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안겨 준 새로운 경험

박진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울산지부 회원 / 기사승인 : 2020-07-02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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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1월 중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에 남편과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만치 않은 금액임에도 줄을 서서 일회용 마스크를 구매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또한 비장한 눈빛으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쇼핑카트에 라면을 비롯한 생수, 냉동식품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듯했다. 코로나19로 그곳은 사람들의 흔한 일상이 불안감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항상 이런 위기 상황에 반 박자 느린 나로서는, 올해는 봄에 불국사 겹벚꽃 구경을 가고, 여름에는 정자 몽돌해수욕장에서 캠핑을 하며, 가을에는 신불산 등산을 가고, 여유가 생기면 겨울에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계획하고 있었다.


예전의 사스나 메르스 사태처럼 어느새 지나가버리거나 신종플루처럼 치료약을 보급해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전염병일 것이라 여겼다. WHO가 팬데믹 선언까지 하며 전 세계가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 할 상황이 될 것이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코로나가 무서운 녀석이구나’, 내 생활에 직접 경계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바로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보내온 안내문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 학교 관계자와 학생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학교 방문을 제한할 것이며 졸업식을 각반 교실에서 화상으로 진행하기에 학부모들의 출입을 금한다고 돼 있었다.


아무렴 아이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이지. 외동이며 첫 졸업식인 아들에게 무사히 6년을 졸업했음을 직접 축하하고 손수 만든 예쁜 꽃다발을 건네주지 못한 것과 부모 없는 졸업식을 마친 채 교문을 홀로 걸어 나올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에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뒤로도 코로나19로 익숙한 삶의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입학식도 없었고, 이미 맞춰뒀던 교복은 오래도록 옷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으며, 등교 결정 문제 등 정부 교육정책이 갈팡질팡했다.


2월 중순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6월 중학교에 직접등교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 사이의 일이다. 학교며 학원도 갈 수 없었던 아이는 친구들을 비롯해 친인척과의 만남 역시 자제된 상태에서 집 안에서 휴대폰과 컴퓨터와 시간을 보내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6학년 졸업 직전에야 생애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된 아이와 엄마인 나는 “이제 그만 해라”, “엄마. 조금만 더”라는 대화가 끊이지 않는, 스마트폰게임과의 전쟁을 날마다 치르게 됐다. 거기다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컴퓨터를 공부방에 뒀더니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에도 흠뻑 빠졌다.


날마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를 이해 못할 것만은 아니었다.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계속 공부나 책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닐 터라, 아이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보드게임 같은 다른 놀이와 특별 홈요리를 찾아서 해봤지만 가정에서 종일 모든 시간을 보내기엔 현실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집에는 엄청난 일이 생겼다. 이미 맞춰 뒀던 새로 산 교복이 등교도 하기 전에 몸에 꽉 끼였다. 집에만 있던 아이는 잘 먹고 잘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코로나 확진자를 피할 수 있었지만 몸이 확찐자가 됐다. 


운동은 부족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없었기에 한적한 강변의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도록 했다. 학교 정규수업을 대체하는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하루에 한번 아이는 신나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몇 달째 반복되는 갑갑한 집안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가 바깥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땀을 흘리며 얼굴에 바람을 가르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렇게 예전과는 다르지만 조금씩 나름 삶의 형태가 안정돼 가며 몇 주가 지나던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의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자전거도로에서 강둑 밑으로 떨어져 크게 다쳤다고 했다. 자전거전용도로에 불법 주차된 자동차를 피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나는 119구조대 분들이 아이를 옮겨올 병원 응급실로 서둘러 택시를 타고 갔다. 아들은 뼈가 세 군데 부러지고 동맥이 끊어져 옷이 피투성이가 돼있었지만, 다행히 장장 4시간의 수술 후 보름 만에 퇴원했고 다행히 교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완쾌하려면 여러 고비가 남아있지만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들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리라. 우리네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아직 끝나지 않은 재난인 코로나19가 괜스레 원망스럽다.


박진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울산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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