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백성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동구지역장 / 기사승인 : 2020-07-30 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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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고미숙 저, 북드라망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이하 <읽고 쓴다는 것>)에서 고미숙 선생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두 발로 선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땅을 짚고 선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늘은 머리와 맞닿았고 땅은 발과 맞닿았다. 머리는 하늘을 향해 사색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형(추상)의 것을 추구하며 산다. 발은 땅 위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구체적인 삶을 산다. 이렇듯 선다는 것은 곧 삶이라고 하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의 눈은 정면을 응시해 머리의 삶을 돕는다. 또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와 자연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읽기에 바쁘다. 예로부터 하늘은 신이 머무는 곳을 상징해왔다. 거룩한 가르침, 종교 역시 하늘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지금 우리는 땅의 삶을 좇아 하늘 볼 시간이 없어졌지만 하늘을 장식한 해, 달, 별, 산, 날씨 등은 인간의 삶을 위한 지도이자 지혜였다. 하늘길은 곧 땅이 추구해야 할 길이이기도 했다. 이처럼 본다는 것은 하늘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머리와 발을 이어주는 매개가 바로 손이다. 네 발 가진 짐승과 달리, 직립보행의 결과로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저자는 이 손을 가리켜 '제2의 뇌'라고도 말한다. 두 손은 머리로 상상한 것을 현실 속에 투영한다. 결국 머리와 발, 즉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끌어 낸다. 해서 해방된 두 손은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그것이 수행하는 최고의 행위는 바로 '쓰기'가 아닐까. 쓴다는 것은 문화를 축적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핵심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인간의 직립보행이 가져다준 결과가 이처럼 경이롭다. 직립보행은 정신의 탄생을 이끌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 붓다, 마호멧, 소크라테스, 이들은 하늘의 지혜를 읽고 쓰고 널리 전했다. 언어의 돛은 지혜와 정신의 순풍을 만나 인간의 삶을 이끈다. 읽는다는 것과 쓴다는 것, 어찌 거룩하지 않다, 통쾌하지 않다 말할 수 있으랴.


읽기는 앎을 위한 것이고 쓰기는 알림을 위한 것, 읽음도 씀도 매한가지다. 읽지 않으면 쓸 수 없고 쓰지 않으면 읽더라도 금세 사라진다. 앎이 없이 쓰는 것은 교만이자 독선이다. 고미숙 선생은 읽기만 해서도 쓰기만 해서도 안 된다고, 읽고 씀이 하나여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그렇다. 읽고 씀은 하나의 결이 돼야 완성된다. 그제서야 우리는 언어가 갖는 힘을 믿게 된다.


세상은 읽고 쓸 일이 참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읽고 쓰는 것을 쉽게 포기한다. 우리는 언어를 고통 중에 익혀 왔기 때문이다. 활자를 대하는 삶이 편할 리 없다. 더한 것은 읽고 쓰지 않아도 살아지니 필요를 못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세상은 표면과 이면으로 존재한다. 표면은 굳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보인다. 그런데 보이는 그 자체로 사실이라고 믿으면 곤란하다. 세상이 담고 있는 이면의 존재를 무시하면 우리는 '거짓 노름'에 빠질 수 있다. 이면은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이면은 생각하고 관찰하는 자의 몫이다.


문장과 글에도 표면과 이면이 존재한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행간이 표출된다. 행간은 드러남과 숨겨짐의 조화를 이룬다. 아울러 직설과 비유가 난무하고 힘의 강약이 요동친다. 읽는 자나 쓰는 자나 글의 장단에 맞춰 절로 춤을 추게 된다. 나는 읽고 쓴다는 것이 이 표면과 이면, 즉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읽기와 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분석과 비평은 표면과 이면의 실체를 곧추 드러낸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세계국가 지도자 무스타파는 책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이 세계를 사는 문명인이 쾌락의 노예가 되도록 국가는 소마(마약의 일종)를 제공한다. 그리고 문명인은 유아기부터 읽고 쓰는 일을 혐오하도록 교육받는다. 이미 권력자는 그것이 지배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읽고 쓴다는 것은 지식의 재생산을 가져와 인간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다른 생각’을 창조케 한다. 다른 생각은 바로 ‘혁명’이다.


이토록 읽기와 쓴다는 게 무겁고 무서운 것이다. 읽고 쓴다는 것이 곧 힘이 된다. 이 정도면 읽고 쓴다는 것의 동기를 충분히 무장한 셈이다. 나만 그런가. 읽고 쓰는 것은 쓰고 읽는 것만큼 필연이다. 읽기조차 겨우 시작인데 쓰라는 말이 가혹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면 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오고, 쓰다 보면 읽기가 흥미로워진다. 말로 다 할 순 없다.


내게도 불혹이 찾은 열독이 무섭다. 다만 다독에 목숨 걸진 않는다. 그저 읽다 보면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면 쓰느라 읽기를 잠시 멎는다. 멋들어진 문장을 만나면 한번 흉내도 내본다. 생각도 덧댄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쓰기에 대한 강의도 덧붙였다. 쓰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2부 ‘실전편’이 유익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읽고 쓴다는 것>은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리라 확신한다. 읽고 쓰지 않으면 못 배긴다. 고미숙 선생의 재주다.


백성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동구지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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