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보현수조 혁목의 실체(2)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 기사승인 : 2020-04-24 10:49:03
  • -
  • +
  • 인쇄
울산 동백

영축산에 나는 이름난 꽃이나 기이한 나무

낭지법사가 “중국 청량산으로 가서 대중 속에서 강의를 듣고 조금 후에 돌아오곤 했다 …중략… 어느 날 그 절의 주승이 다른 절에서 온 스님은 각자 사는 곳의 이름난 꽃이나 기이한 나무를 도량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낭지법사는 영축산 혁목암에 살았다. 때문에 각자 사는 곳의 이름난 꽃이나 기이한 나무 꽃은 영축산 즉 현재의 문수산에 나는 이름난 꽃이나 기이한 나무다. 영축산에 나는 나무 가운데 “이름난 꽃이나 기이한 나무”에 해당되는 가장 적합한 나무는 동백으로 볼 수 있다. 동백나무는 대부분의 다른 식물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겨울과 이른 봄에 꽃이 핀다. 꽃이 질 때 꽃잎이 시들거나 한 잎 한 잎 낱개로 떨어지지 않고 꽃이 피어 있을 때와 다름없는 상태에서 통째로 떨어져 바닥에 깔린다. 또한 동박새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는 새나름꽃(조매화)이라는 면에서 앞에서 제시한 조건에 잘 부합된다. 필자가 보기에도 동백나무는 한국에 나는 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들에 속한다. 옛날 사람들도 매우 아름다운 꽃으로 칭송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최고의 시인 이규보와 사육신 성삼문이다. 생애에 2000수 이상의 시를 남긴 이규보는 시 ‘동백화(冬栢花)’에서 동백을 최고 아름다운 꽃으로 읊었다. 

 

“복사꽃 오얏꽃 비록 아름다워도 부박한 꽃 믿을 수 없도다(桃李雖夭夭浮花難可恃)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松柏無嬌顔所貴耐寒耳)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此木有好花亦能開雪裏)
곰곰 생각하니 향(또는 측백)나무보다 나아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細思勝於栢冬栢名非是)”


성삼문도 그의 시 ‘눈 속의 동백(雪中冬柏)’에서 동백꽃을 매화보다 곱고 아름답다고 했다.


“고결한 매화가 훌륭해 보이나 곱고 아름다움 혹 지나치리라(高潔梅兄行嬋娟或過哉)
이 꽃이 우리나라에 많으니 마땅히 이를 봉래라 일컫네(此花多我國宜是號蓬萊)”
중국인들도 중국을 대표하는 명화 10화에 동백꽃(茶花)를 넣고 일본도 세계화훼박람회가 열릴 경우 일본을 대표하는 꽃으로 왕벚꽃보다 동백꽃을 출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꽃사가(花史家)가 있다. 나폴레옹 1세의 비 조세핀도 베르사이유궁에 동백정원을 만들었다.

서천국과 신라에 나고 중국에는 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던 식물

서천축국과 해동 신라의 양 영축산에는 나고 중국에는 나지 않는 꽃이면서 중국의 불교에서 귀하고 신성하게 여긴 꽃은 어떤 꽃이 있을까? 


식물은 그 식물이 살아가는 환경의 조건이 있다. 서천축의 영취산은 오늘날 인도 북부의 라즈기르(Rajkir, 옛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청량산)이다. <삼국유사> 낭지와 보현수의 배경이 된 영취산은 울주군 청량면에 있었던 영취산 즉 오늘날의 문수산이다. 문수산에 자라고 있으면서 붉은색으로 대표되고 밝음, 태양의 의미를 가진 나무는 동백속(Camellia)의 동백과 진달래속(Rhododendron)의 진달래다. 인도 영취산에 자라고 붉은 색깔로 피는 중요 식물은 동백속, 진달래속, 석류속(Punica)의 식물들이다. 


