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끌까끌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07-02 11: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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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일기

여럿이 모이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일대일이 편하고 셋까지는 괜찮은데 넷부터 어렵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못 끼어든다. 머리로 대화의 흐름은 따라가고 있다. 누군가 어떤 경험에 대해 말하면 ‘나도 그런 적 있는데’ 떠오른다. 내 경험담을 말할까 말까 하다가 주제가 바뀐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망설였던 말을 삼킨다. 상대방이 말하는 중간에 끊지 않으면서 입을 떼기가 어렵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수다 속에서 갈 곳을 잃는다. 누군가 조용한 내게 질문을 하면 그제서야 말한다. 나에게 관심의 표현은 질문이다. 질문해주길 기다린다. 쉼표 없이 말 많은 사람과 있으면 금방 방전된다. 


일대일로 만나면 질문이 많다. 누구나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으니까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질문하고 듣다 보면 헤어질 시간이다. 내 이야기까지 나오려면 오랜 기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친해지기까지 계절이 여러 번 바뀐다. 


가벼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태도가 진지해서 그런가 보다. 대화할 때 주변부 말고 중심만 다루고 싶다. 뭐 먹어 봤냐, 맛있더라, 그거 써봤냐, 괜찮더라 같은 이야기에 심드렁하다. 돌아보면 우리 집은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엄마는 언제 아플지 아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에게 마음 편히 일상을 나누지 못했다. 가벼운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다. 시답잖은 소리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나는 압축되고 무거워졌다. 힘내서 열심히 사는 건 쉬운데 힘 빼고 대충 사는 게 어렵다. 수다도 내겐 연습이 필요하다. 


최근 나를 관찰한 사람이 해준 피드백이 있다. “차근차근 말해보세요.”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다. 이것 때문에 어그러지는 관계들이 있을 정도다. 생각은 많은데 말할 타이밍을 자꾸 놓치다 보니 서론과 본론을 떼먹고 결론부터 툭 말한다. 그럼 상대방은 깜짝 놀란다. 나는 예전부터 생각해와서 덤덤하다. 혹은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독기가 서려있다. 그때그때 서론부터 말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남편도 수다가 어려운 사람이다. 밖에 나가면 우린 조용한 부부다. 남편에게 내가 깨달은 ‘차근차근’의 의미를 설명했다. 남편이 금방 수긍한다. 신혼 때 마일리지 적립해서 VIP로 만들지 말고 그때그때 말해달라고 부탁했던 남편이다. 미안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배운 걸 써먹는 내 연습대상이다. 집에서는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해가며 가벼운 이야기를 편하게 한다. 서른 넘은 내가 열 살도 안 된 두 아이와 노는 시간이 즐거운 이유다. 아이들과 있을 때 하루 중 가장 많이 웃는다.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은 가사 없는 음악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가 팝송과 요즘 노래를 듣지 않는 게 바로 가사 때문이다. 가사를 음미한다. 옛날 노래가 요즘 노래보다 가사는 더 좋다. 주로 김동률, 김광석, 조용필, 이선희 노래를 듣는다. 나는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가 보다. 좀 덜어내면 좋겠지만 어쩌겠나, 그냥 이게 나다. 개인적으로 ‘멍 때린다’는 표현은 다른 행성의 말 같다. 어떻게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1초도 멍 때리지 않는 내게 나타나는 신체증상이 있다. 뒷면에 석고를 바른 듯한 뻣뻣함을 조심해야 한다. 융통성이 부족한 나는 유연성도 없어서 몸이 자주 굳는다. 고로 나는 운동이 생존과 맞닿아있다. 


살면서 매끈매끈한 나와 까끌까끌한 나를 경험할 때가 있다. 요즘은 후자다. 어렴풋이 불편했던 내 모습을 선명하게 알게 됐다. 쓴 초콜릿이 혀에서 녹아가는 중이다. ‘알았으니 이제 어떡하지?’ 물음표가 생긴다. 알면서 겪는 거는 전보다 다를 거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코에서 한숨이 길게 나온다. 뭘 또 얼마나 더 변해야 하나 싶어서. 나는 변신로봇이 아닌데 말이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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