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지리지에 수록된 동백섬(2)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 기사승인 : 2020-05-29 1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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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백

동백도(冬柏島)

동백도란 이름은 매우 귀한 이름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의 동백도(동백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783-1 동백섬,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소이작리 동백섬, 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 덕흥리와 백양리 동백섬의 5개가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울산 관련 옛 지리지에 동백도(冬柏島)가 수록된 최초의 지리지는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1454)이고 이 지리지에는 “동백이 병영성 남쪽 섬에 있다(冬柏在島郡南)”고 했다. 다음으로 오래된 문헌은 <동국여지승람>(東國餘地勝覽, 1481)이고 다음이 이 책의 증보본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 1531)이다. 이 두 책에는 동백도(冬柏島: 동백섬)가 “병영성으로부터 남쪽 30리(12km)에 있고 섬에 동백이 가득해 동백도라 부른다(在郡南三十里冬柏滿島故名)”고 설명하고 있다. 


이 두 책의 설명은 그 뒤에 발간된 <학성지>(鶴城誌, 권상일, 1749), <대동지지>(大東地誌, 김정호, 1864), <울산부여지도신편읍지>(蔚山府餘地圖新編邑誌, 1786), <울산읍지울산부사례>(蔚山邑誌蔚山府事例, 1894)에 그대로 설명돼 있다. 그리고 <울산읍지>(이석정, 1934), <흥려승람>(박기홍, 1937), <조선환려승람>(이병연, 1937)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설명돼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동백도는 현재 목도상록수림을 부르는 이름이다.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은 1454년에 간행된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 이후 줄곧 동백도란 이름으로 불렸고 지금도 섬에 동백나무의 군락이 발달해 있으므로 동백섬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
 

▲ 팔도총도(1683), 최초로 울산 동백섬(동백도)이 표기된 전국지도


춘도(椿島)

춘도(椿島)는 국토해양부나 각종 출판사에서 발간한 지도에 2000년대에 들어서도 쓰여 있는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산 13번지 동백섬의 일제시대 이름이다. 춘도란 이름은 우리가 정식으로 붙인 우리 이름이 아니라 일제 때 일본인들이 붙인 동백도의 일본식 한자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참중나무 춘(椿)으로 적고 쓰바키(ツバキ)라고 읽으며, 섬을 도(島)라 적고 시마(シマ)로 읽는다. 일본인들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뒤에 효과적인 식민 통치와 경제적 수탈을 위해 전국적으로 실시한 토지조사사업, 잠자던 자연자원조사사업, 문화재조사사업 등 대대적인 조사사업을 벌였다. 이때 우리말과 한자로 돼있던 우리나라의 지명을 그들의 입맛대로 일본식 한자로 바꿨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땅이름을 자기들 식 한자로 바꿈으로써 그들이 쓰기에 편리한 점도 있었겠으나 우리의 전통적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꿈으로써 시민의식을 약화시키고 민족의 얼을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조치일 수 있다. 


