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혼인율의 정적 상관관계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19-10-24 11: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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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난 제법 잘살고 있었다. 결혼 전 미혼일 때 이야기다. 스트레스가 과도하지 않은 직장에 다니면서 혼자 먹고 살기에 적당한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퇴근 후 자아실현을 위한 각종 취미 활동을 하고 모임을 통한 사회적 관계망 구축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도 주위에는 “결혼에 적령기는 없다, 자기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바로 적령기다”라고 떠들어 대며 혼라이프를 즐겼다. 치솟는 집값에 나의 월급으론 원하는 집을 구매하기가 힘든 시기가 왔다며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욜로족이 돼 담보되지 않은 미래보다 당장 잡을 수 있는 현재를 즐기며 살고자 했던 것이었다. 결혼과 안정된 삶은 그렇게 나와는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내가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 그것도 전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닥쳤다. 바로 몇 년 전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 그것이었다. 경주에서 발생한 두 번의 큰 지진은 나에게 단지 몇 초간의 땅의 흔들림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유지한 삶을 취하는 방식을 흔들어 놓았다. 그때 난 시골의 부모님 댁에 있었는데 적막한 그곳에서 또렷이 경험한 지진은 도시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발끝에서부터 미세한 떨림이 일더니 서서히 그 흔들림이 배가 되고 바로 산과 들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몇 초간 대지가 심하게 흔들렸다. 순간 북한이 공장 밀집 지역인 울산에 폭탄이라도 투하한 줄 알았다. 극심한 두려움에 그 짧은 순간 무려 죽음을 떠올리고 나의 짧은 인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더랬다. 


그 경험 이후로 며칠간 나는 밤에 불면증 및 지진 트라우마와 함께 자주 멍해지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과연 잘살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 하는 질문들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정답은 얻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결혼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긍정적 열망이 마음 한구석에 조금 생긴 듯하다.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난 뒤 결국 내가 바라본 것은 사랑이 충만하고 안정된 관계 속에서 종족 번식을 이루는 지극히 동물적인 의무감의 수행과 본질적 본능의 충족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지진 때문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결혼한 것처럼 들리지만 아내에 대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항상 나의 글을 읽는 아내 때문에 이렇게 쓰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얼마 전 친구 녀석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20년 넘은 친구들이다. 공교롭게도 나 빼고 전부 미혼이다. 허물없는 사이지만 이미 결혼하고 요단강을 건너버린 나와 아직 연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열정과 가능성을 불태우는 그들과는 깊은 공감대 형성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거나 이미 지난 미혼인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의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와 또 그로 인한 찬란한 순간을 같이 공유할 사람이 많지 않다. 안 그래도 좁은 인맥인데 점점 더 고립되는 모양새다. 이러면 곤란하다.


나는 이미 결혼해 버렸으니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이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 같은 고민을 하고 육아나 바른 교육에 대한 진보적 토론도 하면서 지냈으면 하는데 상황은 자꾸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점점 더 결혼을 안 하고 점점 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혹시 아주 강력한 지진이 다시 찾아오면 미혼인 사람들이 나처럼 충격을 받고 급히 짝을 찾아 혼인율이 올라갈 수도 있을까? 분명 올라간다고 감히 추정한다(그렇다고 지진이 다시 오길 바라는 건 아니다). 


정부 부처는 지금 당장 큰 환경재난 이후 혼인율의 변화가 있는지 통계를 내라! 그리고 둘의 정적상관 관계가 밝혀지면 미혼인 젊은이들에게 인위적 재난의 충격을 줘서 결혼과 출산의 길로 접어들기를 유도하라! 고 간곡히 요청하는 바이다(내가 아이 똥 기저귀를 교환하는 동안 혼자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런 건 또한 절대 아니다). 


이상 결혼과 출생률 하락으로 인한 국가적 존폐위기를 우려한 한 아빠의 애국적 일기.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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