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판데믹에도 울산은 잘 돌아가고 있다

레일라 라도사블리에비치 원어민 영어강사 / 기사승인 : 2020-03-18 11: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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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울산을 걷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문득 2020년이 10년 넘게 과도하게 난리법석을 피우며 기대했던 해라는 생각이 났다. 2020년에 대한 영화도 만들어졌고, 2020년에 대한 거창한 목표도 세워졌다. 학교에서 2020년은 우리 모두가 동경하는 미래주의의 해였다.


이제 우리는 그 시점에 도달했고, 석 달이나 지났다. 그렇지만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없고, 다른 행성에 세워진 도시도 없다. 나는 아직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 대신에 세계는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것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판데믹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습격했다. 지금 전 세계 195개 나라 가운데 157개가 영향을 받았고, 내 고향 요하네스부르크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 글은 코로나 통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격동의 시기에 울산에서 외국인으로 겪고 있는 경험에 관한 글이다.


1년 더 울산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다음 나는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해보지 못한 일의 위시 리스트다. 이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니 마치 올해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이고 여행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첫 두 달 동안은 아직 겨울이어서 이 위시 리스트를 완수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봄이 시작돼 날씨가 좋아지는 3월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한다.


3월에 와서 나는 친구들이나 알고지내는 가족들로부터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위시 리스트와 여행은 보류됐다. 바이러스는 전국적으로 퍼졌을 뿐만 아니라, 울산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한국은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에 나왔다. 아버지는 무척 걱정을 하시면서 나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 우리 고향은 아직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친구나 가족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과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웠다. 내가 받는 대부분의 뉴스나 한국에 관한 최신 정보는 한국어로 돼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뉴스는 자주 믿기 힘들 정도로 부정확하거나 모호했고, 아주 빈번하게 과장된 것이었고, 내 친구들과 가족은 이런 뉴스를 보고 있었다.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다. 한 순간 위생과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순간 학교가 폐쇄되고 도시가 거의 사막처럼 바뀌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는커녕,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도 한국에는 놀라운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이런 시스템은 내 고향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은 모든 사람에게 최신 정보를 제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줬다. 파파고 번역기와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도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판데믹 시기에 외국에 외국인으로 머무는 일은 약간 두려운 일이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전염병에 걸리면 누가 나를 도와주지?” “나를 어디로 데려가서 어떻게 치료하지?” 대부분 대답은 어딘가에 한국어로 쓰여 있다.


그래서 아주 자주 이 나라의 효율성과 작동성에 감탄하지만, 이 곳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나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지원이 더 개선됐으면 하고 바란다. 이런 이유로, 또 일상생활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많은 외국인은 일하면서 한국어를 배울 시간이 없고 따라서 오직 한국인 배우자나 친구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1주일 동안 쉬게 되면서 나는 한국어 공부에 집중했다. 일하지 않고 지내는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쉬웠다. 나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휴식을 갖고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하기로 한국은 글로벌 경제로 걱정할 것이 많고 이 시기에 모두가 돈을 잃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 인생에서 가치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재평가해야 할 시간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기에 국제뉴스의 주요한 헤드라인은 ‘화장지 부족’, ‘며칠 만에 진열대 동나’ 등이다. 세계의 어떤 곳에서는 대대적 공포의 히스테리에 시달리지만, 한국의 경우는 아니다. 울산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고, 평소처럼 보인다. 물론 거리는 좀 더 비어있고, 가게들도 더 일찍 문을 닫지만 공포의 히스테리는 없다. 아무도 방금 산 화장지 네 묶음을 들고 거리를 내달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정부와 정착된 시스템을 신뢰했다.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손세정제가 더욱 많아졌으며 몇 가지 안전 주의사항이 제시됐다. 예를 들어 마스크를 쓰고, 오랫동안 공적 장소에 머무르길 피하고, 규칙적으로 손을 씻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약 증상이 있으면 즉시 의료진을 찾으라는 지침이 잘 지켜지고 있다. 이런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패닉에 빠져 있는 내 친구들과 가족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 생활은 평소처럼 진행되고, 단지 좀 더 조심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다니는 마트는 열려있고 물건도 가득 차 있으니까 우리 집을 방문하라고 말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 시기에 울산에 있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울산에 머물고 있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다.


