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걷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09-18 12: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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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 도시의 밤 태화강변을 걷는 즐거움은 우연히 달무리 진 보름달을 만나는 낯선 풍경이 주는 생생함이자 평온함이다. ⓒ이동고 기자


[울산저널]이동고 기자=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서 걷기에는 딱 좋다. 무더운 열대야가 기승을 부릴 때도 밤에 걸었지만 땀이 나면 밤의 서늘한 기운이 땀을 바로 식히는 계절이라 오롯이 혼자만의 평온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혼자 혹은 2~3명이 같이 걷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혼자만 집중으로 걷거나 혹은 잔잔히 대화를 하며 걷거나 걷기를 나온 사람들은 보통사람과는 다른 힘찬 에너지를 느낀다.


일상생활에 리듬을 제공하는 이런 걷기는 종일 바쁜 일상으로 이제 돌아와 단기기억의 잔상들을 깨끗이 비우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장기기억장치로 넘어가기도 한다. 보다 동적인 체험을 기록하려는 욕망은 액션캠을 만들었고 스포츠나 모험 등을 자신만의 체험을 스스로 기록하는 자신이 주인공인 시대이기도 하다. 직접 느낀 체험만큼 강렬하고 생생한 것도 없으니 그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픈 욕망에 딱 맞는 상품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방식에 롱테이크라는 기법이 있다. 작위적이고 의도적인 연출이겠지만 그런 주인공이 움직여가는 시간과 공간을 끊이지 않는 담아내는 방식이 어떻게 가능한가 탄복한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잠을 자는 순간만 잠시 암영이 이뤄질 뿐 롱테이크 방식으로 상영되는 영화와 같다. 나 자신이 겪는 세상은 롱테이크 영화처럼 끊지 않고 편집도 하지 않는 다큐영상이다. 2시간 밤에 걷는 시간들은 바로 그런 한 순간도 편집 없이 진행되는 롱테이크 장면들이다. 하지만 어떤 장면이 강렬하고 어떤 장면은 그냥 지나치기에 기억의 저장에서는 저절로 편집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촬영을 한다면 결국 앵글의 각도와 방향이 있으니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택적 방식을 택할 수 없는 한계에 항상 놓이게 된다. 인간이 볼 수 없는 시각의 한계를 극복한 360도 촬영기술이 도입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360도가 되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마저 자주 일으킨다.

바람은 선선하고 길은 어둑어둑하기도 하다. 태화강을 배경으로 구름에 묻혀 달무리를 만드는 보름달의 풍경은 낯설고 신비롭다. 도심을 지날 때는 짙은 분꽃향기가 들어왔고 대나무길을 지날 때면, 뜨거운 하루를 이겨내느라 뿜어낸 풋풋한 냄새들이 가득 찬다. 이런 순간에는 어둠 속에서 무엇인지도 모를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과 일체감이 들기도 한다. 간혹 어둠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가 잠시 놀란 듯 지나친다.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지만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나눌만한 존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그런 존재를 찾고 만들려는 노력이 더 큰 번뇌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의 한계이고 또한 슬픈 일이다.

 
가장 좋은 관계라는 것이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은 것’이라는 멋진 잠언도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으로 바라지 않은 관계라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인생이 롱테이크라면 누구나 라이브와 액션캠으로 촬영되는 둣한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 바람 아닐까?

이제 가을바람이 불자 서서히 내년 총선 바람이 분다. 정치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알리기 위해 애쓴다. 표를 받으려는 정치인들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는 그냥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과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사람으로 나눈다. 무리와 집단화는 필요하고 어느 편에 속하지 않는 독립자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자기 내면을 비추는 시간 없이는 건강한 문제제기와 대안을 만들지 못한다는 집단화를 경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정치인들은 사회 문제를 들춰내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보다는 자기 세력화의 치열한 싸움에 더 비중을 둔다. 그들의 권력에 대한 에너지가 부럽기도 하다. 울산에 가장 부족한 것이 생활정치이고 주민밀착형 활동이다. 동 단위의 정치, 마을공동체 중심의 낮아지는 활동이라 중요하다 여긴다. 붕붕 떠다니면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과 자기편 만들기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펼칠 집단을 크게 키우는 데만 관심을 둔다. 지역의 낡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울산지역은 또 한 번 정치적 분열의 몸살을 치르게 될 것 같다. 반복되는 안타까움이다.

이차대전이 끝나자 헤르만 헤세는 1차,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독일 문학에서 ‘전쟁’과 ‘개인’의 관계를 치밀하게 고민하는 <데미안>을 발표한다. 전쟁이라는 현실을 똑바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주의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에 강한 나라답게 개인 내면을 면밀히 탐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최근 독일 취재를 앞두고 다시 데미안을 읽으면서 젊은 시절 방황과 고뇌의 순간이 다시 오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에너지와 동시에 사람 내면의 이해를 통해 많이 위안을 받았다.

나치즘이라는 집단화가 준 광분이 2차 대전 패전국이라는 폐허뿐인 씁쓸함으로 우울하던 시대, 헤르만 헤세는 독일 젊은이들에게 싱클레어를 통해 방황과 혼돈기 속에서 허위와 방탕함을 버리고 자아를 찾고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야간 걷기는 그런 시간이 아닐까? 원칙 없이 어울리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내기에는 항상 부족하다.

이동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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