1918년 조선통독부에서 발간한 1/5만 지도에는 동백섬(지금의 목도)을 죽도(竹島)로 표기했다. <조선지지자료집>에는 목도란 섬은 수록하지 않았고 목도마을을 목도동(目島洞)으로 수록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은 동백섬(동백도)의 행정상 지명을 일본식 한자인 춘도로 표기하고 쓰바키시마(椿島, ツバキシマ)라고 읽었다. 쓰바키시마(椿島, ツバキシマ)란 이름은 일제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나 일부 지식인과 친일 인사들 사이에서 사용됐지만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는 동백섬이나 목섬으로 불렸을 것이다. 지금은 주민들이 이주하고 없지만 주민들이 그 곳에 살 때 주민들끼리는 목스미마을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러다가 동백섬이나 목섬으로 부르던 장년과 노인 세대는 점차 세상을 떠나고 일제의 교육을 받은 세대의 수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쓰바키시마로 부르는 세대가 증가했다. 조선총독부가 동백섬을 포함한 목도마을의 상록수림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37년 자료에는 목도와 춘도를 병기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정부에서 행정적으로 춘도라는 일본식 이름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집권과 정권 연장에 눈이 멀어버린 이승만과 그 정권은 친일 인사들을 주요 직책에 등용한 것은 물론 친일 경찰을 앞세워 반민특위를 고의로 무력화시키는 것도 모자라 강제 해산시켰고, 6.25 전쟁이 나자 반민특위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시키는 등 마땅히 청산해야 할 친일 인사와 그 문화적 잔재의 청산과는 반대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사라져야만 했던 일제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쓰바키시마란 이 어려운 일본식 발음은 사라졌으나 주소 등 지명을 표기한 일본식 한자들을 한글이나 우리식 한자로 바꾸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계속 답습해 사용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일본식 한자인 춘도(椿島)란 이름이 살아남아 있다. 1948년에 개교한 초등학교의 이름이 춘도국민학교였고 이 학교의 교가에도 “평화스런 춘도를 빛나게 하자”는 가사로 춘도란 지명이 들어가 있다. 공원의 이름도 춘도공원이었다. 춘도란 이름은 2003년에 조선일보가 발행한 전국도로지도, 2006년에 간행된 울산광역시전도 등 지도에 아직도 나타나고 있고 일제시대를 살았던 노년층은 물론 40~50대 장년들까지 사용하고 있다. 2019년 간담에서도 현재 목도란 이름을 동백섬으로 환원하자는 주장은 못하고 춘도로 개명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해방과 동시에 버렸어야 할 이름인데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말로만 극일(克日)이지 실제 실천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고 또한 매우 부끄러운 일예다.

명산도(鳴山島) 명선도(鳴蟬島)

김정호가 1864년에 간행한 <대동지지>에는 명산도(鳴山島)가 울산부 남쪽 10리(南十)에 있다고 적혀 있고 이 뒤에 간행된 <울산읍지>(1934), <흥려승람>(1937), <조선환여승람>(1938)에 명선도(鳴蟬島)가 울산부 남쪽 오십리에 있다(在府南五十里)고 실려 있다. 이 섬은 서생면 진하리 회야강 하구 해수욕장 앞에 있고 주변에 서생왜성이 있어 정유재란의 접전 현장이다. 섬은 곰솔이 우점하는 무인도다. 


명선도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나지 않는 섬이라는 뜻의 아름인 ‘맨섬’이라는 소리가 변해 ‘매미섬’이 됐다가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매미 선(蟬)’자가 들어간 명선도(鳴蟬島)가 됐다는 설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름철에 매미가 많이 울었으므로 ‘매미 울음으로 유명한 섬, 매미가 우는 섬’이라는 뜻에서 명선도(鳴蟬島)라고 불렸다는 설도 있으며, 산이 우는 섬이라하여 명산도(鳴山島)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동구 일산동 일산만에도 한글로는 매미섬이라고 적고 한자로 선도(蟬島) 선암(蟬岩)이라고 적는 바위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과 비교해 볼 때 ‘맨섬’에서 매미섬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명선도는 나무와 풀이 자라지 않는 맨섬이 아니라 크기는 작지만 수풀이 울창한 섬이기 때문에 맨섬이 변화해서 명선도가 됐다는 설명은 이치에 맞지 않다.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에 간행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는 ‘신선으로 유명한 섬’이라는 뜻의 명선도(名仙島)로 표기하고 있다.


이 섬은 무인도로 진하 해수욕장 앞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섬에는 후박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송악 등 상록활엽수와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해안가에는 갯메꽃 갯완두 갯질경이 갯까치수염 갯무 갯사상자 등 염생식물들과 참나리 원추리 산국 등이 자생하고 있다. 이 섬에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동백섬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정호(1861)의 <대동여지도> 등에는 동백섬이란 표기가 명선도 근방으로 돼 있다.


