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구에 근현대사 기억의 공간이 필요하다

백무산 시인 / 기사승인 : 2019-03-13 11: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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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도심의 공동화는 울산 정체성의 공동화다. 학성동 울산역은 울산 공단의 관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화의 관문이었다. 울산역은 지역을 넘어 국가적 상징공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중구에 “울산 근현대 박물관” “학성동 울산역 복원” “근현대사 테마거리”가 필요하다.


 

▲ 1960년대 학성동 옛 울산역. 사진=울산시


울산은 50여 년 동안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중심도시이면서도 자신의 역사를 돌아볼 기억의 공간 하나 제대로 없는 비정한 도시다.


국가공단으로 지정되던 1962년 일인당 국민소득 90불도 안 되던 경제 수준을 불과 한 세대 만에 3만 불 시대로 도약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지만, 여전히 울산은 한국의 ‘공장지대’일 뿐이다. 서구에서 200여 년을 경과해온 산업화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격동의 역사를 지닌 도시 어디에도 그에 걸맞는 자부심을 간직한 기념 공간이 없다.


인간의 역사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삶을 불멸로 이끈다. 도시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사를 잊어버리는 순간 주어진 욕망만이 현실이 되고 우리는 부질없는 존재가 된다.


지난 한 세대는 우리 역사에서 이전과 이후를 갈라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한 세대를 온전히 바쳐 한 시대를 새롭게 열어놓은 것이다. 바로 그 피와 땀으로 생애를 헌신한 초기 산업화 세대는 우리의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가 그 세대를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그 시대의 피와 땀 그리고 폭력과 눈물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이제 그 세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가 그 기억을 잃어버리면 미래의 목적들도 잃어버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도시는 성장을 향한 질주와 팽창의 속도만큼 삶의 유산과 전통, 기억의 공간들을 몰아내고 파괴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맹목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마치 과거를 지워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 양 지난 시간들을 제거해 왔다. 모든 희생과 그늘을 망각해야만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처럼 기억을 지워왔다.


격동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에 기념비적 상징물 하나 없다. 그나마 있는 공업탑은 전시행정물의 단순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고, 시민들은 더 이상 이 도시의 상징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울산의 랜드마크라고 떠들어대는 태화루는 과시적 욕망의 상징물이자 몰역사적인 졸부시대의 기념물일 뿐이다. 시립박물관의 산업관에는 인간의 피와 땀과 체취는 찾아볼 수 없고, 산업생산물만 과시적으로 전시하면서 어떤 정신도 배제한 채 차가운 공장만을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을 배제한 개발주의와 성과주의는 오히려 물신화를 조장한다. 물신화는 인간소외를 가중하고, 인간이 생산한 것이 인간을 되레 추방하게 만든다. 그것은 이 도시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에게 소외감과 박탈감을 부채질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지난 한 시대의 기억을 온전하게 지켜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도시와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들의 자부심을 제대로 보존해야 한다. 그렇다고 영웅적이거나 위대한 행위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피와 땀의 진실을 보존하고 기리는 행위가 올바른 역사를 지키는 길이다.


중구는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표방해왔던 것과 달리 중구를 문화도시라고 인식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구가 울산의 역사와 전통의 중심지였던 것만큼 그에 걸맞는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다. 중구 도심의 공동화는 곧 울산의 정체성의 공동화를 의미한다.


학성동 울산역은 울산 공단의 관문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관문이라고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상징적 장소다. 지역을 넘어 국가적 상징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도로 환경이 매우 취약하던 울산의 60~70년대에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고, 80년대까지도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 철도였다. 울산 공단의 초석을 다질 때까지 학성역은 대부분의 물류와 인력을 실어 날랐다. 초기에 공단을 건설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최초로 발을 내디딘 곳이 학성역이었다. 도시의 그 어떤 공간보다 추억과 상실과 희망이 교차하고 눈물과 애환이 깃든 곳이다. 또한 울산의 근대는 동해남부선과 울산역이 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학성동 울산역은 울산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산업화의 관문으로 상징화할 수 있는 장소다. 울산역은 공간의 성격 그 자체로 울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역이 사라진 이후부터 활력을 잃고 공동화된 학성동과 역전시장 일원은 시간이 멈추어 있다. 이제 우리의 기억이 그곳을 다시 불러내어야 한다. 바로 그곳에 실종된 울산의 정체성이 방치돼 있기 때문이다.


백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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