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보다만 빠르면 돼

김동일 / 기사승인 : 2019-05-22 1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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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본이 아빠의 일상주반사

동네 핸드폰 매장에 대형 현수막이 붙었다. 동네에서 ‘제일 싼 집’을 사칭하는 매장들을 고발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경쟁업체의 사진까지 적나라하게 인쇄돼 있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휴대전화 매장의 최저가 경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똑같은 브랜드의 공산품이라 가격 외에 특별히 차별화될 게 없는 핸드폰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사실 단통법 개정 이후의 최저가 경쟁은 불법이거나 과장일 확률이 크다. 어쨌든 제일 싼 집 마케팅의 최절정은 ‘무조건 옆집보다 싸게 팝니다’라는 현수막이다. 나란히 붙어있는 가게에서 하루종일 수도 없이 얼굴을 볼 텐데 웬만한 철판 아니라면 서로 얼마나 껄끄러울 것이란 말인가.


오후에는 옆 족발집 안주인이 하소연을 한다. “배달의민족에 족발집 또 올라왔어. 이제 족발집이 몇 갠지 세지도 못하겠다.” 마누라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탄식한다. “한 개 가지고 엄살은. 횟집은 신규로 다섯 개나 올라왔다.” 족발집 안주인이 다시 핏대를 세운다. “거기는 막국수에 주먹밥은 기본이고 파스타랑 콜라 큰 거까지 서비스로 준대. 그래서 남는 게 뭐 있다고.” 마누라도 따라 목소리를 높인다. “그 횟집도 그래. 비싼 멍게랑 초밥이랑 연어 샐러드를 서비스 준다. 그래서 남는 게 뭐 있다고.” 둘이 동시에 읊조린다. “같이 죽자는 거지 뭐.” 한 달여 만에 배달앱에 올라온 신규 횟집이 다섯 군데다. 새롭게 올라오는 가게의 공통점은 기존 업체보다 서비스나 양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집은 기성품을 쓰는 기존 가게와 달리 모든 특제 소스를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마케팅으로 다른 가게를 슬쩍 돌려 깐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게 다 정치를 똑바로 하지 않는 정부 탓이라고. 정부가 최저임금이나 급격하게 올리고 경제 정책은 제대로 하지 않아 실업자가 느니 자연스럽게 자영업자도 따라 늘 수밖에 없고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뭐 그런 논리다. 글쎄다. 최저임금 거의 안 올렸던 정부에서도 그들만의 경쟁은 늘 치열했으니 그리 타당한 주장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게 다 경영을 똑바로 하지 않는 재벌 탓이라고. 재벌 일가가 자기들 배만 불리고 경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실업자가 느니 자연스럽게 자영업자도 따라 늘 수밖에 없고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뭐 그런 논리다. 글쎄다. 경기가 좋을 때도 자영업 시장의 과당경쟁은 늘 문제였으니 그리 합리적인 주장은 아닌 듯하다.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을지언정 인과관계는 없어 보인다.


문득 게리 라슨이라는 주로 생물학을 소재로 그리는 만화가의 철학자와 곰 이야기가 떠올랐다. 철학자와 친구가 산길을 가는데 앞에 사나운 곰이 한 마리 나타났다. 놀란 두 사람은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서던 철학자가 갑자기 멈춰 서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철학자의 친구는 “그래 봤자 소용없어. 곰은 평지에서 사람보다 빨라”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철학자는 “곰보다 빠를 필요 없어. 너보다만 빠르면 돼”라고 말했다는 얘기다. 경쟁은 같은 종 안에서만 이뤄진다는 진화이론을 풍자한 만화다. 그렇다. 얼룩무늬 사슴의 경쟁상대는 얼룩무늬 사슴이지 사자가 아니다. 사자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사자를 이기는 게 아니라 다른 얼룩무늬 사슴보다 빠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너보다만 빠르면 될까? 치킨집 옆에 치킨집이, 식당 옆에 식당이, 미용실 옆에 미용실이, 휴대폰 매장 옆에 휴대폰 매장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모두 ‘너 보다만 빠르면 돼’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마무시하게 커져 동네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의 온라인 판매 시장과 가정식 간편조리 시장은 애초에 경쟁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는 방법은 그들을 이기는 게 아니라 옆집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옆집보다 조금이라도 덜 남기면 된다는 과당경쟁은 필연적으로 출혈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그렇게 옆집을 이겼다고 해도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곰이나 사자는 여전히 새로운 먹이를 찾을 테고 대기업은 여전히 골목상권을 위협할 테니까. 나보다 조금만 더 빠른 얼룩무늬 사슴이 나오면 다시 사냥감이 될 것이고 나보다 조금만 더 빠른 가게가 나오면 결국 폐업을 해야 할 테니까.


당장 ‘너보다 조금 빨리’ 달리기 위해서 하는 출혈경쟁은 쫓아오는 곰 앞에서 싸우다 함께 자빠지는 꼴이다. 대기업 O2O(Online To Offline) 시장에, HMR(가정간편식) 시장에 골목상권을 고스란히 상납하는 짓이다. 알지만, 아는데, 그런데도 자영업자들은 오늘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읊조린다. ‘너 보다만 빠르면 돼’라고.


김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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