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댐 폭파단(2)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 기사승인 : 2019-08-14 11:32:58
  • -
  • +
  • 인쇄
소설

이 모임의 슬로건을 만든 도회는 다루고 있던 일러스트를 벗어나 요즘 캐드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승기가 캐디는 알겠는데 캐드는 뭐냐고 물었다. 그녀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건축도면에서 어디에 창을 내고 계단을 설치하고 벽은 어디에 놓고 하는 것들을 컴퓨터가 알아서 쉽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구조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이제 건물만 딱 쳐다봐도 구조 분석을 통해 저 건물의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딘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설계와 건축, 구조, 프로그램 등 자신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도희의 말에는 다들 깊게 숨을 내쉬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의였다.


그리고 나서 다들 순천을 쳐다봤다. 순천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뜬금없이 얼마 전 아들이 와서 자신이 살고 있는 촌집에 장작구들을 놓아주고 갔다고 했다. 안 쓰는 허름한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를 개조해서 황토방을 만들어줬다며, 불을 지피면 엉덩이가 뜨끈뜨끈한 게 숯가마가 따로 없다고 몸이 찌뿌둥할 때 허리 지지러 한 번씩 놀러오라고 했다. 폭파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다음 모임 장소는 순천의 집이라고 했다. 미진은 통닭에 카레를 발라서 호일에 씌워 숯불에 구우면 맛이 그만이라고 두 마리 통닭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승기는 주인 쪽을 한 번 둘러보더니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했다. 이 집 통닭의 잘 익은 노르스름한 껍데기야말로 세상 어떤 맛있는 음식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바삭하고 고소하다며 닭 껍데기를 돌돌 말아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런 승기를 보며 다들 두 마리 통닭의 마법에라도 걸린 듯, 바삭하게 잘 구워진 닭 껍데기를 뜯었다. 


“그런데 이 통닭 말이에요. 누가 제일 처음 만들었는지 알아요?”
“그거야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배 아닐까?”


제법 박학다식한 미진의 질문을 승기가 받았다. 외국에 자주 나가는 승기의 말에 다들 그 하얀 턱수염에 배가 볼록 튀어나온 백인 할배를 떠올렸다. 


“땡,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만들었대요. 뭐 구구절절한 역사야 그렇다 쳐도 노예들의 음식이라고 하기엔 정말 경이로운 맛이에요. 그래서 노예들이 힘든 일을 끝내고, 그들의 허름한 집에 들어와서 이걸 해 먹을 때마다 이 강렬한 냄새가 집 밖으로 퍼졌고, 백인 농장주들은 온 동네를 감싸며 자신들을 유혹하는 이 맛있는 냄새에 취해 먹고 싶다고 군침을 흘렸대요. 그런데도 차마 노예들의 저급한 음식을 자신들이 먹을 수는 없다고, 절대 자신들은 흑인 노예들의 방법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으니…. 이렇게 통닭을 좋아하는 거 보면 우린 어쩌면 전생에 모두 노예들이었나 봐요.” 


도희의 말에 누구도 선뜻 부인을 못했다. 모두 이 집 통닭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미진은 정말 중독성 있는 맛이라고 했고, 순천은 가성비로 따지면 따라 올 음식이 없을 거라고 했다. 도희는 아무런 말없이 한 마리 통닭의 절반에 가까운 다리 하나를 손으로 뜯어내 살을 발라 먹고 있었다. 


“이렇게 준비해서 정말 뭘 터뜨릴 건대요?”
도희가 뜯던 통닭을 그릇 위에 올려놓고는 어깨 위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기름기 가득한 손가락으로 돌돌 말며 질문을 던졌다.


“도희는 아직 모르나?”
승기가 미진에게 물었다.


“어, 아직 얘기 안 했어요. 애 경기 일으킬까 봐.”
“그래도, 뭘 터뜨릴지는 알려줘야지.”


“뭐야,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는 거였어. 나만 왕따인 거야?”

“왕따까지는 무슨 우리도 얼마 전에 결정했어. 오늘 그걸 확정하는 거야. 어차피 얼마 전에도 사연댐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었잖아.”


미진의 말에 도희 역시 토를 달지 않았다. 자신이 이 결정에서 소외됐다는 것보다 댐을 폭파한다는 데서 오는 흥분이 더 컸다. 이 모임의 제일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어쩌면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를 중차대한 일에 굳이 시덥지 않은 이유로 꼬투리를 잡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폭파해야 할 것은 건물도 아니고, 다리도 아니고 댐이었으니 말이다. 사연댐은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식수원이었다. 당연히 접근하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댐 하나를 폭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폭약이 필요할지도 알 수 없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무렵 건설된 댐은 오래되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균열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들은 그런 댐을 폭파해야 했다. 


이인호 울산민예총 문학위원장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