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사회 나가 자립할 수 있었으면

이창희 전국장애인부모회 울산지부 북구지회 총무 / 기사승인 : 2020-07-23 11:17:57
  • -
  • +
  • 인쇄
학부모 칼럼

세 아이 중에 첫째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21개월 정도 때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정말 불안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첫째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였고, 불행하게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내 삶도 불투명하고 불행하다고 느꼈습니다.


불안과 걱정이 커지자 내가 해야 할 일이 복리이자처럼 불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첫째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일일이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각처럼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절망스러운 마음이 불어나 속에서 천불이 나기도 했습니다. 첫째 아이의 미래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절망과 불안과 걱정만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정보, 지적장애 관련된 모든 도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아니 완치가 된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5일을 언어치료, 인지치료, 심리치료, 감각통합 등 거의 모든 치료에 매달렸습니다.


집에서도 집중력을 키우려고 퍼즐 맞추기도 해봤습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한자리에 앉아 퍼즐을 완성했습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증후군) 성향을 갖고 있는 아이가 퍼즐을 완성한 것은 정말 내게 놀라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 기복을 보였습니다. 소리를 질렀다가 울었다가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다가도 기뻐했다가 다시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느낄만한 모든 감정을 하루에 다 쏟아냈습니다. 많은 지적장애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첫째 아이는 좀 더 심한 편이었습니다. 


동생들에게 첫째 아이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동생들에게 언니를 이해하라고만 했습니다. 점점 삶이 고달프고 억울하고, 아이의 예민하고 짜증내는 하나하나가 내 삶을 통째로 빼앗아 간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알아봤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아이를 데려오고 다시 월요일에 기숙사 학교에 데려다 줬습니다. 아이는 한 방에 10명씩 자는 곳에서 엄청 힘들어했습니다. 기숙사 학교에 다닌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아이는 방광염에 걸렸습니다. 검사를 하는 데서 단백뇨가 빠졌는지 의사 선생님은 당뇨가 의심된다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라고 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학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2주 입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복혈당이 270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는 최고의 예민함을 보였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당뇨는 몸 안의 다양한 호르몬들을 분비하는데 그동안 아이의 심한 공격성과 예민함과 스트레스들이 당뇨의 시작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큰 아이 자체를 인정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잡기로 했습니다. 당뇨를 인정하고 큰아이에게 양약을 먹이려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뇨로 유명한 한의원에 1년 반을 다니고 침 치료에 한약에 식이요법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아이는 양약을 먹지 않고 식이요법으로 당뇨를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어른도 정말 힘든 식이조절을 하는 큰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회성도 좋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큰아이가 미래에 사회에 나가 자립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려운 걸 알고 있습니다. 특히 큰아이는 지적장애와 당뇨까지 있으니 더 걱정입니다. 미래에 큰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24시간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창희 전국장애인부모회 울산지부 북구지회 총무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창희 전국장애인부모회 울산지부 북구지회 총무
뉴스댓글 >

오늘의 울산 이슈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