제비섬 연자도(燕子島)

제비섬 연자도(燕子島)는 <울산읍지>(1934)와 <흥려승람>(1938)에 울산 병영성 남쪽 사십리에 있다(在府南四十里)고 실려 있다. 1938년에 간행된 <조선환여승람>에는 <울산읍지>와 <흥려승람>에서 설명된 거리보다 10리 더 먼 울산 병영성 남쪽 50리에 있다(在府南五十里)고 실려 있다. 


제비섬은 온산읍 당월리 해안에서 약 600m가량 떨어져 있는 1만5300㎡ 규모의 작은 섬이지만 울산에서는 가장 면적이 넓은 섬이다. 그래서 제비섬을 큰섬 또는 대섬, 대도라고 부르기도 했다(온산읍지간향위원회, 2002). 과거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동백나무가 자생했으며 한 때 몽고병란 때는 울산의 토호가 전쟁을 피해 이 섬으로 들어가 살았던 유인도였으나 어느 시기에 무인도로 변했다. 


이 섬에는 기와 쪽들이 발견되고 있으나 지금은 무인도가 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온산읍지>(2002)에 따르면 이 섬에 참깨를 만석이나 하는 큰 부자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았는데 뭍에 한 번씩 드나들려면 뱃길이 불편해 섬의 동쪽에 있는 큰 바위를 옮겨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다리가 반쯤 완성됐을 때 정체불명의 도적들이 나타나 만석꾼의 재물을 모두 약탈해 배에 실고 사라져 버렸다. 이에 부자는 섬을 떠나 버렸고 섬은 무인도로 남게 됐다.


2010년 울산발전연구원이 이 섬을 발굴해 전설의 현장을 확인했다. 고려시대 집터와 청자, 불상 등 다양한 유물을 발굴했다. 온산읍의 제비섬은 13세기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 때 울산 지역 호족이 섬으로 피신해 항거했던 곳으로 확인됐다. 연자도 공장 터 유적에서 온돌시설을 갖춘 고려시대 집터 20여 곳과 함께 금동여래불상, 청자베개 등 다양한 종류의 청자 유물을 발굴했다.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 때 지방호족이 섬으로 피신했던 사실을 알려주는 유적이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목도상록수림은 동백섬으로 불러야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산 13번지 섬에 있는 상록수림을 목도상록수림이라 하여 국토해양부에서는 섬 이름을 춘도(椿島)와 목도(目島)로, 문화재청에서는 천연기념물의 이름을 목도상록수림으로 하여 섬의 표준 이름을 목도로 하고 동백도(冬柏島)와 죽도를 동도이명(同島異名)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이름은 각각 다른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이고 특히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보나 유래로 볼 때 동백섬이나 동백도라고 불러야 한다.


역사적으로 울산의 섬이 옛 지리지에 최초로 나타나는 이름은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춘추관, 1454)에 수록된 동백도(冬柏島)다. 이 지리지에는 동백도가 울산 병영성의 남쪽에 있다(冬柏島在郡南)고 했다. 동백도가 다음으로 나타나는 문헌은 <동국여지승람>(東國餘地勝覽, 양성지,1481)이고 다음이 이 책의 증보본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 이행 등, 1531)이다. 이 두 책에는 동백도(冬柏島: 동백섬)가 “병영성 동헌이 있었던 남쪽 30리(12km)에 있고 섬에 동백나무가 가득해 동백도라 부른다(郡南三十里冬柏滿島故名)”고 설명하고 있다. 이 두 문헌에 동백도와 함께 현재 목도의 다른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는 죽도가 병영성에서 십리 거리에 있는(在郡十里) 것으로 수록돼 있다. 이 이후의 지리지에 이 설명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설명돼 있다. 현재 동백섬은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산 13번지에 있는 작은 섬이고 죽도는 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산 225번지에 위치한 작은 똥뫼다. 이와 같이 죽도와 동백도는 서로 다른 섬이 서로 다른 곳에 있다. 


