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이기암 기자 / 기사승인 : 2019-10-31 11: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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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직접 과거 도구를 사용해 금속 메달을 만드는 체험을 하는 모습 ⓒ이기암 기자

 

<기획취재: 노동자도시 울산에 노동박물관을>


1. 노동박물관이 품은 노동존중 세상을 말한다
2. 핀란드 탐페레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부심
3. 섬유공장을 되살린 스웨덴 노르셰핑 노동박물관
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덴마크 노동박물관
5.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6. 청계천에서 구로공단까지... 전태일기념관과 구로노도체험관
7. 노동역사를 담은 그릇, 석탄박물관과 강제동원역사관
8. 울산노동역사관에서 노동박물관으로 한 걸음 더

 

독일 북부지역 경제와 산업 중심지

음식 ‘햄버거’의 어원이 되는 도시 함부르크. 북해에 맞닿은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이면서 하나의 주(州)가 된다. 엘베강을 따라 산업시설이 들어선 함부르크는 인구 규모만 따지면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 대도시다. 예부터 항구를 통해 외국인이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고 1인당 주민소득이 독일 전체에서 제일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 뿌리는 13세기 초에서 17세기까지 북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연합해 이룬 자유무역 공동체 한자(Hansa)동맹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항구를 바탕으로 무역업과 조선업이 발달했던 과거부터 정보통신 분야로 변모하는 현재까지 독일 산업은 함부르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산업도시 함부르크는 다르게 말해 노동자가 많은 도시라는 점에서 울산과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주 의회에서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장악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독일 중앙정부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민주연합이 2005년부터 4차례 모두 승리했다면 함부르크 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46년부터 시작된 19차례 지방선거에서 단 4번을 제외하고 모두 사민당이 승리했다.

 

▲ 1871년에 설립한 고무공장 단지에 들어선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전경 ⓒ이기암 기자


1871년 세워진 고무공장을 박물관으로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은 도심에서 북동쪽 방향 밤벡(Barmbek)지역에 건립됐다. 과거 이 지역은 도시 외곽이었지만 지금은 편입된 상태다. 10월 2일 아침 일찍 마중을 나와 기다려준 라우너 씨는 1997년부터 노동박물관을 지켜왔고 현재 부관장급 운영진에 속한다. 그는 박물관이 들어선 과정을 설명하면서 과거 밤벡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수입해 고무를 가공하는 공장이 밀집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밤벡은 코코넛을 수입해 비누로 재가공하는 공장 등 해외자원을 수입해 가공 판매하는 기업들이 2차 세계대전까지 발전했던 곳이다. 그중 ‘뉴욕 함부르크 고무 와른 컴퍼니(New-York Hamburger Gummi-Waaren Compagnie)’의 고무공장이 1960년대 도시 남서쪽 지역 하르부르그(Harburg)로 이전하면서 건물만 남게 된 곳을 박물관으로 재활용했다. 함부르크에서는 1970년부터 도시의 산업역사를 기록할 박물관 건립 캠페인이 시작됐는데 1980년대에 준비가 본격화됐다. 독일 산업사와 노동사에 대한 연구와 기록이 미흡하다는 자기반성에서 시작됐고 이를 공감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의 움직임이 더해져 박물관설립위원회로 나아갔다. 물고가 트인 것은 1982년으로 과거 고무공장부지 임대가 결정되면서였고 첫 전시를 진행했다. 당시 독일 전역에서 8~9개의 소규모 노동박물관과 연계해 전시가 확장됐다. 지금의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으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1989년 주 의회 결의를 거쳐 1990년 1월 1일부터 7번째 주립 박물관이 되면서다.

“앞으로 나아가되 과거를 잊지 말자”

라우너 씨는 박물관의 역사를 소개하면 1982년에 나온 독일의 노동요 가사가 일종의 구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과거를 잊지 말자란 구호는 노동자의 뿌리 그리고 역사인식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가 됐다. 여기엔 독일 노동자의 삶이 어떤 질적 만족으로 이어져 왔는지 되돌아본다는 뜻도 담겨있었다. 노동박물관설립위원회는 공장 소장품을 전문으로 수집하는 박물관 관계자와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그룹이 함께 협력하는 틀이 됐다. 특히 과거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했던 독일 조선업과 인쇄업에 종사했던 노동자모임이 적극 참여했다. 박물관 설립 당시 해당 산업은 이미 사양사업이거나 큰 시스템 변화를 겪고 있었다고 한다. 예를 조선업 노동자서클, 인쇄업 노동자서클 그리고 금속, 여성, 항만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퇴직 노동자 모임이 하나로 모였고 1990년대 주립박물관이 된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박물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박물관을 이틀에 걸쳐 방문하는 동안 70~85세 고령의 퇴직 노동자들이 나와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1층에서는 가족 단위로 관람 온 아이들이 금속선반 장비를 노동자모임에서 파견 나온 이의 지도를 받아 직접 다뤄보는 체험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체험이 끝날 때 난생 처음 다뤄본 도구를 이용해 세상에서 하나 뿐인 금속 목걸이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2층 인쇄산업 체험 공간에서는 과거 산업 방식을 따라 고령의 퇴직노동자의 도움을 받아 인쇄물을 찍어보기도 했다.

