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에 동백꽃이 피면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 기사승인 : 2020-09-10 1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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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훌훌훨훨’

“혹시 섬에 반려견 데리고 들어갈 수 있나요?”

“네 너무 큰 덩치만 아니면 그러셔도 돼요.”


“정말요. 다른 섬들은 배에 태울 수 없다고 거절당했거든요.”

“섬에도 개가 살고 있어요. 주민이 키우는 개가 있으니 괜찮아요.”


반려견 나무를 키우는 나는 국내여행을 할 땐 자연스럽게 함께 다닐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애견 동반 숙소도, 식당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는 동반 불가가 많고 운송수단인 배나 대중교통도 용이하지 않다. 태어나 처음 배를 타고 하는 섬 여행이라 나무도, 나도 들떴다. 큰 유람선의 모터소리에 긴장한 듯 보이는 나무는 끼륵끼륵 소리를 내며 배를 따르는 갈매기 소리에 겁을 잔뜩 먹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바닷길을 가르고 함께 도착한 나무와 첫 섬 여행지가 지심도다. 

 

▲ 지심도는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항구로 들어오는 유람선.


후박나무, 소나무, 거제 풍란, 여러 종류의 자생종 식물들이 많지만 거의 동백나무가 섬의 70~80%까지 차지해 동백섬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아름다운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음심(心) 모양으로 생겨서 이름이 붙여졌다. 멀리서 보면 지심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숲처럼 보일만큼 나무들로 섬 전체가 덮여 있다. 자연자원의 보고다. 백 년이 넘게 자란 동백나무들은 자연스럽게 터널을 이루고 그 오붓한 동백 동굴 끝에서 환하게 들어오는 빛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마음 두근거리는 이름을 가진 지심도에 첫발을 딛고 목줄을 채운 나무와 함께 산책을 시작했다. 

 

▲ 백 년을 넘긴 동백이 지심도의 70~ 80%를 차지하고 있다.

 

▲ 지심도에는 동백나무 말고도 후박나무, 거제 풍란 등 수많은 수종들이 자연자원을 이루고 있다.

지심도의 동백은 12월에 피기 시작해서 이듬해 4월이면 꽃을 떨군다. 한창 붉은 동백을 보려면 2월에서 3월이 가장 아름답다. 동백이 아직 한창 핀 시기는 아니지만 제법 사람들이 섬으로 많이 들었다. “어머나, 개가 다 섬 구경을 왔네.” 사람들의 시선이 나무에게 향한다. 나무가 지심도에 코를 박고 여기저기 땅 냄새를 맡고 다니는 모습을 다들 불편함 없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만물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듯 여러 생명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로운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열면 아름답다. 땅에 떨어진 붉은 꽃향기가 좋은지 노란 꽃술을 코에 잔뜩 묻힌 나무가 신이 났다. 

 

얼마 전 그런 추억이 있는 지심도의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거제시가 지심도를 명품섬 조성사업으로 개발을 시작하려고 하면서 지심도에 있는 주민들을 섬에서 강제 이주시킨다는 말이었다. 15가구 21세대 36명이 살고 있는 지심도는 원래 붉은 동백으로 아름다운 향기만 간직한 섬은 아니다. 일본 본토는 물론 대마도와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인 데다 대한해협을 지나는 바닷길의 길목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오래전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돼 왔다. 

 

▲ 지심도에서 바라 본 섬의 우측, 기암괴석과 절벽을 이루는 풍광이 자연 그대로 절경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대포를 설치해 병참기지로 사용하면서 섬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섬을 요새화했다. 광복 이후에도 지심도는 온전히 우리 땅이 아니었다. 1963년까지도 우리 정부는 3년마다 임차계약을 맺고 건물만 주민들에게 세를 줬을 뿐 서류상 땅은 일본 육군성 소유였다. 1971년에야 대한민국 국방부로 소유권이 이전됐고, 이후 우리나라 해군에서 관리해왔으나 본래 거제시의 관할이란 점을 내세워 2005년 5월 거제시민의 지심도 반환 운동이 시작됐다. 