철쭉속의 종은 붉은 꽃, 분홍꽃, 흰꽃이 섞여 있고 열매는 꼬투리다. 석류는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긴 식물이고, 중국에서도 자랄 수 있다. 꽃이 붉고, 신성하게 여겼던 나무다. 석류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모두 중요시하는 식물이다. 동백나무는 중동지역에서 자라지 못해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식물이다. 그런데 동백나무는 봄 또는 일부가 겨울에 석류꽃 색깔을 닮은 꽃이 피고, 여름에 석류를 빼닮은 붉은 열매가 열리며, 가을에 열매가 벌어지면 비록 검지만 석류의 씨를 닮은 씨가 가득 들어 있다. 그래서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에서는 신라에서 들어온 동백에 석류의 이미지를 갖게 됐을 것이다. 


현재는 중국에 동백나무를 포함한 동백속 식물이 많이 있으나 수당시대까지 중국 문화의 중심은 지금의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한 소위 중원지방이었고 중원은 내륙지방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해안지방에 나는 동백나무가 있다는 걸 잘 몰랐다. 중국의 <이태백시집주(李太白詩集註)>, <태평광기>(太平廣記, 李昉, 978), <유서찬요(類書纂要)> 등에 “해석류는 신라국에서 나왔는데 꽃이 매우 선명하다(海紅花 出新羅國 甚鮮)”, “해홍이 신라국에서 들어왔다(海紅來新羅國)”, “신라에는 해홍과 해석류가 많다(新罗多海红并海石榴)” 등의 내용이 수록돼 있다. 당시 진·수·당은 신라와 왜(일본)에서 조공무역으로 보내준 동백을 외국(海外)에서 들어온 석류라고 해 해석류(海石榴), 해류(海榴)라고 적었다. 중국의 시에 당시 동백의 이름 해석류나 해류(海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남북조시대(557~589) 강총(姜總)의 시 ‘산정춘일(山庭春日)’부터이고 당송시대에 신라, 고려에서보다 훨씬 많은 동백시가 읊어졌다. 

 

낭지가 활동한 시기는 5~7세기이고 당시 중국에서는 동백꽃이 대단히 희귀한 식물이었다. 이 태백의 시 ‘영린여동창해석류(咏邻女东窗海石榴)’에도 동백이 대단히 희소하다는 구절이 있다(海榴世所稀). 동백 즉 해류(海榴) 또는 해석류(海石榴)는 그 종자가 동해 신라에서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因来自海外,故名;也有说其种由东海新罗国). 석류(石榴)는 서역(安席國)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서류(石榴来自西方,故名西榴)라 한다. 그래서 고대 중국 사람들은 동백을 외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식물이고 모양이 석류를 닮았다고 해 해석류(海石榴)라고 했다.


인도의 영취산 등 인도 동북부와 네팔, 부탄 등에 동백나무속에 속하는 나무가 분포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인도 북부와 네팔의 산간에는 당동백(Camellia reticulata), 키씨동백(Camellia kissi), 운남동백(雲南山茶, Camellia pitardii var. yunnanica), 차(Camellia sinensis), 인도대엽차(Camellia sinensis var. asaminica), 카우다타동백(Camellia caudata) 등이 자생하고 있다. 특히 운남동백의 꽃은 색깔과 모양이 해를 닮았다.
 

▲ 운남동백의 꽃


석류, 마귀, 부처에 얽힌 전설

석류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에서 모두 중요시하는 식물이다. 동백나무도 꽃이 붉고 잎이 빛나고 또 깨끗하다. 동백나무는 중동지역에서 자라지 못해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중요시 하지 않는 식물이다. 그런데 동백나무는 석류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동양에서는 석류를 오래전부터 포도·무화과와 더불어 중요하게 여겨왔다. 가톨릭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 왕은 석류과수원을 갖고 있었고 한다. 


인도에는 석류와 마귀와 부처에 얽힌 전설 ‘비단 주머니 속에 든 새빨간 보석’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인도의 어느 마을에 어린이를 잡아가는 마귀할멈이 있었다. 마귀할멈은 남의 어린이들을 잡아다 보석과 바꾸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여러 날 계속되는 마귀할멈의 어린이 납치가 알려지면서 마을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어린이들은 절대 혼자서 밖에 나가 놀지 못했다. 반드시 어른의 손을 잡고 외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어린이들은 어린이끼리 만날 수도 없었고 어른은 어른대로 반드시 어린이와 함께 있어야 하므로 많은 불편이 따랐다. 마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찾아가 대책을 세워 달라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마귀할멈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그녀의 딸 하나를 감춰 버렸다. 


