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김윤경 글 쓰는 엄마 / 기사승인 : 2020-07-30 11: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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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기

방학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됐건만 나는 비로소 방학을 실감한다. 일단 성적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풀린다. 이번에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 학기 등록금이 310만 원쯤 된다. 전 과목 A+를 받아도 장학금은 40만 원 정도다. 짜지만 그 짠 것을 취하려고 즙을 짜듯 공부한다. 다 큰 수험생 딸 키우는 기분이라는 남편의 말이 스쳐 간다. 외벌이에 가계대출이 있으며 영유아 2명을 키우는 4인 가족이니 녹록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해서 등록금이 아깝다. 다음 학기에 등록금이 일정 부분 반환되면 좋겠다. 


작년에 붙었던 청소년상담사 연수가 방학 기간에 있었다. 처음엔 합숙이었지만 이 또한 코로나로 실시간 화상으로 진행됐다. 연수 전에 들어야 하는 인터넷 강의와 과제의 양이 많았다. 방학을 느낄 새도 없이 노트북에 붙들려 지냈다. 한고비 넘기고 마주한 연수는 사흘간 아침 8시 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빡빡한 일정이었다. 마지막 날은 저녁 전에 마쳐서 한숨 돌렸지만 말이다. 시작할 땐 실시간 화상으로 연수가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는데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화상으로도 이런 효과인데 실제 합숙으로 연수했다면 훨씬 더 좋았겠다 싶다. 


연수 때문에 남편이 여름휴가 전에 일주일 휴가를 더 냈다. 휴가 이름이 자기계발휴가다. 아내의 자기계발 때문에 낸 남편의 자기계발휴가인 셈이다. 60시간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몇 가지 과제를 제출하느라 새벽까지 강행군이 이어졌다. 헉헉거리며 연수까지 끝내고 나니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연수가 실시간 화상이라 칩거했다. 아침에 애들을 보내는 것도 오후에 돌아온 애들과 밖에서 최대한 늦게까지 놀다가 돌아오는 것도 남편이 다 했다. 남편은 눈에 띄게 지쳐갔다. 남편의 안색을 살피던 중 올 것이 왔다. “내가 당신 부속품으로 사는 것 같아.” 화가 난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많이 찔렸다. 솔직히 남편이 김 비서 같다고 자주 느끼곤 한다. 곧장 수긍하고 사과했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만했다. 


남편이 말을 이어갔다. “휴가인데 마음 편히 쉰 날이 없어.” 이건 좀 의아하다. “애들 보내고 9시부터 5시까지 쉬었는데 그건 쉰 게 아니야?” 내 반문에 남편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내 말은 휴가에도 아내 일정에 맞추느라 내 뜻대로 온종일 쉬지 못했다는 거지.” 그거라면 다시 끄덕여진다. “그런 뜻이었구나. 미안해. 여보 어떻게 하고 싶어?” 휴가가 하루 정도 남아있었다. 남편은 부산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등을 떠밀 듯 그러라고 했다.


남편이 부산에 가기로 한 날, 나는 기어이 열이 올랐다. 남편은 아픈 아내를 두고 혼자 놀러 가자니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나는 걱정 말고 저녁에 돌아오라고 했다. 남편은 몸살감기약을 건네며 떨떠름하게 집을 나섰다. 나는 그날도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노트북 앞에 붙박이가 돼있었다. 자유시간을 보내고 남편이 해님처럼 환해져서 돌아왔다. 남편은 전시 관람을 좋아한다. 미술관, 박물관, 백화점, 마트, 이케아 등 가리지 않는다. 다행히 나도 몸살감기약 2알에 다 나았다. 


이렇게 휴가가 무사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어떻게 아내랑 둘이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당신 결혼은 대체 왜 한 거야? 보통은 아내가 남편한테 이런 말 하지 않나? 우린 바뀐 거 같아.” 2차가 시작됐다. 내 바쁜 일상을 돌아보며 다시 사과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데이트한 지가 까마득하다. 그래도 작년은 아니겠지. 내 공부하느라 남편에게 여유가 없었다. 반성한다.


연수와 성적 확인을 끝내고 나니 방학 실감이 난다. 남편에게 한 소리 들었는데도 읽고 싶은 책들이 아른거린다. 어째 올여름은 4인 가족의 방학이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섰다. 대학원 방학을 시작으로 둘째 어린이집 방학이 7월 마지막 주, 남편 휴가가 8월 초, 첫째 방학이 8월 중순이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심심한 방학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겹치지 않는 일정을 보니 다소 난감하다. 이번 방학엔 남편과 데이트도 하고 공부하는 뒷모습에 익숙해진 가족들에게 앞모습을 자주 보여 줘야겠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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