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심규명 변호사 / 기사승인 : 2019-05-22 1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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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명의 이심전심

문제는 패스트트랙이다. 듣도 보도 못한 외래어가 생경스럽기만 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빠른 길이라는 영어 표현인데 정치 분야에서는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제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통상 법률은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의 의결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해당 법안에 대해 의견의 대립이 있더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이 적용돼 과반수의 동의만 있으면 가능했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다수결의 원칙이 ‘웬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법안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경우다. 과반수만 넘으면 되기 때문에 통과시키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은 사생결단을 한다. 국회의 심의를 막기 위한 별의별 방법들이 동원된다. 인해전술로 회의장 진입을 막는 것은 기본이다. 회의장을 점거하고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며 망치와 ‘빠루’가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국회 안에서 최루탄이 터지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동물국회다.


국민들은 식상해했다. 최고의 지성인들을 뽑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는 짓거리가 저잣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싸움질이다. 제발 싸움질 그만하라고 아우성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법이 패스트트랙을 장착한 국회선진화법이다. 다툼이 있는 법안의 경우 과반수가 아니라 3/5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볼썽사납던 싸움질은 없어졌다. 그러나 부작용도 따라왔다. 여야의 의석수가 비슷할 경우에는 되는 일이 없다. 싸움질은 없어졌는데 놀고먹는 날이 늘어만 간다. 소위 식물국회다.

 
그럭저럭 굴러가던 국회가 사달이 났다. 선거법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이다. 선거법개정안의 핵심은 연동형비례대표제도다. 셈법은 복잡하지만 정당의 지지율에 걸맞는 의석수를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소선거구제하에서 의석을 확보하기 힘든 소수정당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손학규 대표가 단식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당과 자한당으로서는 10여 석이 달아날 것이 뻔한 제도라서 달가워할 리가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사를 의석수에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하는 제도이기에 대놓고 반대하기도 머쓱하다. 때마침 개혁법안의 통과가 아쉬웠던 민주당은 소수정당들과 뜻을 같이하게 된다. 자한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이 합심한 것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에 소외된 자한당의 행태가 가관이 아니다. 회의장을 점거하고 출입문을 봉쇄했다. 맨발로도 다니지 않는 복도에 그 깔끔한 의원들이 드러누웠다. 다시 망치와 빠루가 등장했다. 동물국회가 재연된 것이다. 그 과정에 국회의원 90여 명이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 전례가 없긴 하지만 죄가 인정되면 다시는 국회의원이 될 수가 없다. 뒤늦게 법안의 위력을 인지한 자한당은 길길이 날뛰던 송아지 코가 꿰인 것처럼 고분고분해졌다. 그렇게 패스트트랙 법안 심의가 시작됐다.

  
패스트트랙의 원래의 의미는 고속도로에서의 추월선을 의미한다. 다른 법안을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의미에서 추월선의 이미지에 걸맞다. 그러나 추월선으로 진입했다고 해서 반드시 추월하는 것은 아니다. 추월당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나쁜 운전사가 있게 마련이다. 추월선을 운전하면서 추월하려는 뒷차에게 양보하지 않는 사람만큼 얄미운 사람은 없다. 참다못한 뒤차가 주행선으로 들어가서 추월하려면 그때서야 속력을 낸다. 추월하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다. 성질 더러운 사람을 만나면 추월 경쟁이 시작되고 사고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자한당은 어딘지 모르게 나쁜 운전자를 닮은 것 같다. 선거법개정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버티고 있다가 사고를 내고 고소를 당한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면서 장외투쟁을 시작했는데 외치는 구호가 생뚱맞다. 독재타도와 헌법수호를 이야기하는데 선거법개정이 독재와 무슨 상관인지 헌법과는 어떤 관계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외치는 말들이 과격하다. 좌파독재는 기본이고 달창, 한센병 등 듣기조차 민망한 막말들이 난무한다.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가 억지로 소리치며 과격한 말들을 뱉어내는 것과 뭐가 다를까? 국민은 안중에 없다. 오직 자기들끼리만 만족하는 진영논리만 있을 뿐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정치는 국민을 보고해야 하는데 말이다.


심규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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