마귀할멈은 자식을 천 명이나 두었지만 한 명의 자식이 없어졌기 때문에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마귀할멈은 더욱 난폭해져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자식 못 봤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다녔다. 부처님께서는 마귀할멈을 향해 말했다. “너의 아이 천 명 중에서 겨우 한 명을 잃었는데 그처럼 슬퍼하느냐?” 마귀할멈은 부처님이 원망스럽다는 듯 “당신은 자비의 화신이라 들었는데 어째서 남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하십니까?”라고 하며 부처님도 다 소용없다면서 물러가라고 화를 냈다. 부처님은 다시 말했다. “내가 너에게 루비를 마음껏 가져가게 할 테니 어린이들을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느냐? 그렇게 하면 너의 자식도 내가 찾아 주마.” 마귀할멈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아무리 악한 마귀할멈이라도 여느 부모와 같은가 보다. 부처님께서는 빨간 루비가 산더미처럼 쌓인 창고로 마귀할멈을 데려갔다. 그리고 커다란 자루를 주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 담아 가라고 했다. 마귀할멈은 루비를 자루 가득 담았지만 너무 무거워 도저히 들 수가 없었고 자루에 깔려 쓰러졌다. 사람들이 할멈을 흔들어 깨웠지만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죽은 마귀할멈의 손에는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그 열쇠로 어린이들이 갇혀 있는 방문을 열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몇 해가 지났을까? 할멈이 쓰러진 자리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자랐다. 그 나무에서 달린 열매는 붉은 비단 주머니 같았다. 잘 익은 열매 껍질이 저절로 갈라지면서 루비처럼 반짝이는 씨가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 열매가 할멈의 루비 주머니라고 생각했다. 사찰의 벽화에 아이를 지켜주는 식물로 석류를 그렸다.

연화 영기화생 해석류화문과 동백꽃 그림

석류꽃은 씨방과 꽃받침 사이를 끈으로 동여맨 주머니 같은 모양이다. 서양에서는 꽃받침이 왕관 모양이라 부귀를 상징하는 과일로 여긴다. 꽃 색은 붉은 색이 대부분이고 흰색도 있다. 겹꽃과 홑꽃 등의 품종이 있다. 석류의 원산지는 중동의 페르시아(이란) 지방이다. 석류나무는 기원전 130~120년경 한나라 때 장건이 동양에 들여왔다. 두꺼운 껍질이 터지면 루비처럼 반짝이는 과육을 가진 씨가 드러난다. 


석류는 안에 많은 종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이 된다.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의 문양에는 포도문양과 석류문양·동자문양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포도·석류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자손을 많이 낳고 특히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기복적 뜻이 담긴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혼례복뿐 아니라 기복적 의미가 강한 민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신왕국시대의 이집트, 페니키아, 고대 로마 등에서는 신성한 식물로 여겨졌으며, 페르시아에서는 과일이 왕홀(王笏)의 두부(頭部)를 장식했다. 그리스의 로도스섬에서는 꽃이 왕실 문장의 일부로 사용돼 권위의 상징이 됐다. 그 배경에는 꽃받침 조각의 모양을 왕관으로 보았다는 점과 다산의 상징으로 생각했다는 점 등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로서 묘사되고 있다. 


