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백성현 글 쓰는 아빠 / 기사승인 : 2021-12-21 00: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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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일터로 떠나는 오토바이 행렬이 아직 어둠을 벗지 않은 새벽을 깨운다. 한 무리의 엔진 소리가 시선을 뺏었지만 이내 회수하고 만다. 날이 밝아오면서 한산하던 가게 앞 사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집을 나선 중고등학생들의 발걸음은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들의 걸음걸이만큼이나 표정들도 어둡고 무겁다. 요즘은 휴대폰을 보느라 얼굴을 내리깔며 걷는다. 그러다 아는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밝아진다. 감정이란 마주치는 무언가에 따라 쉽게 변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한바탕 소란도 인다. 어느새 그들이 남긴 발자취 위로 초등생들의 발자국이 덮는다. 그들은 횡단보도를 지키는 어르신들의 절도 있는 신호에 맞춰 건너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한다. 초등학생들의 행렬은 좀 더 다채롭다. 중고등학생이 흑백이라면, 초등학생은 컬러다. 어느덧 아침이 저물며 거리는 또 다시 한산하다. 생동감이 넘쳤던 시간도 일상을 접하면 색이 바래진다. 일과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다. 일상은 마법처럼 우리 삶의 채도를 낮춘다.


시즌과 더불어 나름 일감이 많아진 난 이른 아침 풍경을 맞았다. 카페 안은 초등학생 아이를 보낸 엄마들로 두세 테이블이 채워졌다. 그리고 그녀들의 수다에 이야기꽃이 폈다. 그녀들에게도 무거웠던 아침이 다소 가벼워졌으리라. 난 강의할 짐을 챙겨 서둘러 해당 학교로 나서야 했다. 마침 카페와 불과 30여 미터 떨어진 초등학교 학생들과 만나는 날이었다. 나 역시 학생들과 함께 등교하는 기분이다. 학교에 도착해서 복도를 지나치면 아는 얼굴이 반이다. 늘 얼굴 맞대는 가게 손님들이라 무지 반갑다. 아이들도 아는 체하기 바쁘다. “여기 왜 왔냐”고 묻는다. 이때 서로 모르는 척하면 서운해진다. 그들도 우리 가게를 모를 리 없고, 나도 그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 근처엔 초중고 학교 10개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울산 시민이라면 다들 짐작하겠지만 울산에 그런 지역이 한 군데 있다. 전국을 뒤집어 봐도 학교가 몰린 이런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때 우리 지역의 주요 산업과 더불어 주민들이 외지에서 유입되던 시절이 있었던 걸로 짐작한다. 더불어 나고 자란 학생들의 배움터가 이곳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그 덕에 심심치 않게 학생들을 보고 만난다.


십 대를 사는 학생들과의 만남은 내겐 우연이 아니다. 그들과의 인연은 청소년지도사였던 이전 직장에서부터였다. 사실 지금 내 나이로 보면 그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난 그들에게 그저 ‘꼰대’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으로 우연히 지구에서 함께 사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과의 사이에서 내게 그들과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과 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살았다. ‘라떼(나때)는 말이야~’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세 그들과 100미터는 멀어진다. 그들 앞에서 난 ‘라떼(Latte)’를 팔긴 하지만, ‘라떼’를 떠올리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난 십 대 시절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가까웠던 친구들도 선생님도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 그저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 기억의 파편들을 다시 모아 억지로 붙여 보지만 그것은 결국 스토리로서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그들과 좀 더 가까운 곳에 드나들면서 문득 십 대의 기억을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과거 십 대의 경험과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설렜고, 뭘 몰랐지만 당당했던 그 시절의 풋풋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일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십 대를 살게 될 아이를 맞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처럼 십 대를 기술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십 대와 공감하는 법을 배워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 기억이 내게 필요하다. 아이에게 어른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다가가기 위해서 말이다. 성장하는 아이에겐 설명보단 맞장구쳐줄 친구가 더 필요하니까.


백성현 글 쓰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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