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가 들려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0-08-12 11: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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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울산 중구 원도심에 가면 고복수길이 있습니다. 중절모와 신사복을 입은 채로 의자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는 사람이 바로 이 길의 주인공 고복수(1911~1972)입니다. 


고복수는 울산 출신으로 1931년 부산콩쿠르대회에서 1등 후 경성에서 열린 본선에서 3위를 차지해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타향살이>, <사막의 한>, <짝사랑>으로 당시 최고의 가수반열에 오릅니다. 역시 같은 인기가수였던 부인 황금심과 중국, 일본 등에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대는 옛날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고복수, <타향살이(1934)>

일본은 억압과 착취를 목적으로 조선인을 해외로 강제이주시켰습니다. 억지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조선인에게 이 노래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만주 하얼빈과 북간도 용정 공연에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던 많은 조선 이주민들이 <타향살이>를 함께 부르다 눈물바다가 됐다고 전해집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은 억압과 수탈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근대적 주체가 구성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1910~1930년에 여성에 대한 담론이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장래의 민족구성원인 자녀를 양육하고 계몽할 수 있도록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여성이 신지식을 익힌 계몽된 남성과 교제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을 받아 기존의 ‘구여성’처럼 구습에 속박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러낸 ‘신여성’들이 그동안의 가부장적인 관습과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비판하고 나서자 1920년대 말부터 ‘신여성’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사치와 방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자연스레 대중가요에서도 그녀들의 외모와 행색을 대상화하고 평가하는 가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신여성이라는 이름 대신 ‘모던걸’이라는 명칭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던걸’은 신문물을 받아들인 젊은 여성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모던보이’와 마찬가지로 애초부터 비난의 의미를 함축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모던걸’은 비슷한 발음의 ‘못된 걸’로 희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저편에 가는 아가씨 좀 봐 주걱턱 납작코
절름발이 꼴불견 그래 뵈도 몸맵시만은
멋쟁이다 하하하 사랑을 찾아서 헤맨다
이 편에 오는 아가씨 좀 봐 조리상 들창코
안종다리 꼴불견 그래 뵈도 스타일만은
모던이다 하하하 사랑을 찾아서 헤맨다
-강남주, <거리의 신풍경(1939)> 중


1930년대 말에는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각지와 태평양 군도를 배경으로 한 가요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노래들은 특히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량으로 제작됐습니다. <남국의 눈>, <남국의 달밤>, <안남 아가씨>, <대지의 사나이>, <북경의 달밤>, <청춘 마닐라> 등 아시아 진출에 대한 욕망은 아시아를 낭만적이며 이국적인 공간으로 표현했고, 그런 가요들이 조선 대중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었습니다.


1938년에 실시된 조선인 지원병 제도가 1943년 조선인 징병 제도로 강화되면서는 전시 동원을 선전하고 독려하는 군국가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들 노래에는 국가를 위해 자녀를 전장에 바치는 어머니들이나 전장에 간 남편을 위해 순정을 바치는 순수한 아내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순종적인 ‘구여성’의 모습을 복원시킴으로써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를 웃게 하고 울게 했던 대중가요,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논문도 있고, 쉽고 재미있게 소개해주는 책과 당시 가수들의 목소리를 담은 음원도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들려줬던 것은 진짜 무엇이었을까요? 혹시라도 고복수 음악 살롱에 가신다면, 음악 너머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황은혜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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