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중의 왕, 반구대호랑이

배성동 소설가 / 기사승인 : 2020-07-02 1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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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이다 호랑이가 온다(14)

▲ ⓒ문정훈


반구대암각화를 지키는 수호범

소암골, 재암골을 거쳐 한실재를 빠져나온 호랑이클럽 멤버들은 반구대암각화로 향하고 있었다. 대곡천 아홉곡의 중간 지점인 오곡(五曲)에 들어서자 대나무숲이 울어댔다. 일행이 반구대암각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멤버들은 전망대에서 바위산을 마주보고 섰다. 노을을 받은 반구대암각화는 눈이 부실 정도로 미끈했다. 전체적으로 약간 수그린 피라미드형의 바위산이었는데, 앞짱구 이마처럼 튀어나온 바위덩어리가 처마바위 역할을 했다. 그 처마바위 때문에 태풍이 불어도 암각화는 비에 잘 젖지 않았다. 바닥에는 처마바위에서 떨어진 비를 마시고 자란 흙 자리가 있었는데, 풀이 돋아나 있었다. 바위 곳곳에 붙어있는 부처손이라는 식물 역시 물을 흡수해 암각화가 젖지 않게 했다. 


반구대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산 계곡을 구신골(龜神谷)이라 불렀다. 오곡(五曲) 거랑에서 한실마을 못 미친 산비알 사곡(四曲)까지를 말한다. 예로부터 마을사람들이 출입을 금기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으슥하고 후미진 곳이기도 했지만, 눈에 불을 철철 흘리는 범이 나오고, 치렁치렁한 옷을 걸친 무당이 나타난다고 했다. 아마 바위산에 있는 수호범을 보고 그런 것 같았다. 바위산 앞강은 ‘건너가는 사람은 봐도 나오는 사람 못 봤다’고 해서 황천강, 사학골(死鶴谷)이라 불렀다. 자연히 사람 출입이 금기시되다보니 구신골 귀신골짝은 동물들의 차지가 됐고, 은둔자가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구신골 바위산에는 유신정권에 쫓기던 운동권 동네 청년도 숨어 산 적이 있었다. 청년은 바위산 산꼭대기에 숨어 뒤쫓는 사람을 살폈다. 앞강을 헤엄쳐 건넜고, 구신골 골짝에 짐승 올무를 놓아 버텼다. 호랑이나 무당 얼굴 같은 구신골 그림을 그저 이상한 그림쯤으로 여겼던 마을사람들과는 달리 이 청년은 장차 마을을 먹여 살릴 큰 보물이 될 것이라 했다. 


“저기 바위산 위에 범 얼굴 보이죠? 운동권 동네 청년이 발견한 수호범입니다.” 멤버들 모두가 김이장이 가리키는 바위산 상단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피라미드 바위산 7부 짬에 호랑이 얼굴 모양의 바위덩어리가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할매 얼굴, 할배 얼굴, 키아누스사우르스 공룡 형태의 바위들도 이곳저곳에 있었다. 특히 수호범은 귀가 쫑긋하고, 두 눈은 번쩍, 코는 납작한 바위 형태가 흡사 호랑이과와 꽤 닮았다. 얼핏 보면 삵 같기도 하고 고양이 같기도 했다. “열에 일곱은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함께 지켜보던 서위탄은 반구대범굴 1번 비녀굴 안에서 본 의문의 바위 형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최근 본 3D 분석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동안 저는 반구대암각화에 그려진 호랑이 표범이 모두 열한 마리인 줄 알았죠. 그런데 암각화를 오래 연구하신 어느 교수가 3D로 정밀 분석한 결과 스물세 마리가 있는 걸 밝혀냈어요. 제가 그 교수를 직접 만나 봤는데 화가 출신이더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요?” 줌으로 당겨 사진을 찍던 박소장이었다. “육안으로만 관찰해서 그랬죠. 과학적으로 실측해서 알아낸 거죠. 불명확한 호랑이까지 합치면 서른 마리도 넘는데요. 동물학자들이 연구할 과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구대암각화하면 고래를 떠올리지만, 알고 보면 육지에 위치한 반구대암각문의 중심축은 호랑이와 표범에 있다.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353점의 암각문 가운데는 육지동물이 고래보다 두 배가 더 많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고래 다음으로 많은 동물이 범이다. 한편, 한국암각화학회(한국학중앙연구원 유현주)가 발표한 자료에는 동물은 모두 12종 207점으로 조사됐는데 그 중에서 육지동물은 111점, 해양성동물은 87점이다. 육지동물 중에서는 범이 22점, 사슴 48점이 나온다. 그만큼 범의 먹이가 풍부했던 것이다. 이는 단일 암각화 안에서 가장 많은 호랑이 그림이 밀집돼 있는 암각화 유적이다. 육식동물들이 새겨진 위치를 보면 암각화 중심 암면에 호랑이 일곱 마리와 표범 두 마리가 포진해 있고, 주 암면에서 왼쪽으로 10미터 떨어져 있는 바위와 중심면 오른쪽 3미터 지점 바위 면에 호랑이가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하지만 호랑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본격적인 논의가 펼쳐지지 않은 상황이다. 당시에는 호랑이 외에도 곰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근 언양 화장산에는 곰과 도화(桃花)의 신화가 전해온다.

