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진영논리

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 17대 국회의원 / 기사승인 : 2020-07-22 11: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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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여성

박원순 시장의 실종과 자살로 우리 사회는 진영 간의 대결과 젠더, 세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화가 나고 답답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다. 진보적으로 살았던 존경하는 분이 성범죄 에 연루됐다는 사실과, 해명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최소한 마지막 유서에 사실무근이라는 말이 있기를 기대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억울했을까? 최소한 이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회피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한 사람의 삶이 공이 크다고 해 절대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추론은 문제가 있다. 공은 공대로, 잘못은 잘못대로 평가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어떤 모임 자리에서 내 국회의원 시절에 남성의원들로부터 성추행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듣던 한 남성이 위로의 말인지, 아니면 같은 남성에 대해 변명을 하고자 했는지는 몰라도 ‘예뻐서 그랬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나를 예뻐해서 손을 주무르고 껴안으려고 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예쁜 사람한테는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래도 되나? 순간 당황스러워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나 그 이후 지금까지도 ‘왜 지난날 그 동료 남성의원에게 욕을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여자가 예쁘면 추행해도 된다는 뜻의 생각은 잘못됐다고 왜 지적하지 못했을까…’하며 계속 자책하게 된다. 그 남성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당하는 여성에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트라우마인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최고의 권력기관 안에서도 여성 국회의원은 동료의원이 아니라 ‘며느리’이거나 ‘여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물며 시장, 도지사와 비서나 말단 공무원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갑’과 ‘을’의 관계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우대를 받는 위치에 있는 권력자는 ‘을’의 충성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 남성들이 여성에게 갖는 가부장적 의식으로 인해 공사 구분 없는 충성의 요구는 성범죄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을’은 감히 ‘갑’에게 거부의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다. ‘왜 지금 와서 문제를 삼느냐’는 문제제기는 ‘을’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을’은 자신을 보호하며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을’이 문제를 제기할 때에는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을’은 그동안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완곡한 선 긋기, 회피, 무대응, 억지웃음 등 온갖 우회적인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했을 것이다. 


고 박원순 시장은 성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예단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와 여성단체, 변호사를 문제 삼고 있다. 제시한 증거가 별 것 아니라는 주장과 피해자가 당당하게 나서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변호사의 과거 활동 이력을 갖고 숨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식의 진영논리도 힘을 얻으며 확대되고 있다. 그러한 진영논리는 힘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범죄의 본질을 제대로 대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생각과 같으면 내 편이고, 다르면 적으로 규정하는 흑백논리로 문제를 바라보면 발전된 대안을 만들 수 없다. 여성에 대한 혐오 감정을 일으키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여성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고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그나마 의미 있게 남기를 원한다면 오랜 역사 속에서 억눌려온 여성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 17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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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 17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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