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김민찬 변호사 / 기사승인 : 2019-08-14 11: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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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법률

최근 명작 드라마 다시 보기 서비스로 15년 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영상을 시청하면서 조금 놀란 일이 있다. 드라마 내에서 직장 상사가 이성 동성 가릴 것 없이 부하직원의 엉덩이를 거리낌 없이 만지고, 이성 부하 직원의 볼을 쉽게 쓰다듬거나 꼬집고 흔들며, 연애 모드가 아닌데도 잠자고 있는 동기 직원에게 동의 없이 입맞춤을 하는 장면들이 그러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많이 달라지고 진화한 요즘 같아서는 방송 부적격일 뿐만 아니라 자칫 같은 행위가 범죄가 될 수도 있다.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과연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가는 미리 명확하게 법률로써 규정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인간의 모든 행위유형을 법에 적시해 두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비효율적이므로, 입법자는 어느 정도 추상적인 개념을 도입해 법집행자와 사법부에게 해석의 여지를 준다. 그렇기에 시대적 기준의 변화가 사회통념이라는 법적 도구를 통해 법 적용과 해석의 단계에서 녹아들어 입법 공백을 메워준다. 


예컨대 우리 형법 제298조는 강제추행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면 벌은 받는 것은 당연한데, 무엇이 폭행이고 협박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추행인지는 해석의 여지를 둔다. 즉 열린 구조인 것이다. 추행이라 함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킨다. 이때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의 기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통념상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피해자와 춤을 추다가 순간적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진 경우, 추행행위가 순간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행해진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하므로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2001도2417 판결), 직장 상사가 등 뒤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해 어깨를 주무른 경우,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본 사례(2007도1005 판결) 등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반항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폭행, 협박을 수반할 경우 부부 간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판례가 등장했고, 법 조항 역시 부녀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변경됐다. 


한편 예전에는 성범죄의 경우 친고죄 규정을 두어 피해자와 합의하면 처벌하지 않았으나, 2013년 6월 친고죄 규정이 폐지돼 현재는 합의하더라도 처벌은 하되 이를 양형요소로만 고려한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도 이제 주의를 요한다. 최근까지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서 제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형사처벌 대상은 되지 않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 뿐이었다.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도 단순 징계를 넘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이 곧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반대작용도 일어난다. 피해자의 주관에 따라 성범죄자가 될 우려가 생겨 성적 접촉 시 이를 녹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재로서는 동영상이 아니고 유포하지 않는 한 처벌대상이 되기 어려워 맞다 틀리다 논란이다. 성 관련 무고죄의 형량을 비례해 높이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한 남성이 커피숍에서 속옷 차림으로 음료를 주문했는데, 공연음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무죄판결이 나와 이 또한 논란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은 틀리고 나중에는 다시 맞을 수도 있는 것인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담론이 필요해 보인다.


김민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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