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처럼은 아니라도

박기눙 소설가 / 기사승인 : 2020-01-31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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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프리즘–눙길

텔레비전 방송 콘텐츠를 비롯한 거대 미디어 콘텐츠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매체이자 일상의 오락거리를 책임지는 프로그램의 메카가 됐다. 미디어 안에 숨은 여러 빛깔을 소설가 박기눙의 눈길(눙길)로 훑는다.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아이러니

요즘은 콘텐츠 시대다. 거대 미디어가 생산하는 것보다 각 개인이 생산하는 콘텐츠가 잘 팔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들, 케이블 방송, 지역 방송 매체마다 생산하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기존 지상파 방송국 외에 새롭게 종합편성 채널 방송국이 생기면서 방송 환경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지역 케이블 방송망까지 합쳐 내내 방송 송출을 하려면 수많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각 방송사별로 수많은 프로그램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한다. 한 번도 시청하지 않고 넘어가는 프로그램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프로그램 이름도 즐비하다. 시청률이 두 자리를 넘기는 일이 인기의 척도가 될 만큼 프로그램 홍수 시대다. 그런 와중에 수년, 혹은 수십 년을 한결같이 방송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이다.


지상파 방송국 중에는 KBS가 많다. 가요무대, 전국 노래자랑, 여섯시 내 고향, 아침마당, 추적 60분, 국악 한마당, 열린 음악회, TV쇼 진품명품, 개그 콘서트, 도전 골든벨, 뮤직 뱅크, 일요진단, 우리말 겨루기, 걸어서 세계 속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 따위의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일요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1박 2일은 잠정 휴지기를 마치고 시즌 4로 다시 돌아왔다. 또한, 종영 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도 다시 돌아왔다. 개인정보가 중요한 시점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 포맷일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세월과 시간을 거슬러 장수하는 프로그램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꾸준한 시청률이 답이라는 이도 있고, 세대를 구별하지 않는 공감을 버무린 결과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종편채널도 아니고, 민영방송국도 아닌 KBS에 장수 프로그램이 많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일 것이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뉴스 전에 방송하는 일일극의 시청률은 여전히 높지만 내용 면에서는 고만고만한 홈드라마 일색이다. 드라마 제작비가 점점 천정부지로 오르니 아침 드라마를 폐지하는 방송국도 생겼다. 그런데도 한국방송의 드라마는 줄지 않다가 겨우 아침 드라마 한 개 줄인 것으로 안다. 주말 드라마만 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대부분 신파 위주의 가족 드라마로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고 극 전개가 극을 치닫다 보니 제작비가 초과하는 일이 많은 듯싶다. 외주 제작자와 마찰도 곧잘 생기는지 출연료 분쟁이나 저작권 문제가 불거졌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물론 장수 프로그램은 그동안 많은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고, 선한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봤던 프로그램이 아직도 방송하는 것을 보면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프로그램 대부분의 수명이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시청자의 수신료로 만드는 한국방송 프로그램의 긴 수명은 방송을 만드는 이들의 열의(?)를 의심케 한다. 나날이 변하는 방송 제작 환경 속에서도 유독 한국방송의 프로그램은 똑같은 포맷, 여전한 패널, 바뀌지 않는 진행자를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국적으로 강력한 전파 망을 자랑하는 한국방송의 힘을 믿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KBS에 채널을 고정한 시청자가 전국적으로 많은 것으로 안다. 특히 고령층의 지지를 받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반면 젊은 시청자들은 많이 떠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만 해도 주말 연속극을 시청한 게 까마득하다. 재난 방송이 나올 때는 보기도 하는데 금세 채널이 돌아간다. 


지난해 KBS의 적자 폭이 천억 원에 가깝다는 뉴스를 봤다. 방만한 경영도 문제이지만 외부 패널이나 연예인 진행자가 많은 프로그램 제작 형태도 한몫한다는 생각이다. 수신료를 내지 않는 세대가 거의 없는데 영업 손실이 저만큼이라는 것은 영업 전략이나 행태에 문제가 존재했다는 말일 것이다. 제작이든 배급이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기존의 시청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은 시청자의 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청자의 권리는 새롭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재방송 콘텐츠는 이제 방송국의 무기?

오늘도 케이블 채널에는 재방송이 판친다. 지난주에 방영했던 프로그램의 재방송은 물론이고 몇 해 전에 했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까지 나온다. 여행을 주제로 잡은 프로그램 역시 단골 재방송 프로그램이다. 화질이 떨어지고 옷매무새, 화장법, 헤어스타일 혹은 언뜻언뜻 나오는 대사나 설명을 통해 그 프로그램의 연식이 얼마나 됐는지 힌트를 얻곤 하지만 오래전에 방영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전에 흥미롭게 봤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다시 시청하면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탤런트나 영화배우의 앳된 모습에서 세월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연예인을 추억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콘텐츠 경쟁에서 점점 밀리는 거대 미디어가 생각해 낸 꼼수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요즘처럼 콘텐츠 시대에 어울리는 묘안일 수도 있겠다. 연속극이라는 터널에 빠져 자꾸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 양으로 따지면 기존 미디어 매체가 월등하다. 재방, 삼방할 드라마만 해도 수백, 수천 편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저작권도 갖고 있으니 틀면 수입이 될지도 모른다. 다른 방송에 방영 판권을 팔기만 해도 엄청난 수익이 생길 것이다. 밑천이 아직은 그득해서 그런지 기존 지상파 방송국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보다 기존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막장드라마의 시초라 입방아에 오른 드라마를 보는 일이 잦다. 모든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닫는 요즘에 보면 언뜻 귀여운 막장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막장 드라마는 재방, 삼방해도 막장에 다름 아니다. 질 낮은 콘텐츠는 언젠가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을 독점하면서 생산한 콘텐츠를 팔고 재방, 삼방하면 그다음에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시청자

미디어 시장에서 순수한 소비자는 사라질지 모른다. 아니 이미 사라졌다.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 띠처럼 생산하면서 소비하는 일인 방송인이 판친다. 이미 케이팝은 세계적인 음악으로 승승장구 중이고, 마라탕이 골목식당을 점령했듯 미디어를 소비하는 이들은 바뀌었다. 거대 미디어가 만든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던 시청자들은 입맛에 맞는 맛집을 찾듯 프로그램을 찾아 나선다. 그만큼 미디어를 소비하는 패턴, 이용 방법, 시간이 각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인 시대다. 그런데도 클릭이나 섬네일을 찾는 따위의 행위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리모컨을 누르는 시간은 여전히 달콤하기에 더욱 TV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없다.


날마다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오고 경쟁하는 세상, 거대 미디어 매체가 갈 길은 자명하다. 더욱 다양하고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정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그 답이다. 우선 장수 프로그램부터 살피면 좋겠다.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의 수명은 여전히 한정적이고 유한한 것. 이제 어제 새로 생긴 프로그램을 함께 보면서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각자의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혼자 웃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큰 화면을 수놓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하는 시간도 필요하리라. 세대를 뛰어넘는 프로그램은 차치하고 그저 소소하지만 그윽한 일상을 보여주고 쨍한 하늘, 명징한 광풍 명월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면 족하다. 단, 아무리 시청률이 높아도 사람들이 좋아해도 백 회를 넘지 말 것. 수신료의 값어치를 그 무게를 항상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 방송 프로그램의 오래된 미래는 그 횟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 한 번을 봐도 기억에 남을만한 방송 콘텐츠를 꿈꾼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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