 

▲ 독일 여성건축가 기획전시. 남성중심이라 여긴 건설산업 속 여성의 분명한 발자취를 보여줬다. ⓒ이기암 기자

 

▲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이 폐업한 공장 기계와 도구를 모두 옮겨온 상설전시 ⓒ이기암 기자


사라질 공장을 통째로 옮긴 상설전시 눈길

퇴직노동자가 이끄는 체험교육은 앞서 방문했던 곳들과 비교해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의 특별한 자랑거리가 되고 있었다. 체험도구로 쓰이는 기계부터 역사적 소장품이지만 수십 년 동안 그 기계를 사용해 일해 온 노동자들의 경험 역시 중요한 역사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박물관은 관람객들이 단지 처음 도구를 사용하는 경험만큼 해당 노동자의 삶을 직접 이야기 듣고 보는 게 중요하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는 또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가 소통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라우너 씨는 말한다. 예를 들어 주변 지역에 어떤 아이가 생일이라고 하면 그 아이를 데려와 메달에 아이 이름을 새겨 찍어보고 색을 입히도록 해 체험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35년간 매주 월요일마다 열고 있는 인쇄소에서는 관람 온 아이와 청소년들이 직접 원하는 명함이나 카드를 옛날 기계로 주문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열린 체험을 통해 새로운 신세대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 대신 기계를 이용한 자동생산 방식으로 바뀌면서 사라진 과거 노동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 외에도 아예 사라질 뻔했던 공장을 그대로 옮겨온 상설전시도 있었다. 라우너 씨는 1990년대 이미 30년간 방치되다시피 부분 구동만 하던 공장이 폐기 처분될 위기에 놓였을 때 박물관으로 옮긴 것이라고 상세히 설명해줬다. 함부르크 외곽에 있던 소규모 공장이었는데 소유주가 폐기 직전 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혔고 박물관에서 찾아가 모든 물건을 수집 정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장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결국 박물관에 도착한 것은 공장 안의 기계와 도구들 뿐 아니라 그 공장의 노동자들 이야기도 함께였다. 노동자 이야기를 구술 받고 기록하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앞서 소개한 작업 체험을 돕는 퇴직노동자도 들어간다.

미래세대와 노동역사를 통한 소통이 중요

함부르크에서 만난 살아있는 노동역사 체험은 1962년 최초의 공업단지가 들어선 이후 50년을 훌쩍 넘어버린 울산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특히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만들고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퇴직하는 지금 상황과 맞물려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퇴직노동자들과 박물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귀를 기울였다.
라우너 씨는 지금 박물관 구성의 중심이 되는 과거 아날로그 시절 노동 이야기를 넘어서는 숙제도 분명히 있다고 조언했다. 재능기부 방식으로 매일 노동자모임에서 박물관으로 오는 퇴직노동자들이 앞으로 5~10년 뒤에도 계속 될 수 있냐는 고민도 내비쳤다. 1세기 전의 노동만으로는 미래 세대의 관심을 다 충족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퇴직 노동자들의 경험을 전달하는 연결만큼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노동의 변화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에는 인쇄산업 체험 외에도 현업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작가들에게도 박물관 장비를 개방해 작품 활동을 도왔던 사례를 들려줬다. 최근 4차 산업 전환으로 시작되는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노동박물관이 글로벌화되고 디지털화되는 산업 변화를 과거 소장품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산업을 다루는 프로젝트를 지난 2~3년 동안 추진해봤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고 말한다. 아직 박물관 변화에 대한 여러 입장 그리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고 한다.

 

▲ 취재진을 안내해준 라우너 부관장(왼쪽)과 관람객 인쇄 체험을 이끄는 85세 퇴직노동자 ⓒ이기암 기자

지역 사회, 다양한 계층과 함께하는 박물관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이 앞으로 펼쳐갈 방향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야기가 늘어났다. 그것은 함부르크, 독일과 유럽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난민을 비롯한 이주민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담아내는 것에 대한 노력이었다. 이른바 주류 사회라고 일컫는 백인들이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이주노동자를 다룬다면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협력해 소홀함 없이 담아내겠다는 각오이기도 했다. 이는 점차 다문화로 나아가는 사회 변화 속에서 독일 박물관이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박물관이 사회문제의 해답을 모두 제시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묶어 낼 수 있는 매개로서 역할이 있다는 말이다. 박물관 취재 당시 여성 건축가 특별전이 박물관 4층에 큰 규모로 기획돼 전시되고 있었다. 흔히 건축이라는 산업은 남성 중심의 거대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여성 건축가들이 많다. 앞서 방문했던 핀란드와 스웨덴 노동박물관에서도 함부르크와는 소재는 다르지만 여성노동자, 여성참정권에 대한 전시가 있었기 때문에 왠지 유럽 노동박물관을 관통하는 흐름으로 느껴졌다. 이처럼 함부르크 노동박물관이 갖고 있는 숙제와 고민은 울산으로도 그래도 이어진다. 우리는 북유럽 국가들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사이의 골이 깊지 않은가. 거기에 이주노동자와 여성노동자 그리고 고령과 청소년노동까지 여러 층으로 쪼개져 있는 노동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단순히 노동조합 역사나 노동운동의 역사 속 몇 장면에 주목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품어낼 때 지역사회와 제대로 호흡할 수 있다는 고민 말이다. 

 

▲ 함부르크 노동박물관 앞마당에 상징처럼 세워진 엘베터널 보링머신의 휠 ⓒ이기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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