 피어 있던 길을 따라 시집을 가게 됐다. 그것은 요강단지 하나와 함께 서너 시간을 꼼짝없이 가마 속에서 버텨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처음이자 두 번 다시는 없을 길, 가고 나면 쉽게 돌아가지도 무를 수도 없는 눈물길이었다. 

 

이제 백발의 어머니는 간혹 큰집에 다니러 갔다 외가로 갈 일이 있으면 큰 도로를 마다하고 꼬불한 옛길을 고집하실 때가 있다. 어머니가 시집온 그 길은 그 옛날 지게를 지고 우리 할아버지가 안강장에 가던 길이기도 하고, 또 어릴 적 내가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가로 가던 길이기도 했다.

 

▲죽동역 전경

 

E형과 죽동역을 찾았다. 죽동역은 철재기둥에 지붕만 올린 작은 승강장 뿐 역사도 벤치도 없이 단출하다. 예전에는 들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서 그 존재감이라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선로 바로 옆을 높게 지나가는 고속도로 진입로 때문에 역사를 찾는 것조차 어렵다.

 

E형은 어릴 때 방학만 되면 울산에서 기차를 타고 죽동역에 내려서 외가로 갔다. E형의 외가는 아사달 아사녀의 전설이 깃든 영지 안쪽의 작은 마을에 있었다. 영지를 지나 큰길로 가려면 산을 휘돌아 가야하는 먼 길이었지만 죽동역에서 야산을 넘는 지름길이 있었다.   

 

E형은 죽동역에서 농로를 걸어 야산 근처를 더듬었다. 그 옛날 외가로 가던 그 오솔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인적이 끊긴 길은 이제 찾기 힘들었다. 그 길을 찾았으면 아마도 E형과 나는 오솔길을 걸어 산을 넘었으리라. 

 

E형이 길을 못 찾고 돌아서며 “내 손을 꼭 잡고 친정 가시던 그때의 어머니보다 내 나이가 이제 더 들어 버렸네”라며 속절없이 흘러 버린 시간을 한탄했다. 그리고 산길을 넘어 외가로 가던 날들을 회상했다. 

 

어떤 날은 해지고 어두운 저녁 시간에 기차에서 내리기도 했다. 길동무가 된 마을 사람들과 논두렁길을 걸어 상엿집이 웅크린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덜컹 겁이 나기도 했다. 컴컴한 야산에 가늘게 이어진 오솔길을 더듬으며 산짐승이 우는 소리에 머리가 쭈뼛 서기도 했고,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조각을 보고 귀신을 본 듯 기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은 길동무가 된 어른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구수한 길이기도 했다. 또, 오솔길을 비추는 둥근달이 친구하자며 자꾸만 따라오던 정다운 길이기도 했다. 드디어 산등선을 넘고 외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는 마음이 급해져 달리다시피 걸음을 빨리했다. 그 길 끝에는 거짓말처럼 언제나 외할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무엇이든 다 내주시던 외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기다리던 포근한 길이었다.

 

E형과 나는 결국 산길을 찾지 못하고 죽동역에서 산을 휘돌아 영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영지초등학교를 지나서 찾은 E형의 외가는 아담한 기와집이었다. 오랜만에 외가에 온 E형이 대문 앞에서 “이 집이 맞는 것 같은데 사람이 없네”라며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잠시 후, 인기척을 느낀 아주머니 한분이 갈대발을 제치며 마당으로 나왔다.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게 된 E형과 아주머니.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아주머니가 먼저 E형을 알아봤다. “E교수 맞제.” 그러자 E형이 “외숙모 아이가?”라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E형의 외숙모는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경주 기왓장 속 여인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죽동역 산 너머에 있는 E형의 외가

 

E형의 외가는 한때 이 고을에서 제법 큰살림을 자랑했다. 지금은 허물어진 사랑채는 마당으로 정리하고, 안채 하나만을 현대식으로 꾸며 귀향한 외삼촌 내외가 살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찻상을 받아든 E형이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외숙모와 옛 추억을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E형의 외숙모가 “E교수, 당신 외할머니가 주걱떡 먹여 보낼 기라고 버스도 기다리게 한 거 기억하시는가?”라며 E형의 아련한 추억 하나를 소환했다. E형이 외숙모의 말을 받아 “우리 외할매, 그때 정말 대단했제”라며 40여 년 전의 외가 툇마루 전경을 떠올렸다.

 

E형은 방학만 되면 외가로 가서 동네 아이들과 천렵이며, 총싸움 등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E형의 외할머니는 친?외손주를 통틀어 장손이던 E형을 무척 아끼셨다. 문제의 그날은, E형이 방학이 다 끝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려는데 외할머니가 손주 먹일 거라며 주걱떡을 굽고 있었다. 저만치 버스는 오고 할머니의 주걱떡은 아직 익지 않았다. 그때 할머니는 E형에게 승강장에 나가 있다가 버스가 서면 기사에게 조금 기다려 달라는 심부름을 받들게 했다. E형은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버스가 도착하자 기사에게 “아저씨, 우리 할매가 조금만 기다려 달랍니다”라고 시키는 대로 일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버스기사는 거짓말처럼 10여분 넘게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손주를 향한 지극정성 누가 감히 말릴 수 있으랴. 할머니는 기어코 외손주에게 주걱떡을 다 해먹이고 버스를 태워 보냈다. 

 

▲E형의 외가에서 받은 찻상

 

외할머니 생각에 E형의 눈시울이 붉어질 즈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 나오는 길에 아사달 아사녀의 전설이 깃든 영지에 차를 세우고 산책했다. 그림자 못 ‘영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이 신라에 와서 먼저 다보탑을 완성하고 석가탑을 쌓았다. 오랜 세월 아사달과 떨어진 아사녀가 신라로 왔지만, 여자는 부정하다는 이유로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일이 끝나면 불국사가 영지에 비치고 그 때 만날 수 있으리라고 했지만, 긴 기다림 끝에도 결국 불국사는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일이 잘못됐다고 느끼고 영지로 몸을 던지고 만다. 석가탑이 완성되고 뒤늦게 아사달이 달려왔지만 이미 아사녀는 영지로 사라진 뒤였다. 아사달 역시 아내를 따라 영지에 몸을 던진다.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여자가 만들었거늘, 우리는 한때 여자를 부정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심하게 차별하기도 했다. 

 

▲아사달 아사녀의 슬픈 전설이 깃든 영지
▲영지초등학교 전경
▲영지초등학교 근처에 잇는 홍씨 열행비

 

황주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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