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댐 폭파단(1)

이인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 사무처장 / 기사승인 : 2019-08-01 11: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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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 세상에 못 폭파할 것은 없다.’ 아직 아무 것도 폭파하지 못했고,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아무것도 폭파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지만, 이 모임의 슬로건 하나는 분명했다. 승기의 말을 빌리면 통닭보다는 통닭을 주문받는 사람에게 더 끌려서 자주 찾게 될 수밖에 없다는 두 마리 통닭집에서 결성식을 빙자한 술자리가 열렸을 때였다. 역시 본업인 사진보다 전단지를 더 많이 제작해서 포토샵보다 일러스트가 더 익숙하다는 도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건배사를 외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대체 한 곳으로 집중이 되지 않는 술자리에서 도희가 술잔을 높이 들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들보다 두 톤은 높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목청껏 ‘이 세상에 못 폭파할 것은 없다’고 외쳤을 때 그 자리에 앉은 누구도 심지어는 그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도희의 목소리에 압도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리곤 누구랄 것도 없이 잔을 부딪히며 ‘폭파’를 외쳤다. 결국 이 날부터 ‘이 세상에 폭파 못할 것은 없다’가 만장일치로 이 모임의 슬로건이 됐다. 


원래 술자리에서 결정된 건 연초를 기해 결심한 금연이 사나흘을 가지 못하듯 흐지부지 유야무야되기 마련이건만, 슬로건에서 단원들 모두가 느끼는 자부심과 긍지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이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언제나 술자리의 시작을 알리는 첫 건배사로 자리를 잡았다. 뿐만 아니라 다들 슬로건을 몸으로 체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았다. 


오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부정기적인 모임 치고는 출석률 100%를 자랑하는 제법 결속력 높은 모임답게 아직 햇살이 꽁무니를 빼며 사라지기 전임에도 시간에 맞춰 다들 술자리에 모였다. 모임이 시작되면 우선 그간 폭파를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부터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일종의 대면 업무보고랄까, 지식공유랄까, 대개 밑도 끝도 없는 얘기로 시작해 아주 단순한 결론으로 끝나는 게 이 모임이 가진 매력이었다. 도저히 한 데 모으려고 해도 모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마치 성별을 보고 뽑기라도 한 것처럼 성비는 딱 절반이었다. 남자 둘, 여자 둘. 남들이 보기에 부부간 모임이라고 하기엔 남녀 간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났다. 남자 둘은 백발이 성성한 중 늙은이였지만, 여자 둘은 아직 사십도 안 넘긴 아직 미혼의 아가씨들이었다. 하긴 남들 시선이 두려웠으면 술집에 모이자마자 ‘이 세상에 폭파 못 할 것은 없다’고 외치진 않았을 테니 시선과 상관없는 그저 흥에 맞는 이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건 딱 하나, 나오면 심심하지 않아서였다. 


이 지역 구석구석을 방랑하며 산촌오지 탐험가로 이름을 날리다 이제는 동북아로 진출한 승기가 우선 운을 뗐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호랑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인생의 나머지 절반은 호랑이 연구에 몸 바치겠다고 모임 초기부터 주구장창 호랑이 얘기만 떠들던 승기는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외국에 나갈 때마다 극지 생존을 터득하며, 오지와 혹한에서도 며칠을 견디며 폭파를 할 수 있는 능력 향상을 위해 힘썼다고 했다. 게다가 거사의 그 날 사용할 잘 마른 호랑이 똥을 러시아에서 숨겨 들어왔다고 했다. 누군가 호랑이 똥을 어디 쓸 데가 있냐고 궁시렁댔지만 승기는 그게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폭약과 함께 쓰면 폭발력이 더 증가할 거라며 호랑이 똥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에 가장 근접한 도화선이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진은 그런 승기의 말에 조용히 박수를 쳤다. 그거야 말로 진정한 똥폭탄이라고 인류 역사상 똥을 터뜨릴 생각을 한 건 우리가 유일할 거라고 응수를 해줬다. 미진의 말에 다들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사뭇 진지하게 다들 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의 똥을 위하여, 승기의 선창에 모두들 ‘위하여’를 크게 외쳤다. 


고개를 끄덕인 미진 역시 폭파술 수련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고난도 기술인 수중폭파 기술을 연마중이라는 말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있다고, 이미 어드밴스 자격증까지 취득했다고 했다. 도희가 어드밴스 자격증이 뭐냐고 물어봤다. 미진은 그냥 그런 게 있다고 말해줬다. 다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데 동의했다. 미진은 그렇게 자격이 있는 사람들끼리 주말에 한 번씩 인근 바닷가로 스킨스쿠버를 나간다고, 함께 하는 사람 중에 인근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수중용접을 하는 전문가라고, 물어보니 군대도 ADT를 나왔다며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이라도 되는 양 으스댔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승기가 그건 경비업체 이름이라고, 나온 군대 명칭이 혹시 UDT 아니냐고 물었다. 미진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그 사람은 바다 속에서 폭탄을 설치할 수 있다고, 자신도 곧 그 사람에게 바다 속에서 폭탄을 설치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고, 역시 군대쯤이야 어디를 나와도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모두들 일어나 그녀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줬다. 


이인호 울산 민예총 문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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