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아내가 좋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 기사승인 : 2020-07-22 11: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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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결혼 후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에로스가 사라진 것이다. 아이까지 태어나니 결혼생활은 말 그대로 생활이 돼 버렸다. 주중엔 일하고 퇴근 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육아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꿀맛 같은 주말을 맞이하지만 역시 육아 때문에 몸은 쉼을 보장받지 못한다. 쌓여가는 육체의 피로로 인해 마음은 우울해지고 삶은 그저 비루한 생존의 몸부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전락했다. 쌓여가는 집안일과 끊임없이 집을 어지럽히는 아이 덕에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불만은 고스란히 배우자에게 누적된다. 육아와 피로 그리고 불만이 깊숙이 비집고 들어온 집안엔 장미의 향은 사라지고 아이의 똥 기저귀 냄새와 누가 먼저 하나 보자면서 미뤄 놓은 설거지로 인해 개수대에서 올라오는 음식 썩은 냄새만이 자욱이 깔려 있다. 


서로에 대한 성적 끌림으로 만나고 결혼했지만 팍팍하고 바쁜 생활에 설렘은 사라지고 에로티시즘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저 쉬고 싶다는 욕망만이 나를 감싼다. 아, 이건 아니다.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준 힘은 무엇이었나. 쉬고 싶다는 그런 하찮은 욕망이 아니라 고귀한 성적 욕망이 지금까지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성인이 되고 세상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득권이 될 수 없고 운이 좋다면 중산층 정도가 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성공임을 말이다. 그러면서 비교적 박탈감을 덜 느끼면서 행복해질 방법으로 난 ‘야한 삶’을 선택했다. 하루하루 에로스를 기반으로 예술적 심미성을 겸비한 섹시한 삶을 최우선으로 해서(한 마디로 내가 만날 수 있는 최대한 예쁜 여자와의 끊임없는 연애) 살아간다면 나보다 잘난 사람들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그랬더니 정말 삶은 풍족하진 못했지만 비교적 풍요로웠다. 하지만 결혼 후 이렇게 성욕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휴식욕(?)만 가득한 지금의 삶은 전혀 풍요롭지 않다. 조금 넓어진 집과 쌓여가는 통장 잔고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실존적 번민 앞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이렇게 살아도 한평생, 저렇게 살아도 한평생이라지만 남아 있는 내 삶을 이렇게 보내긴 싫다. 그저 일하고 아이 교육에만 매달리며 부동산으로 어떻게든 돈이나 몇 푼 벌 생각으로 남들 쫓아가면서 살긴 더더욱 싫다. 우리 삶은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고귀하지 않고 별거 아니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러니 하루하루 소중히 보내고 자기 수준에 맞는 욕망에 충실히 살면 조금의 기쁨이라도 맛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소박한 꿈은 이제 나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결혼한 이상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아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녀가 야한 아내가 돼야 하는 이유다. 출산 후 불어난 체중, 구멍 난 파자마 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 아무렇지 않게 뀌는 방귀와 감지 않아 기름에 떡 진 머리로는 도저히 에로틱한 삶을 살 수가 없다(하늘에 맹세코 내 아내가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결혼과 출산 후 급격히 무너지는 아내의 외모로 우울해진 남편의 아내에 대한 무관심, 그로 인해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휩싸여 불행해진 아내의 채우지 못한 욕망, 그리고 그런 서로의 불만족은 수많은 불륜을 양산해 내고 있다. 하지만 서로의 노력으로 부부 사이에 에로티시즘을 다시 살려낸다면 분명 우리는 더 충만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아직 불씨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적절한 산소와 건초를 조금만 넣어주는 노력만으로 불은 금방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최근 아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사실 연애 때부터 다이어트를 한다고 다짐만 수십 번 하던 그녀라 이번에도 저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정말로 독하게 한 모양이다. 아내는 살이 많이 빠지고 자신감도 올라갔다. 못 입던 옷들도 맞는다며 예전에 입던 제법 과감한 옷들도 입기 시작했다. 나도 예전보다 날씬해진 그녀를 보니 가슴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그렇게 입고 밖에 나간다고 하니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좋은 긴장감이다. 최근엔 길거리에서 낯선 남자가 연락처를 물어봤다며 자랑한다. 난 축하한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없던 불안감이 생긴다. 그렇지만 아내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여자가 되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낫다.


지난 주말엔 아이를 처가에 맡기고 실로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했다. 놀랍게도 아이가 생긴 후 주말 데이트는 처음이다. 그동안 서로에게 설렘을 주는 이성이 아니라 그저 가족으로 여기고 이런 여유도 없이 참 바쁘게도 살았다. 제법 야하게 잘 차려입은 아내와 그에 걸맞게 나도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바르고 불편하지만 각 잡힌 옷을 입은 뒤 아내 손을 잡고 젊은이들로 가득 찬 거리를 걸으니 연애 시절로 돌아온 듯 설렌다. 아내도 들뜬 모습이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섹시하게 살고 싶다. 생활과 육아에 치여 생기 잃은 아재가 되기엔 얼마 남지 않은 내 젊음이 사무치게 아쉽고 지금 이 순간이 찬란하게 아름답다. 


그렇게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야한 아내가 좋다. 


유원진 평판 나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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