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우와 갑윤이

손영식 울산대 철학과 교수 / 기사승인 : 2022-01-10 0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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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근대에 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최고 권력자는 왕처럼 세습되지 않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뽑는다. 이 결과 두 개의 정당이 겨루는 것이 일반화된다. 이는 칸트가 말한 ‘이성의 안티노미’(모순)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사람들은 정반대의 모순되는 두 견해(안티노미)로 갈라진다. 집단 이성은 원래 그렇게 분열되기 때문이다.


이런 양당 정치는 논리적으로도, 현실적 효과로도 일당 지배보다 좋다. 그러나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선거를 했는데, 일당 지배가 되는 경우가 있다. 묻지 마 지지가 그것을 만든다. 유권자들이 자기 편에게 표를 몰아줄 때 일어난다. 


이런 절대적 지지를 받은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중시할까? 가장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 ‘권력의 사유화’다. 자민당 일당 지배가 계속되는 일본의 경우, 지역구를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체첸 반군을 진압하는 등 소련 해체기의 러시아를 잘 이끌어서 높은 인기 속에 2000~2008년까지 대통령을 두 번 했다. 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더는 대통령을 할 수 없자, 심복인 메드베데프를 2008~2012년 대통령으로 앉히고 자신은 총리를 했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 자신은 대통령이 되고,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앉혔다. 서로 대통령과 총리를 주고받은 것이다. 이는 우리 울산에서도 일어났다. 


이렇게 주고받는 사람들이 과연 유권자를 존중할까? 유권자의 한 표를 자신의 호주머니 속 물건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맞서는 두 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발전 때문이다. 한국은 박정희-전두환 시기에 중화학을 하다가 IMF 외환 위기를 맞았다. 이에 김대중-노무현 때 IT 산업으로 나가면서, 현재의 산업 강국을 만들었다. 반면 자민당 일당 지배인 일본은 1990년대부터 정체돼 현재는 죽을 쑤고 있다. 다른 정당에게 전환을 주도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본은 갈라파고스로 남아 있다. 울산은 박정희 시대에 중화학 공단으로 출발한 이래 획기적인 전환이 없다. 


서울은 양당이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유권자를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묻지 마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 보수 여론에 편승하면 된다. 그 결과 중앙 언론들은 울산 정치인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가끔 나오는 기사도 뭐 이런 정치인도 있다는 투다. 늘 보수적인 유권자들만 대하기 때문에,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늘 그렇게 된다. 양쪽 의견이 팽팽히 갈리는 전체 여론에 비하면 이상하게 된다.


울산은 사무총장 원내대표를 배출했지만, 존재감이 없었다. 이러니 울산에서 대통령 후보는커녕 비중 있는 정치인도 나오지 못한다. 그 결과 숱하게 이름이 바뀐 보수 정당에서 영남 정치인들은 ‘말뚝’으로 취급된다. 


묻지 마 지지는 그 지역의 선출직을 사유화한다. 했던 사람이 또 하고 또 한다. 별 특징도 없는데 늘 한다. 이래서 ‘정치 자영업자’라는 말이 생겨난다. 그러다 보니 그 당에서 새로운 인재들이 나올 수 없다. 새 세대를 키우지 못하는 정당은 고사할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가 그것을 충격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반성이 없다. 새 인재를 키우기보다는 충성하는 인물들을 자신 밑에 줄 세우기 한다. 이래서야 정당이 크겠는가?


올해 지방선거를 한다. 예전의 각설이들은 다시 나타날 것이고, 시민들은 습관처럼 찍을 것이고, 그리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는 묻지 마 지지를 받는 정당에게도 해롭고, 울산에도 좋을 것이 별로 없다. 


손영식 울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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