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나무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08-23 12: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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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몇 해 전 읽은 김영하의 소설 <당신의 나무>에서 한 캄보디아의 승려가 나무에 침식된 불상과 사원에 대해 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 어디든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뿌리와 가지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오래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지탱해 주는 일이다.”


갑자기 이 구절이 생각난 이유는 최근 결혼과 육아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때때로 찾아오는 책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도망 못 가게 붙들어주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회사 재정 문제로 월급이 일주일 정도 늦게 들어왔는데 이 경험은 이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나에게 한 달이라도 수입이 없으면 삶이 흔들리는 하루살이 같은 운명임을 더욱 상기시켜 주었다. 월급 입금과 동시에 순식간에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각종 공과금으로 말 그대로 순삭 월급일망정 매월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면 적당히 삶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 경험을 통한 반작용으로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열망이 커져서 지금 나를 옭아매는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나를 잠식하곤 한다.


답답한 마음에 앞선 호에서 잠시 소개한 화려한 싱글(?) 친구를 만나 답답한 속내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웬걸 이 친구는 나보다 더 불안해하며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혼자 사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하면 더욱 고독하고 공허함에 짓눌리게 될 거라나 뭐라나. 그에 나는 무슨 소리냐 나 같으면 모아놓은 돈 가지고 자유롭게 여행을 하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몇 년 동안만이라도 살겠다고 하니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단다.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어 만났더니 오히려 내게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를 보니 혼자든 아니든 인간은 언제나 불안하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염세주의적 허무감이 찾아온다. 어쨌든 또다시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며 그렇게 헤어졌다. 아마 다음 만남에도 서로 비슷한 푸념을 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내가 만약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 지극히 속물적이고 평범한 난 아마 충족하지 못한 욕망과 욕구 그리고 고독으로 인해 오래가지 않아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겠다.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오르기에는 난 아직 너무 욕망 덩어리인 것이다.


처음 소개했던 김영하의 소설 속에서 사원과 불상을 서서히 옥죄고 증식하는 나무는 어쩌면 우리의 인생 속에서 책임과도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이 나약하고 쉽게 부식하며 쓰러지기 쉬운 오래된 사원이라면 그 빈틈을 파고들어 우리의 정신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나무와 뿌리는 그와 동시에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삶을 버텨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인 셈이다. 마치 가족이라는 존재로 인해 많은 책임과 의무를 안고 살아가고 빈번하게 갈등도 마주해야 하지만 그 가족이란 존재가 서로를 지탱해 주고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착하게 결론을 내리며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냥 살아진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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