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한 줄 없이 끝난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19-11-14 09: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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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좋아하는 화가가 생겼다. ‘에바 알머슨’이라고 스페인 여성이다. 최근 반년 정도 미술을 배우면서 그녀를 알게 됐다. 내가 따라 그린 그녀의 작품은 알록달록 꽃을 한아름 안고 있는 여자의 평안한 미소다. 그리면서 엄마가 생각났고 완성된 그림은 엄마에게 선물했다.

 

마침 대구MBC에서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전시 제목은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다. 토요일 전시를 보기에 앞서 금요일에 친한 언니네 가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대구를 다녀왔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적히는 게 허무하다. 그 사이사이에 나는 무진 애를 썼기 때문이다.

 

먼저는 금요일에 일찍 하원시켜서 소아과에 들렀다. 평소라면 어린이집에서 소아과까지 걸어가는 길에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유모차를 찾는다. 버스정류장으로 치면 넉넉잡아도 3개는 지날 거리다. 설렘에 묻혀서 다리 아프다는 말이 피식 새어 나오다가 만다. 작은애가 폐렴 끝에 중이염에 걸려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다. 약국에 가면 비타민이나 젤리가 들어있는 장난감을 팔기 때문에 애들은 구경하기 바쁘다. 유혹을 떨쳐내고 건너편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기차역에 가는 버스가 오려면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이때를 위해 준비한 빵을 먹고 나니 버스가 왔다.

 

시내버스가 커브를 도는데 앉아있던 애들이 옆으로 고스란히 넘어졌다. 다시 자리에 앉히고 손잡이를 꼭 잡도록 한다. 기차역에 내렸더니 25분이면 갈 대구인데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40분은 아이들에게 긴 시간인데 어쩌나. 기차 타는 곳으로 일단 올라가보니 대기실에 텔레비전이 있다. 눈으로 보면서 입에 달달한 간식을 넣어가며 기차가 오길 기다린다.

 

기차를 타고 대구에 내렸다. 마중 나온 언니 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언니네 집 애들과 신나게 놀고먹고 열 시쯤 잠이 막 들었는데 큰애 울음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못 가고 누워서 울고만 있다. 결국 변기 앞에서 주르륵 싸고 만다. 씻기고 갈아 입혀서 재웠는데 새벽 한시에 작은애가 가렵다고 깬다. 그 집에 사는 11월 모기는 큰애 한쪽 뺨을 4방, 손가락 1방, 다리 2방, 총 7방을 물었다. 작은애는 다리에 1방 물렸는데도 너무 가려워해서 겨우 재웠다.

 

아침이 밝았다. 미술 전시를 보러 가자고 하니 애들은 고개를 젓는다. 놀이터부터 가고 싶다는 의견을 적극 수렴해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전시장으로 넘어갔다. 어른 둘에, 아이가 넷이라 입장권으로 5만4000원을 썼는데 애들은 입장하자마자 나가고 싶어 한다. 대신에 애들은 전시장 앞에 열린 시장으로 뛰어나가 시식의 세계로 입장했다. 꾸역꾸역 전시장 세 번을 돌고 나가보니 애들 넷이 시식으로 내놓은 고기 한 판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쑤시개가 왔다 갔다 하더니 한 점의 고기도 남지 않았다. 언니가 지갑을 열어 고기를 산다.

 

근처 도서관으로 이동했는데 수리 중이라 이용할 수가 없다. 그래도 공원 안에 있던 도서관이라 애들은 날개가 달린 듯 뛰어 논다. 점심을 건너뛰어서 근처에서 먹을거리를 사와 나눠 먹는데 작은애가 모래놀이가 더 하고 싶다며 운다. 기차역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온몸으로 우는 바람에 우리는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엄마를 때리고 나쁜 말을 써서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졌지만 일단 다 울 때까지 기다린다. 울고 떼를 써도 안 된다는 걸 가르쳐주는 게 목표다. 훈육 끝에 화해하고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데 진이 빠진다.

 

기차 안에서 작은애가 사탕을 까다가 떨어뜨려서 다시 울 뻔 했으나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도착했다. 분명 전시를 보고 왔는데 울산에서 열린다면 다시 가고 싶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의 전시에 대한 소감 한 줄 없이 이렇게 글이 끝난다. 이제 전시회는 애들 없이 가는 걸로.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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