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와 전환 사이

이근우 시민, 농부 / 기사승인 : 2021-03-29 0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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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

농생태학의 이해(3)

국회입법조사처의 <농업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2100만 톤에서 2017년 2040만 톤으로 60만 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9220만 톤에서 7억910만T톤으로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또,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농업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7.2%에서 2017년 2.9%로 4.3%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러한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벼 재배의 감소와 구제역 등에 의한 축산위축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농업의 쇠퇴가 탄소저감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착잡하군요.


그러나 세계를 대상으로 한 탄소배출에 이르면 상황은 다릅니다. 전 세계 농업분야의 탄소배출은 전체 배출량 대비 30%에 달한다고 합니다.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은 다양한 형태로 지구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탄소저감이라는 측면에서 농지는 강력한 탄소 저장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재배방식을 개선함으로써 탄소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이죠. 지속가능한 농업의 이슈이기도 합니다. 자연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는 농업생태계라는 맥락에서 볼 때, 심각한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열심히 자라는 토종 고추들

1. 생태, 순환, 재생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태순환농법’으로 통칭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재배방식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활동가들 중심으로 이론과 실천,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농사꾼인 제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운동에 치중돼 농민에게 대안이 되는 현실적인 재배방식이나 전환을 위한 단계에 관한 고민은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서양에서는 ‘Regenerative Agriculture’라는 명칭으로 농생태학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여 실천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재생농업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흔히 관행농업으로 불리는 일반농업과 환경친화적인 농업은 생산성과 농작물의 품질 유지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서 차별적이지 않습니다. 큰 틀에서 바탕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지속 가능성의 범주를 어떻게 정하는가라는 면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생산성과 농작물의 품질 유지를 핵심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의 원칙들을 환경과 생태계 친화적인 과정에 유의하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자 심는 마을

2. 원칙1-토양의 건전성

재배방식과 무관하게 토양의 상태는 농민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토양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먹이 사슬의 토대를 형성하는 복잡한 생태계임을 알고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유기물 투입은 고갈 위기에 놓인 토양을 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물론 가축 분뇨 처리의 한 방편이라는 측면도 있으나 밭을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마구잡이로 투입하는 농민은 없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토양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러한 작업이 이뤄지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악영향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가죽들의 분뇨는 영양 높은 먹이가 공급된 결과로 무기물이 풍부하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의 토양 상태를 측정하는 것은 의외로 쉽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 토양 샘플을 보내기만 하면 비용 부담 없이 토양 내의 무기물 구성과 산도, 전기전도도 등에 관한 분석 자료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토양의 무기물 구성을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의 밭들은 대체로 그 토양이 잘 뭉치고 단단하게 굳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무기물 구성에서 과잉과 결핍이 발생해 균형이 무너져서 그렇습니다. 매년 기계적인 시비와 퇴비투입으로 토양의 생태계가 무너져 지극히 편협한 상태인 것이죠. 이는 작물의 비정상적인 생장은 물론 만성적인 병충해에 시달리는 원인이 됩니다.
 

▲ 감자밭 만들기

3. 원칙2-작물의 다양성

요즘 농업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단작에 의존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의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일 작물이나 소수 작물의 반복적인 재배는 토양의 환경뿐 아니라 밭 주변의 생태계 또한 불안정하게 만들게 됩니다. 작물 특성에 따른 특정 영양소의 결핍이 따르게 되고 이에 대응하는 시비 또한 편협해져 토양 건전성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요 작물을 유지하되 섞어짓기, 사이짓기, 돌려짓기, 농한기 녹비작물 재배 등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생기는 부산물을 토양 유기물 투입에 사용함으로써 가축퇴비 의존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영양분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면 농작물 부산물이 가장 훌륭한 유기물 재료인 것입니다. 더구나 보리, 밀, 옥수수, 수수 등은 천적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줘 고질적인 해충 피해를 자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하나의 밭에서 자라는 다양한 작물은 토양의 탄력성을 높여줘 웬만한 이상기후에는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원칙3-덮개

이른바 생태농장을 분양하는 광고를 보면 반드시 들어가는 문구가 있습니다. ‘비닐 사용 금지’. 비닐은 가장 일반화된 피복(멀칭) 자재입니다. 전국의 농지에서 사용되는 비닐의 양은 엄청날 것입니다. 분해가 거의 되지 않는 환경 오염물질인 비닐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비닐 피복은 온습도를 유지해 줄 뿐 아니라 비나 바람에 의한 토양의 물리적 성질 변화를 막아줍니다. 골치 아픈 풀을 막아주는 건 물론이고요. 사정이 이러니 비닐을 안 쓸 이유가 오히려 없습니다. 그러나 비닐의 단점 또한 명확합니다. 환경오염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온습도 유지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물과 비료의 사용량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죠.


위의 ‘작물의 다양성’에서 제시한 부수적 작물의 재배로 나온 부산물을 비닐을 대신할 덮개로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아예 살아 있는 작물을 덮개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으나 토양의 숨통을 막는 비닐의 사용을 회피할 수단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5. 원칙4-연중 가동하는 밭

단 한 시즌도 밭을 놀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계절 작물을 심게 되면 ‘작물의 다양성’이나 ‘덮개’에 도움을 주고 ‘토양의 건전성 또한 높여줍니다. 생태적으로 탄력적인 밭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6. 복구와 전환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제로 상태가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방법이 없는 것이죠. 이는 거꾸로 타성으로 작용합니다. 굳이 바꿀 필요 없다는 자존감으로 나타납니다. 그 사이에 밭 사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일종의 대증요법을 하느라 비용과 시간, 노력이 더 들게 됩니다. 악순환인 셈이죠.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농장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스스로 단계를 정해야 합니다. 각 단계는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고안돼야 합니다. 도약이나 비약을 꿈꿔서는 곤란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밭의 형편이 나란할 리 없는 것입니다. 목표는 복구에 초점을 맞추고 복구의 단계에 걸맞은 전환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충족과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근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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