불교 건축 단청에서 도안 무늬의 화문류(華紋類)에는 해석류화(海石榴華), 보상화(寶相華), 연화(蓮華), 권두합자(圈頭合子), 표각합훈, 마노지(瑪瑙地), 어린기각, 권두시(圈頭枾) 등이 있다. 단청문양의 종류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호(好)를 보여주는 극채색의 세계라 할 수가 있다. 단청 도안에 연꽃 문양이 많다. 우주에 충만한 영기가 연꽃모양으로 조형화함에 따라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고차원으로 승화된 영기꽃(靈氣花)이다. 한국의 불교 그림에 영기꽃의 씨앗이 보주의 개념으로 승화돼 있다. 연꽃 문양 안에 석류의 씨방을 그려 넣어 석류 씨방 안의 붉은 씨앗들이 보주가 되게 했다. 그리고 해석류문의 연화머리초에 항아리가 그려지는데 이를 석류동(石榴垌)이라 한다. 석류 위에 항아리(사리병, 사리함)가 그려진 무늬의 총칭이다. 부석사 괘불 중앙의 해석류화문에 석류동이 그려져 있다. 연꽃은 영기꽃이고 그 꽃의 씨앗이 생명의 근원이므로 씨앗이 승화해 보주가 돼간다는 깨달음이 표현돼 있다. ‘여래나 보살이 보주에서 화생한다’는 관념이 ‘여래와 보살이 씨방에서 화생한다’는 조형으로 발전해 있다. 우리 문화에는 고구려 장천 1호 분의 벽화 가운데 연꽃 안에 부부를 그려 넣은 것도 있고 연꽃 속에서 환생하는 심청의 설화도 있다. 대흥사 영산탱화, 백의관음보살 도에 양쪽 보조 보살이 동백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단청과 탱화에 해석류문이 그려져 있다. 불교의 중심 사상인 화생을 연꽃 꽃밥 자리에 석류의 씨방과 보주를 그려 넣어 해석류화문으로 표현했다. 해석류화문은 연꽃잎을 동백꽃잎으로, 석류의 씨방을 동백 열매로 보고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 불교 사원 단청의 해석류화문


석류는 8세기경 중국을 통해 한반도로 유입됐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으로 나타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암막새가 처음이다. 암막새의 석류당초문(石榴唐草紋)을 통해 이미 석류가 번영과 풍요의 상징으로 생활 속에 뿌리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류와 석류문이 도입된 시기를 참고할 때 혁목암의 혁목이 석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역사의 사국 시대와 중국의 수당 시대 신라에서 중국에 들어갔고 꽃과 열매가 석류와 닮아서 해석류라고 부른 것이 동백이다. 해석류화문을 해석류를 기본으로 도안한 것으로 보면 혁목은 동백나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석사 괘불의 석가여래 광배에 해석류화문이 그려져 있다. 부석사 괘불은 광배에 연꽃의 화관 위에 석류의 씨방이 영기화생하고 있다. 영기문에서 연꽃모양 영기문이 화생하고 그 영기꽃에서 석류의 큰 씨방 주머니가 화생하고 그 씨방에서 보주(寶珠: 식물학적으로 씨)가 하나 나오지만, 이 하나에서 나올 보주는 하나가 아니고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올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무량한 보주들이 계속 생겨나서 확산하고 있다. 만일 연꽃이라면 씨방이 사발형 연밥이라야 하는데 주머니형 석류 모양이니 연화문이 해석류화문으로 연기된 것이다. 해석류화문은 해석류화 즉 동백꽃으로 도안화된 것이다. 해남 대흥사 영산회괘불탱, 보성 대원사 백의관음보살, 부안 내소사 백의관음보살 좌상, 청도 운문사 수월관음보살 그림에 동백꽃을 손에 든 보살이 그려져 있다. 또 안동 봉정사와 양산 천태사 벽에 동백꽃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불교에서 동백꽃의 불교적 이미지를 수용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부석사 괘불 광배

 

▲ 부석사 괘불 광배 확대

필자는 단청, 괘불 등의 해석류화문은 연꽃잎을 동백꽃잎으로, 석류의 씨방을 동백 열매로 보고 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불교와 해석류 즉 동백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연구한 저작물이 없어 연꽃무늬와 석류무늬가 합쳐진 문양이 해석류화문이란 논리에 부족함이 있다. 부족하다고 폄하하고 비난만 하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보충 연구를 통해 밝혀 나가는 것이 학문이고 발전이다.