다음에 간행된 <경상도읍지 울산부읍지>(경상감영, 1831)에도 죽도는 병영성 남쪽 20리에 있고 이대(화살대, 箭竹)가 나는 섬(在府南二十里箭竹取出)으로, 동백도는 병영성 30리에 있고 동백이 많이 나서 동백도로 부르는 섬(在郡三十里冬柏多生故名)으로 설명돼 있다. 이후 <학성지>(권상일, 1749), <울산부여지도서신편읍지>(1786), <대동지지>(김정호, 1864), <영남읍지 울산부사례>(1894), <울산읍지>(이석정, 1934), <흥려승람>(1937), <조선환려승람>(이병연, 1938) 등에 모두 서로 다른 섬으로 수록돼 있다. 1954년 이용우는 <울산승람>에서 울산의 명승. 사적. 천연기념물을 설명하면서 죽도(온산면)는 “신라시대에 궁시용(弓矢用)의 대를 본도산으로써 조공(朝貢)해 살로 사용했다 한다. 지금도 대의 생산이 있어 죽신단정(竹身端正) 궁시용의 우수품으로 이름이 높다”, “동백도(冬仙冬柏島)는 기암괴석으로 된 소도인데 도중(島中) 동백목기타(冬栢木其他) 잡관목활엽수류(雜灌木闊葉樹類)가 울창해 천연의 미(美)가 있다”고 죽도와 동백도를 나눠 설명하고 있다. 이때까지는 지금처럼 죽도와 동백섬이 목도의 동도이명(同島異名)으로 설명되고 있지 않았다.

 

▲ 경상도읍지 울산부지도(1832)


실제로 죽도는 장생포(長生浦)마을과 양죽(養竹)마을 사이에 있는 섬목마을 앞바다에 있었고 섬 안에 이대(화살대)가 가득 자라던 작은 섬이었다(울산남구지명사편찬위원회, 2009). 이 섬목마을과 죽도는 주변지역이 공업지역과 항만지역으로 매립되면서 육지로 변했다. 현재 죽도는 매암동 울산지방해운항만청 뒤에 작은 산으로 변해 남아있다. 동백도는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목도마을 앞에 있고 면적이 1만5074㎡이며 동백나무가 많이 자생해 동백섬(동백도)이라 부르던 작은 섬이다. 이 섬을 행정적으로 목도라고 부르고 있다. 


목도(目島)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영남읍지 울산읍지>(경상감영, 1871)이고 이후 <울산읍지>(이석정,1934), <흥려승람>(박기홍, 1937)에 수록돼 있으나 명확하게 동백섬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보기 어렵다. <울산읍지>(이석정, 1934)와 <흥려승람>(박기홍, 1937)에는 목도(目島)가 “재남40리(在府南四十里)”라 하여 병영성으로부터 남쪽 40리(16km)에 있고, 그리고 동백도(冬柏島: 동백섬)가 “재남30리동백다생고명(在府南三十里冬柏多生故名)”이라 하여 동백도는 병영성에서 남쪽으로 30리에 있고 동백나무가 많이 나서 동백도라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라나 이 설명은 당시에도 300~400m 떨어져 있었을 목도와 동백도를 10리나 떨어져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목도를 섬으로 본다면 그 곳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섬이 되는 등 오류가 있다. 목도는 목도마을의 지명인데 현지 사정을 모르는 저자들이 이름만 보고 섬으로 착각해 생긴 오류다. 한편 <조선흥려승람>(이병연, 1938)에는 목도를 “재남40리 시장번성(在郡南四十里市場繁盛)”이라 하여 병영성 남쪽 40리(16km)에 있고 시장이 번성하다고 설명하고 있어 목도를 목도마을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항도(項島) 즉 목(項)섬(島)을 “촌명(村名)”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지리지의 설명을 볼 때 목도와 동백도는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서로 다른 지명이다. 또한 목도는 우리말 목섬을 한자로 표기한 목스미마을의 이름이고 동백도는 동백이 많이 나서 부르는 동백섬의 이름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에 활용하기 위한 지리서를 간행하기 위해 수집한 지지지 자료집인 <조선지지자료집>(조선총독부, 1934)에도 목도를 목도동(目島洞, 목스미마을), 목도(목스미)나루를 목도포(目島浦)라 하여 경상남도 울산군 청량면에 속하는 마을 이름으로 수록하고 있다. 