레일라 라도사블리에비치 원어민 영어강사


Ulsan is functioning even under the COVID-19 Pandemic
Layla, walking in Ulsan

I woke up today with the thought that the year 2020 had had so much hype for over a decade. Movies were made about it, goals set for it, at school it was the futuristic year that we all looked forward to. Now it’s here, we are 3 months in, and well, there still aren’t any flying cars, no cities on other planets and I still have not figured out how to become rich and famous. Instead the world is experiencing something very different and unexpected. It is undergoing a pandemic. COVID-19 has taken the world by storm. Now, over 157 countries out of 195 countries in the world are affected, including my own hometown, Johannesburg. But this is not just another article about the statistics of Corna but more my experience being an expat in Ulsan during this turbulent time.

After deciding to stay in Ulsan for another year, I started putting together a list of all the things that I wanted to do, that in the past two years I never got around to doing. I wrote this list thinking as if it was my last year in Korea and the main point was travel. In the first two months of the year, with it still being winter, checking things off my wishlist was difficult. I was so looking forward to March, better weather and the start of spring. But I definitely wasn’t expecting what would happen next.

In this last month I had received more calls and texts from concerned friends and family then ever before. My wishlist and travels were put on hold. The virus had not only spread to the country but there were cases in Ulsan as well. South Korea was on all the news headlines. My very worried father even pleaded for me to come home as at the time my hometown hadn’t yet been affected. It was often difficult for me to explain the situation and share accurate information with my friends and family. Most of the news and updates I received and could find out about Korea, were in Korean. In addition, the international news was often not incredibly accurate, vague or, more often, over exaggerated and that was the news my friends and family were receiving. It all happened so quickly. One minute there were talks about hygiene safety and next, schools were closed and cities almost deserted. I wasn’t sure of my own response to this situation, let alone what was really happening in the country that I am living in.

Thankfully Korea has had amazing systems put up into place, that many countries, including my hometown, lack. These systems have kept everyone up to date and aware of the circumstances and with the help of Papago translate and Korean friends, I too, have been fully informed.
Nevertheless, being a foreigner in a foreign country, during a pandemic is a little terrifying. Questions arise like, “Would I be able to go back home?” “Who would help me if I got infected?” “Where would they take me and how would I be treated?” and often the answer is written somewhere in Korean.
So, although I'm so often in awe of the functionality and efficiency of this country, I wish that, as a foreigner living here, I would have more accessibility and support in obtaining information. For this reason and to make my day to day life a little easier, I am more motivated to learn Korean. However I know many working foreigners who don’t have the time to learn the language and solely rely on Korean spouses or friends.

In my week off work I focused on studying Korean. Being off work was a lot easier than I had anticipated. I started to wonder if the virus wasn’t just here to teach us to take a break and spend some time on our own. I understand that Korea has a very strong and global economy to worry about and that everybody is losing money at this time. But it still had me thinking that maybe it’s time to reevaluate what our values and priorities in life are. The main headlines in international news at this time were ‘Shortage of toilet paper’ and ‘Stores stocks depleted in days’. Some of the world was in mass hysteria but it was not the case here. Ulsan was functioning, it looked as it always had, yes the streets were emptier and some of the shops were closing earlier but there was no hysteria, no one running in the streets with the four bags of toilet paper they had just bought. People stayed informed, obligated and trusted the government and the systems that were put in place. Everything was functioning just with a whole lot more hand sanitizer and a few added safety precautions; wear a mask, avoid public spaces for long periods of time and wash your hands regularly and most importantly, if you’re not feeling well, seek medical attention immediately. This wasn’t so hard. What was I to tell my friends and family that were panicking? That my life has carried on as usual, I’m just a little more cautious, or that they should visit me as my supermarket is open and fully stocked. Although at first I was concerned about being in Ulsan at this time, I can now easily say that I am grateful that I am.

Layla Radosavlje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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