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나눌 공간이 필요해

박다연 취업준비생 / 기사승인 : 2019-08-01 11: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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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감

서울에 올라 온지도 5개월째. 서울살이에 나름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나의 시간의 흐름을 스쳐 지나가버리는 표준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서울 와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배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매월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오픈 공론장’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오픈 공론장은 주로 2030청년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지닌 생각과 사회를 향한 비판,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자유와 안정, 청년정치, 최저임금, 비정규직, 젠더, 차별 등 매월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전문가의 짧은 강의를 함께 듣기도 한다.


이번 달 주제는 비정규직 문제였다. 비정규직 문제의 층위를 나누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 외주화와 사내하청, 노동권의 사각지대, 여성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비정규직 워라벨 등 각 조마다 좀 더 세부적으로 공론화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평소에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나의 고충과 불편하고 어두운 감정을 나눌 수 있다. SNS를 통해서 쉽게 공유되는 행복한 감정과 달리, 어두운 감정은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고 내 안에서 가둬져 스스로를 옭아맨다. 친구들과 가끔 술 한 잔 하면서 꺼내 놓기도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알콜과 함께 증발해버리고, 힘든 일상이 또 다시 나를 집어삼킨다. 그래서 오픈 공론장은 단순히 고민을 쏟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각자가 지닌 문제들을 종합해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에 더욱 의의가 있다.


7월 오픈 공론장에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공론화를 한 뒤, 참가자들이 사회 고발적인 짧은 연극을 만들면 12월에 ‘극단 99도’에서 이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을 공연한다고 했다. 이번 달은 참가비도 주기에 뭔가 했더니, 모든 참가자가 직접 연극을 만들고 연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었다. 연극을 기획한다는 정보만 알고 갔는데, 연기도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쩐지 사기 당한 느낌이 들었다.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하는 ‘3만원 쉽게 벌 수 있는 거 아닙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이 상당히 웃기면서도 슬프게 들렸다. 연극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됐고,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발 빼는 사람 없이 모두가 열심히 참여했고, 막상 해보니 나도 꽤나 재미있었다. 물론 연기는 너무 어렵고 부끄러워서, 공기 중으로 증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말이다. 여섯 조가 보여주는 짧은 연극은 각 조의 주제를 담고, 비정규직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연극배우인가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정말 어설펐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귀여웠다. 사람들이 연극을 보면서 참 많이 웃었는데, 그 웃음 속에는 깊은 공감이 묻어있었다.


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반복되는 일상 아래에 묻어둔 개인의 슬픔을 꺼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다. 각자의 고민을 꺼내놓고 보면, 각각의 문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고, 모든 고통들은 얽히고설켜 있다. 결국에는 하나의 맥락을 지닌 이 어두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창구가, 특히 울산에는 훨씬 더 부족하다. 울산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늘 갈증을 느껴왔다. 서울에 와서 오픈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나의 감정이 전부 해소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답답한 사회 속에서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아플 때, 속내를 드러냈을 때, 질타 받지 않고 위협받지 않는, 위로 받을 수 있는,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 울산에는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박다연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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