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황은혜 기억과 기록 회원 / 기사승인 : 2021-09-13 0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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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소설을 읽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소설에는 현실에는 없는 화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내 주인공이 직접 말하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이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살아있는 동물이나 식물, 사물들이 화자인 경우도 있다.


아무튼, 독자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소설 속의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종종 책 밖으로 나와 소설과 현실 사이 어딘가를 방황한다. 그 방황이 끝나고 나면 비로소 소설의 진정한 결말에 다다를 수 있다.


이상한 ‘좀머’ 씨. 주인공 좀머 씨는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마을 근방을 걸어 다녔는데 돌아다니지 않고 지나는 날은 1년에 단 하루도 없었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볕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더라도 줄기차게 걸어 다녔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마을에 와 정착했던 시기가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대충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인 ‘아직도’ 나무 타기를 좋아하는 소년은, 자신의 집에서 불과 2㎞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좀머 아저씨가 왜 온종일 호두나무 지팡이를 쥔 채 걸어 다니는지 궁금하다. 어른들은 그가 폐소 공포증 환자여서 좁은 공간에 있기 어려워 그렇다고도 하고, 가만히 있으면 경련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모습을 숨기기 위해 쉬지 않고 계속 걷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좀머 씨가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길 뿐 그 이상의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좀머 씨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냥 좀 내버려 두는 것.


소년이 절망에 빠져 죽음을 결심한 순간 나무 위에서 우연히 목격한 좀머 씨의 행동은 영락없이 적군을 피해 도망 다니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사방을 모두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두 다리를 뻗고 바닥에 누웠고, 준비해온 작은 빵을 먹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로 사방을 살피며 허겁지겁 먹었다.


검은색 머리에 숱이 많았고, 집요한 눈빛과 입술에는 확신이 차고 거의 뻔뻔스럽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었던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에기디우스 좀머를 폐소 공포증 환자로 만든 것은 아마도 참혹한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을 지낸 모든 어른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서는 누구도 ‘전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과연 누가 진짜 이상한 사람인 걸까? 


소설을 어느 한 시대를 담은 기록으로 본다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회가 재건되고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잊힌 참전군인들의 불행한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에서 <좀머 씨 이야기>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데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으니 좀 그대로 내버려 둬 달라는 누군가의 외침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전 세계적인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문학상 수상과 인터뷰를 거절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는 기이한 은둔자이자 언어의 연금술사’로 소개되곤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설을 시대적 산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문학으로만 볼 것인지의 문제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든 읽는 사람은 독자이고, 저마다의 결말에 도달할 것이므로. 


나의 결론은 역시, 전쟁이 남긴 지독한 상처를 혼자 힘으로 견뎌내야 했던 좀머 씨의 고독한 싸움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때는 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던 사람들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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