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합의 불이행’의 간극

한기양 울산새생명교회 담임목사, 평화통일교육센터 대표 기자 / 기사승인 : 2020-06-24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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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막 지난 16일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돼 모든 국민은 경악했다. 북측이 크게 분노해 초강수로 나오게 된 점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탈북단체의 ‘최고 존엄’에 대한 치욕적인 대북전단 살포, 남측의 합의 불이행,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 북측의 경제 사정 등이 그것일 것이다.


북측은 남측이 ‘대북전단 살포와 상대를 적대시하는 선전, 선동을 하지 않는다’는 판문점선언 제2조를 어겼기 때문에 판문점선언 제1조인 남북연락사무소를 없애버린 것이다. 충격인 것은 단순한 폐쇄조치가 아니라 아예 폭파해 버렸다는 것.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최근 북측의 증오 감정을 증폭시킨 것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정부의 묵인이다. 6월 4일 담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6.15 선언 20주년을 맞게 되는 이 시점에서 남측에서 대북전단 살포라는 “저렬하고 더러운 적대행위가 용납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지난 2년간 남측의 ‘합의 불이행’에 대한 분노가 컸다. 최근 발표된 여러 북측 담화문에는 “2년”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2018년 판문점선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가리키며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7일 발표한 담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북남관계가 한 걸음도 이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약속 중 “남조선당국이 한 가지 조항이라도 실천한 것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게다가 한미워킹그룹이 문제라면 남측이 이를 해체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한 남측 정부가 워킹그룹을 탓하면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않는 것은 결국 남측의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8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측은 남측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부터 불신의 중병을 앓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 6월 6일 북측 통일전선부 대변인의 담화를 통해 북측이 남측과 관련된 장소들을 없앨 것이고 그 “첫 순서로…북남공동련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고 말한다. 공동연락사무소 폭파계획은 이미 6월 6일 이전에 확정됐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철폐 대상이 공동연락사무소 하나만이 아니라 “남측과의 일체 접촉 공간들”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런 “결정적 조치들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라고 했다. ‘남측과 모든 접촉을 단절하겠다’는 것은 더 앞서 시작됐다. 아마 이런 결단 이전에 남측을 향해 열었던 마음이 닫히는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측을 향한 북측의 신뢰는 점점 회의와 의심을 거쳐서 불신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북측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측에게 걸었던 기대와 신뢰가 실망과 불신으로 뒤바뀌었다. 불신뿐만 아니라 증오가 됐고, 드디어 6월 16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표출됐다. 이는 극도의 감정적인 방식을 취했지만, 실은 확고한 의지가 표명됐다고 볼 수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는 순간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도 아니고, 무엇을 요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돼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지속된 남북관계에 대해서 북측이 내린 평가라는 성격이 짙다. 이 상황은 오래 갈 것이다. 북측이 트럼프를 더 이상 북미관계 개선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듯이, 이 사건은 북측이 지금까지 남북관계 대화 상대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포기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대화가 신뢰의 첫걸음일 수는 있지만, 대화만으로 신뢰가 깊어질 수는 없다. 대화로 약속한 것을 지켜야만 그 다음 단계에서 신뢰가 유지되고 깊어질 수 있다. 남측은 북측에게 대화하자고 하지만, 북측은 남측에게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화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그 자리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측의 특사파견 제안은 북측을 더 분노하게 했을 것이다. 특사파견 제안은 남측이 판단하기에 북측이 토라졌다고 판단하고 달래기 위해서 오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즉 특사파견 제안은 문제가 남측에 있는데 그것을 북측에 떠넘기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기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남측은 미국 의존도를 날마다 치밀하게 줄여가야 한다. 미국은 남북이 어느 수준까지 평화(?)롭게 지내는 것(정전상태)은 원하지만, 결코 그 관계가 깊어져 평화가 실현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한반도의 분단이 반세기 넘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했기에 한반도가 ‘냉전의 마르지 않는 샘’(이도흠)으로 영원히 남길 원한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은 미국의 이익에 상반된다. 미국은 자기에게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한반도가 평화와 긴장이 적당히 뒤섞여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측과의 만남’이라는 쇼는 할 수 있지만, 미국에게 북측은 그 만남을 진실로 진척시켜서는 안 될 나라인 것이다. 때문에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측은 미국에의 의존도를 날마다 계획적으로 하나하나 줄여가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질을 가진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번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이 대부분 우리 남측 정부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남측의 실천이 없었기에 북측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남측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증오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남측 당국자들은 이런 북측의 심각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그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남북관계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최선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좋은 뜻을 품는 것과 좋은 뜻을 행하는 것은 다른 것이고, 유능하다는 평가는 후자와 관계하는 말이다. 합리와 신중에 정열이 눌려 행동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정열로 내일을 개척하면서 합리를 통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우리에게는 틀 안에서 체계화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신중한 사람보다는 틀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가슴이 뜨거운 도전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하겠다.


덧붙이자면, 더불어민주당(여당)은 여유가 그렇게도 많은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번번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보니 허송세월하는 데 이력이 났는가? 뭘 해야 할 것인가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사대주의 정당 미래통합당의 응석을 다 받아주며 어느 세월에 한반도 평화, 사회개혁을 이뤄낼 것인가? 개혁이 입법 없이 가능한가? 개혁이 늦어지는 것은 집권 여당이 게으르고 나태해서가 아닌가?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서 개혁법안,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대로를 열기 위해 만든 법안이 도대체 무엇인가? 70년 만에 찾아온 민족 화해와 평화의 기회, 집권 여당으로서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 무엇이었나? 진정성을 갖고 집권 여당이 북측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더욱 파탄 나고, 또 긴 세월 불신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분단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한기양 울산새생명교회 담임목사, 평화통일교육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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