만다라화(曼佗羅-華)와 동백꽃

동백을 중국과 일본에서는 만타라화(曼佗羅華, 曼佗羅花)나 만다라수(曼佗陀樹)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만다라화는 인드라의 천계에 있는 네 가지 꽃 가운데 하나로 천상계에 핀다고 하는 성스러운 꽃이란 뜻이다. 많은 경전 속에서 기적이나 감동적 순간 혹은 경이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꽃비처럼 쏟아져 내린다고 묘사하고 있는 만다라화는 일명 파리질다수(波利質多樹), 상아수(象牙樹)라고 하며 콩과에 속하고 학명은 ‘Erythrina indica’이고 산스크리트어(Sanskrit)로 ‘Mandara, pārijāta, पारिजात라고 부르는 식물이다. 영명으로는 ‘Indian Coral Tree’, ‘Mandara, Sunshine Tree’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중국에서는 꽃이 상아처럼 생겼다고 해서 상아화(象牙花)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약용으로 사용하는 만타라화(曼陀羅華)는 불교의 만타라화나 만타라수와 다른 가지과 독말풀속에 속하는 1년생 풀이다. 중국의 본초학에서 부르는 이름은 洋金花、野麻子、醉心花、闹羊花、凤茄花 등이다.

 

▲ 중국 산다화(동백) 품종 만다라(曼茶羅)


“만다라꽃과 마하만다라 꽃비가 비 오듯~, 만다라꽃들을 부처님께 흩어 공양하니~(법화경),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대반열반경), 밤낮으로 천상의 만다라 꽃비가 내린다(불설 아미타경)” 등 많은 경전 속에서 등장하는 이 만다라화는 그 꽃을 본 사람들이 기적처럼 여기고 환희하는 꽃의 대명사처럼 다뤄진 식물이다. 부처님의 생애와 활동을 찬양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전기인 <불소행찬(佛所行讚)>에서도 과거칠불을 섬기고 존경했던 용왕들이 이 꽃비를 내리는 일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경전 속에서의 만다라화는 <법화경(法華經)>의 여러 품(品)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장아함경(長阿含經)>, <기세경(起世經)>, <잡아함경(雜阿含經)>, <대보적경(大寶積經)>, <관세음보살수기경(觀世音菩薩授記經)>, <아육왕경(阿育王經)> 등 수많은 경전 속에 등장한다.


“이 나무는 키가 15m 정도로 꽃은 잎이 진 후 줄기 끝에서 모여 한마디로 주렁주렁 많은 양의 꽃이 피는데 나무와 가지에는 가시가 있다. 잎이 다 떨어진 커다란 나무에 가득 핀 꽃들은 비가 되어 쏟아질 듯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꽃이 겨울이 지난 직후 초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달 피어 있기 때문에 동남아에서는 불멸의 상징으로서 인식되고 있다.”(민태영, 2011)

 

▲ 불전의 민다라화


동백꽃을 만타라화나 만타라수라고 하는 것은 인도의 콩과에 속하는 만다라화는 아니나 그 만다라화의 생태와 닮은 동백꽃을 만다라화 대신으로 삼은 것이라고 본다. 동백꽃이 만다라화를 닮았다고 본 점은 가지 끝에 많이 매달린 붉은 꽃, 나무 밑에 꽃비 온 것 같이 통째로 떨어져 있는 꽃송이, 겨울이 끝나자 이른 봄에 꽃이 피는 개화 시기와 긴 개화 기간, 나무의 긴 수명 등 때문이다. 동백꽃의 속성이 만다라화나 불교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중국의 동백 원예 품종 중에 ‘만다라(曼茶羅)’라는 품종이 있고 미국 아칸소수목원에서 당동백을 교배시켜 꽃이 크고 꽃잎이 빛나는 ‘부처(Buddha)’라는 품종도 개발했다. 

 

▲ 수목원에서 개발한 부처동백(Camellia ‘Buddha’)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우규 (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 겸 대표

오늘의 울산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많이 본 기사

정치

+

경제

+

사회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