2005년 12월 15일 울산광역시에서는 울산시 관내 자연지명의 제정, 변경, 폐지를 목적으로 울산시지명위원회를 열고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되는 1/2만5000 지형도상에 표기된 2050건의 지명에 대해 심의했다. 이 지명위원회의 심의는 건설교통부에서 잘못되거나 비합리적인 지명을 바르고 합리적인 지명으로 고치기 위해 전국의 시도에 요청한 것이다. 울산광역시는 이 요청에 따라 울산지역의 자연지명을 2005년 1년 동안 조사한 결과 1050건에 대한 심의를 울산광역시지명위원회에 요청했다. 이때 울산광역시 지명위원회에서 가장 쟁점이 된 지명이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1864년 이전의 目島里) 산 13번지 목스미(목도)마을 앞의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의 이름이었다. 이 위원회에 죽도, 목도, 동백섬, 춘도가 상정됐는데 춘도는 일본식 한자라 하여 일찌감치 탈락시켰고, 죽도는 남구 매암동 산 225번지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특별 논의에 제외시켰다. 남은 목도와 동백섬을 놓고 위원들끼리 논의한 결과 동백섬은 다른 곳에 같은 이름이 있어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동백섬을 탈락시키고 목도로 의결하기로 했다.


울산광역시 지명위원회의 논의 결과는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위원회에 올려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동백도의 고유성 문제는 잘못된 것 같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의 동백섬이 하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전국에 수많은 동백섬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동백섬을 버리고 목도를 택했다고 한다. 고유성이 적다는 동백섬은 전국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1864년 이전의 目島里)의 동백섬(목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동백섬,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리 소이작도 동백섬(등대가 있음), 전남 고흥군 일운면 덕흥리 동백섬 등 4개 섬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이 드나드는 물목, 배와 사람이 드나드는 목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보는 눈 목(目)자 목도(目島)나 눈섬, 나무 목(木)자 목도(木島)나 나무섬, 목 항(項)자 항도(項島)나 목섬 등은 전국에 수십 개가 넘는다. 환경부가 1999년에서 2010년까지 9차례에 걸쳐 독도 등 도서지방의 생태계 보전을 위해 특정도서 172개를 지정했다. 이 가운데 목도 목섬 항도 등의 이름을 가진 섬이 8개나 될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전국에 4개 밖에 없는 동백섬이 고유성이 더 있는 것인가? 전국에 수십 개가 넘는 목도가 더 고유성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동백섬은 1454년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의 간행 이전 적어도 600여 년 전부터 불러오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이름을 버리고 목도란 마을 이름을 섬의 이름으로 부르자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옛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목도는 원래 지금의 천연기념물 목도상록수림으로 지정돼 있는 목도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 앞의 목스미마을의 이름이었다. 현재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의 이름은 동백나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부르는 동백섬(冬柏島)이었다. 목도란 마을은 숙종 46년(1720)부터 기록으로 나타는 마을 이름이다(온산읍지간행위원회, 2002). 또 목도의 다른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는 죽도도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과는 서로 다른 곳인 매암동에 있는 죽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따라서 온산읍 목도 마을은 목스미마을이나 목도마을, 목도상록수림이 있는 섬은 동백섬, 매암동 죽도는 죽도 또는 대섬으로 확실하게 구분해 수록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행정안전부, 울산광역시, 울주군 등 각 행정기관에서는 즉시 잘못된 지명을 바르게 고쳐야 한다. 문화재청도 천연기념물 목도상록수림을 동백섬 상록수림으로 고쳐야 한다.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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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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