왕 중의 왕, 서 있는 호랑이

“저는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호랑이 세계에 끌렸어요. 저길 보세요. 산양 잡는 호랑이는 정말 매력적이지 않아요?” 평소 반구대암각문에 새겨진 호랑이에 관심이 많은 서위탄이었다. “반구대호랑이는 다른 나라에 있는 비해 사납지 않게 그려졌어요. 외국엔 사람 잡아 먹는 식인범 그림도 있어요. 그래서 친밀감이 들어요. 친밀하면서도 두려운 존재로 여긴 우리 민족성이 느껴져요.” 나는 암각화벽면 중앙에 있는 서 있는 호랑이를 콕 집어 말했다. “난 반구대암각화의 중심을 서 있는 대호로 봐요.” “중심 면에 두 발로 서 있는 호랑이 말이죠? 일어서서 망보는 것 같은데요.” “그렇소. 다른 육지동물은 죄다 네발로 있는데 유독 이 대호만은 두 발로 서 있잖소. 나는 왕 중의 왕이다 이거죠. 그래서 난 대곡천암각화를 호랑이암각화라 불러요.” 나는 서 있는 대호를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호랑이의 왕으로 보아왔다. 


“그건 단정 못합니다.” 평소 자기주장이 강한 한박사였다. “서 있다고 특정 지을 순 없어요. 왜냐면 임신한 호랑이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실제 임신한 배처럼 불록하잖아요‧‧‧‧‧‧.” 산 닭 주고 죽은 닭 바꾸는 것도 아닌데 공연한 트집이다. “그렇네요. 임신한 암호랑이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른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괜히 으스대다가 이마 깬 꼴이 된 나는 서위탄까지 가세하자 기분이 잡쳤다. 이러다간 남의 집 제삿날도 우기겠다 싶어 이참에 내 주장을 더욱 세게 밀어붙였다. “배가 무거운 임신 호랑이를 서 있게 표시한다? 그건 이치에 맞질 않아요. 새끼 가진 암컷이라면 더욱 일어서지 않으려 할 겁니다. 그건 뱃속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성 본능이니깐요. 주변 그림을 봐요. 다른 호랑이는 죄다 네발로 있지만 유독 이 호랑이만이 두 발로 있어요. 그건 힘센 최상위 지배자를 상징하는 겁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지껄이는 나를 한박사는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실룩거리는 그의 입술 모양으로 봐선 ‘대명천지 환한 대낮에 저 혼자 한밤중이네’라고 중덜거리는 것 같았다. 


한동안 동물학자와 작가 나부랭이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논쟁이 격앙되자 서위탄이 말머리를 돌렸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점박이만큼은 표범이 분명해요. 호랑이보다 네다섯 배가량 개체수가 많은 표범 그림이 두 점 밖에 없는 것도 특별해요. 아마 바위그림을 새긴 당시에도 사람 눈에 쉬 띄지 않았던가 봐요.” 범은 게릴라 같은 존재였다. 단독생활을 하는데다가, 은둔과 기습에 능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표범은 우리가 다녀온 반구대범굴을 드나들던 놈들로 봐야 합니다.” 전망대에 설치된 반구대암각문 안내판으로 눈길을 돌린 한박사는 “저놈은 멧돼지가 아닙니다. 박물관에서 동물도록 만들 때 자문했던 기억나네요. 멧돼지 새끼로 주장하던데, 아무리 봐도 발이 땅에 붙어 있는 꼴이 고슴도치 모습이었어요.” 한박사는 다른 육식동물들도 지적했다. “이 녀석을 두고 물소라고 말하는 데, 저는 코뿔소로 봤습니다. 그럼 그 시대에 코뿔소가 있었느냐 하면 아닙니다. 그게 미스터리가 될 수 있겠죠.” 이어서 아래에 있는 동물을 가리키곤 “러시아 학자가 이 그림 보면 궁금해 할 겁니다. 저는 큰 놈을 엘크(말사슴)로 봐요. 여기 미스터리한 동물 또 있네. 꼬리 감긴 이 동물은 확인이 안 됩니다.” 


러시아 학자들이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해외 탐사를 하면서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실에 놓여 있는 반구대암각화 모형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었다. “러시아 학자들은 한반도 호랑이 역사를 만 년으로 보고 있어요. 반구대호랑이가 7천 년 전에 그려졌다면 얼추 얼개가 맞는 셈이죠. 그렇다면 반구대호랑이 역사가 동북아호랑이 역사 아니겠어요. 300년 전, 반구대에 나타난 황백색 큰 호랑이가 있었어요. 안동 명문가 권섭이라는 선비가 이곳에서 황백색 대호를 만났어요. 칠천 년 전부터 대곡천 일대를 지배하던 그 호랑이가 권섭을 깜짝 놀라게 했던 거죠.” 못 먹는 버섯 곱기는 더 곱기도 하다. 말이라도 번질나게 하자는 생각에 나는 게거품을 물었다. 시종일관 내 주장을 경청하던 지역포수 배민출이가 엄지척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미꾸라지 먹고 용트림하는 기분이었다. 


배성동 소설가


※ 이 글과 그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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