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맡겨라

천창수 화암중학교 교사 / 기사승인 : 2019-06-28 1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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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초에 학생회 집행 간부들을 데리고 김해에 있는 봉명중학교 학생회 활동을 보러 갔다. 경남의 혁신학교이고 학생회 활동을 잘 한다는 추천을 받아 방문하기는 했지만 깜짝 놀랄 정도였다.


우리가 방문해 보게 된 활동은 학생회 운영위원회 회의 모습이었다. 운영위원회란 학생회 회장 등 임원과 각 부서별 담당 부장과 차장이 모여서 구체적인 집행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다. 우리 학교에서 탐방에 참가한 학생들도 학생회 운영위원들이어서 격이 맞았다.


먼저 학교 수업을 다 마친 후인 방과후에 학생회 회의를 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은 수업시간을 활용한다. 교육과정의 일부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방과후 개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봉명중에서는 매주 두세 시간을 활동하다 보니 기꺼이 방과후 시간에 하기로 결정한 듯했다. 그만큼 학생회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회의가 시작되자 회의자료가 배포됐다. 논의할 주제와 그와 관련된 간단한 자료들이었다. 먼저 각 부서별로 1주일간 있었던 주요 사업에 대해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리대 선정 및 설치에 관한 안건이었다. 부서에서 생각하는 생리대의 종류와 가격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뽑은 자료를 제시하며 비교 설명했다. 그리고 생리대를 담아 둘 박스에 관한 정보도 공개했다. 이어서 돌아가며 어떤 게 좋을지 한 명씩 의견을 말했고, 그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자 바로 결정했다. 회의에는 학생회 담당교사 두 명이 함께 참여해 중간중간 조금씩 개입했고 최종 결정사항을 확인했다. 이 생리대 선정과 화장실 설치 방법은 학생회에 완전히 일임돼 있다고 했다.


이어서 게시판 설치 문제, 학생들의 건의 사항에 대한 학생회의 입장 등을 의제로 논의를 이어갔고 임박한 스승의 날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도 계획안이 제출돼 토론됐다. 스승의 날 기념식 전체는 학생회에 맡겨져 있었다. 회의 분위기를 보니 교사들은 스승의 날 무슨 일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약 1시간 반에 걸친 봉명중 학생회 운영위원회를 우리 학교 학생회 간부들은 뒤에 앉아서 감탄의 표정을 지으며 지켜보았다. 회의를 마친 후 우리 학교 학생들과 봉명중 학생회 운영위원들이 간담회를 했다. 봉명중에서는 체육대회, 축제까지 학생회에서 권한을 갖고 진행한다고 했다. 학생회 담당교사들은 학생회 회의 때 함께 참석해 논의에 참여하지만 되도록 학생들 의견을 존중하고 예산 집행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아주는 역할에 머물려고 한다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차분하게 학생회 활동을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4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힘든 점도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맡겨 두니까 이제는 정말 잘 하게 되었단다. 학생들도 자부심이 대단히 컸다.
그렇다. 학생들의 자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능력을 키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회 간부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자기들 또래들이 뭐든지 척척 하는 걸 보고는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회에 아무것도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봉명중학교 탐방을 마치고 와서는 금방 달라졌다. 스승의 날 행사를 하겠다며 몇 차례 회의를 하더니 행사계획안을 제출했다. 학교 측의 비협조로 행사가 축소되긴 했지만 하긴 했다. 회장 선거 공약을 지키겠다는 사업도 제출하고 기말고사 기간 중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계획도 제출했다. 이 행사는 학생회 담당교사들 사이에 논란이 됐지만 학생회에 맡겨보아야 학생들이 성장한다는 믿음으로 통과됐다. 교사들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더 나은 학생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학생회가 될 거라 믿는다. 일을 해보아야 일을 배울 수 있고 능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천창수 화암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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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수 화암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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