오랜 기간 반복하던 반환 운동 끝에 12년간의 우여곡절을 겪고 2017년 3월 9일 거제시로의 소유권 이전 사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당연히 그 시절의 귀한 역사적 사료들이 남아있다. 탄약고와 포진지를 포함해, 전등소, 근대문화유산에 필적한 만한 것들이 현재 조사 중에 있다. 겨울이면 섬 전체를 뒤덮는 동백꽃은 그런 지심도가 가진 울음인지도 모르겠다. 


거제시는 이를 두고 주민들은 임대하는 방식으로 살게 된 것인데 불법으로 펜션을 운영하고 식당을 영업하는 것이라며 주민을 섬 밖으로 강제 이주시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섬연구소 강제윤 선생이 이 문제를 SNS에 이슈화시키면서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됐다. 많은 지상파에서 관심을 갖고 방송이 됐고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일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법적으로 완벽하게 보호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거제시가 처음 계획을 바꿔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고 개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이 쉽지 않다. 


“평생을 요 살아놓응게 육지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 큰아들이 집에 방도 만들어놨다꼬 부산에 오라 캤는데 가보니 답답해서 못 있겠더라. 나는 이제 장승포만 가도 답답하다. 우리 고양이 ‘이쁜이’하고 여기서 이렇게 살 거라. 나는 평생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우짜란 말이고.”


65년을 지심도에서 살아오신 새끝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섬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마음을 한겨레21의 커버스토리에서 읽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온기 없는 섬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것도 오랜 시간 섬을 지켜온 주민을 쫓아내고 말이다. 그런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지자체에서 해온 개발 방식은 너무도 눈에 훤하기만 하다. 이름난 유명한 곳을 가면 죄다 길고 긴 다리들이 출렁이고 짚라인을 연결해 이익 창출에만 열을 올린다. 섬과 어울리진 않는 대형 리조트라든가 골프장,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철근들을 심고 올리고 고유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지심도는 보기 드물게 아직 개발이 많이 이뤄지지 않은 맨얼굴을 가진 섬이다. 그나마 섬 주민들이 가꾸고 다듬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명성에 비해 섬이 너무 초라하다, 원시적이다, 말들을 하지만 이제 그마저도 겨울 본래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섬이다. 지심도 옆에는 보타니아 정원으로 유명한 외도가 있다. 사람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도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섬 같았다. 당연히 반려견은 동반할 수 없으면 숙박도 되지 않는다. 비싼 입장료와 유람선료를 내고 들어가서 다만 바다 위에 떠있는 정원을 산책하고 나오는 것이 전부다. 섬에 다시 들고 싶은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평생을 유인도 무인도, 전국의 섬을 다니며 고독과 사랑했던 이생진 시인의 동백꽃이란 시가 생각난다.
 

▲ 매년 12월이면 개화해 2~3월에 절정을 이루고 4월이면 꽃잎을 떨구는 지심도 동백꽃.

동백꽃


이생진

섬에는 어딜 가나 동백이 있다
동백이 없는 섬은
동백을 심어야지

동백은 섬을 지키기에
땀을 흘렸다.

동백은 바위에 뿌리 박기에
못이 박혔다.

동백은 고독이 몰려와도
울지 않았다.


섬연구소는 최근 거제시가 지심도 개발을 빌미로 주민 강제 이주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청원을 제기했고 조사 중에 있다. 모쪼록 좋은 결과가 나와서 거제시만의 섬이 아닌, 국민의 섬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동백나무들이 자연스럽게 기대 터널을 이루고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붉은 동백터널을 지나는 낭만도 만끽할 수 있다.

올해 겨울 동백이 피는 겨울이 오면 나무와 함께 지심도 여행을 다시 갈 계획이다. 여전히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고향 같은 섬이길 바란다.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섬이 아니라 외갓집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 같은 섬. 나무가 지심도의 바다 냄새와 동백꽃의 향기를 기억할까. 개발로 한창 앓고 있는 지심도를 지키려고 땀을 흘리고 있을 백 년이 넘은 동백나무들을 생각하니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최영실 포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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