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5.18

임영빈 / 기사승인 : 2020-05-20 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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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

5.18민중항쟁40주년울산행사위원회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내가 만난 5.18'을 주제로 울산시민들의 글을 모았다. 시민들이 보내온 글 가운데 몇 편을 추려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주>

 

 

80년 5월 아직 나는 엄마의 자궁에서 주먹만 한 크기였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경상도 끝자락 울산에 살고 있었고 엄마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세계지도로 보면 워낙 작아 큰 땅덩어리 중국을 찾아 그 밑을 보면 알 수 있는 나라. 그것도 반쪽으로 나뉘어 더 작은 나라의 도시에서 일어난 일을 다른 도시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그 당시의 사실이었다. 

 

90년대 초반 초등학생인 나는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우리 동네에선 한참 아저씨들이 ‘데모’라는 것을 많이 했다. 현대중공업이라는 대기업에 아빠는 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아빠한테 절대 앞으로 나서면 안 된다고 항상 이야기했다. 최루탄 냄새를 자주 맡았고 노동가는 항상 내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왜 데모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데모는 나쁜 게 아니고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이지만 위험하니까 절대 나서서는 안 된다고 하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

 

99년 나는 대학생이 됐다. 역사동아리로 위장한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그때 정말 나는 역사를 연구하는 동아리인 줄 알고 가입했지만. 가입하자마자 선배들은 술을 가르쳤고 노동운동의 역사를 줄줄 읊어댔다. 그때 접하게 된 5.18에 대한 참역사. 자국 군인에게 시민들이 무참히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그것도 북한의 개입이라는 미친 소리를 해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역사. 20살이 되도록 나는 그것에 대해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되어 처음 접하게 된 그것은 충격이었다. 

 

선배들을 따라 집회도 따라다니고 여러 모임도 다니면서 세월이 지나도 우리나라는 하나도 나아지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났지만 나는 일상에 또 치이고 말았다. 학과 생활과 취업준비가 더 중요했던 나는 동아리는 뒷전이었고 내 개인적인 미래를 위해 취업하고 일에 치이고 생활에 치이고 결혼하고 육아하면서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있었다. 

 

이제 좀 여유로워진 지금. 전두환은 회고록을 내고 본인은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개소리를 시전하고 있고 아직도 그 일당들은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실낱만 한 도움을 주는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80년 그 당시 광주를 비롯해 전국의 민중항쟁에 참가한 시민들. 그 이후 2016년 촛불 항쟁까지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심리적 부채감이 든다. 아빠에게 앞으로 절대 나서지 말라고 했던 엄마의 말처럼 내 안에서도 나는 절대 앞으로 나서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것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80년의 광주 시민에게 존경심과 함께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든다. 

 

임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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