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오타

김동일 / 기사승인 : 2019-08-22 11: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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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본이 아빠의 일상주반사

너무 오랜만에 찾은 엄마의 방입니다. 알록달록한 조화가 벽 한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 밑에 빨래줄처럼 늘어뜨린 털실에 자식들과 손주들의 사진이 대롱대롱 널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 두 뼘 크기의 화선지에 쓰여진 붓글씨가 보입니다. ‘매일조하진다’


올해 여든넷 우리 엄마는 한글 맞춤법을 틀릴 때가 많습니다. 일제시대에 소학교를 다니다 만 게 전부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노인교실에서 배운 어설픈 붓글씨로 쓴 ‘매일조하진다’는 ‘매일 좋아진다’의 오타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매일 좋아진다보다 매일 조하진다가 더 좋습니다. 더 정겹습니다.


문득 엄마의 오타와 관련된 추억이 몇 가지 떠오릅니다. 하나는 아마 내가 열일곱 살 때쯤으로 기억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습니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밤새 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이미 일 나가시고 없었습니다. 덩그러니 밥상만 차려져 있었습니다.


신문지로 덮어둔 밥상에는 미역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쪽지에 꾹꾹 눌러 쓴 손편지가 있었습니다. ‘오늘이 어매 생일이따 가치 밥머글라 했는데 니가 안와 혼자 머것다. 니도 머거라’ 그걸 읽는데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엄마.. 엄마.. 흐느끼면서 그 밥을 싹 먹어치웠습니다. 목이 메어 캑캑거리며 그 밥을 싹 먹어치웠습니다.


또 하나는 스물아홉 때쯤인 걸로 기억됩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 생활을 하던 내게 끼니는 여간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그걸 알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라면 박스 하나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보내준 택배였습니다.


테이프로 칭칭 동여맨 박스를 힘겹게 열었습니다. 배추김치 한 봉지, 깻잎김치 한 봉지, 무우말랭이 한 봉지, 감자 열댓 개, 고구마 열댓 개... 그리고 꾹꾹 눌러쓴 엄마의 손편지 한 장. ‘아드라 객지에서 고새이 만타. 힘드러도 참고 열씨미 해래이...’ 그걸 읽는데 또 왈칵. 한동안 그 반찬 덕에 밥 먹을 때마다 목이 메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엄마를 보고 왔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보고 싶어해놓고 막상 만나선 왜 그리 무뚝뚝했는지 뒤늦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누나나 형은 다들 그리 곰살맞게 잘 하는데 명색이 막내란 놈이... 어쩌면 우리 엄마의 가장 큰 오타는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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