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들

강현숙 시인 / 기사승인 : 2019-06-13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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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보는 세상

나는 비교적 쓸쓸하고 고즈넉하고 사람도 보이질 않는 한적한 풍경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적 겨울 이른 아침, 거적으로 문을 단 시골 뒷간 창으로 내다본 풍경은 강렬하다. 간밤 쌓인 눈으로 하얗게 덮인 층층의 논들 저 너머를 지나고 다시 눈으로 덮인 겹쳐진 산들의 풍경 너머로 깔리는 풍경들은 거의 몸에 밴 풍경이다시피 느껴질 정도다.


집 담벼락으로 누군가 살다 간 시간의 흔적들이 묻어나오는 그런 집들의 골목 풍경도 좋다. 밭둑에 뜬금없이 누군가 심어놓은 리빙스턴데이지 꽃을 발견할 때보다 산길에 연분홍 찔레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만날 때가 더욱 경이롭다.


올해는 유난스레 참나무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들의 풍경이 궁금하다. 작년 가을 늦게까지 울긋불긋 단풍으로 눈길을 잡아당기던 그 나무는 갈참나무이겠다. 아침 햇살에 노랗게 일렁거리며 반짝이던 저 설레는 풍경은 상수리나무들이었겠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에는 일탈과 낯익음이 함께 공존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일탈이란 아주 낯선 곳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낯선 그곳에서 존재의 원형적인 익숙함을 만나게 되는 순간인 듯하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난 다음 날은 홀로 이른 아침 주변 풍경을 둘러보곤 한다. 아직 누구도 맞이하지 않은 신선한 아침이 주는 오롯한 그 매력을 즐기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느끼기만 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 남게 되는 분홍빛 메꽃에 맺힌 이슬, 처음 만나는 듯한 시원적인 풍경의 바다, 이런 것에 묻어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원시성’, ‘순수성’, ‘처음 이전의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대답이 없어도 좋았다. 어차피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처음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길들 위에 서 있다는 찰나에 대한 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풍경은 역사다. 풍경은 공간도 포함하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품는다. 풍경은 원망도 내려두고 아쉬움도 보내주고 후회도 지운 채 남는 빛깔들을 품는다. 나는 그런 풍경들에 매혹을 품는다.


집의 풍경이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일까. 나의 부모가 초가를 떠나고 판잣집을 떠나고 세 든 집을 떠나고 벽돌로 된 이층집을 지을 때 일생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몸을 위탁하는 것이다. 몸 하나 위탁하는 집이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외관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몸의 종착지가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세계의 불안이다. 산자락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에 눈을 뜨지만 이곳도 떠나야 할 곳인 것이다. 몸을 받아 평생을 이어가는 풍경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풍경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풍경은, 그래서 저마다 빛깔을 갖는다. 늘 떠나는 빛깔을 갖는다.


떠나보지도 않고 떠나간 자리든 떠나지 않은 자리든 한 사람이 있을 자리는 어디든지 같다고 말하면 늘 떠나는 이가 그렇게 말한다. 떠나보지도 않고 말한다고 한다. 그때는 말문이 막혀 웃고만 말았는데 오늘 문득 할 말이 떠올랐다. 떠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내 몸 밖을 나서는 것이 아닌지, 자유자재로 내가 몸 밖을 나섰다가 자유자재로 타자가 되었다가, 사물이 되기도 하고, 공간이 되기도 하고, 허공이 되기도 하고 하는 일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일상을 지나가는 거리에서는 자신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숨게 되는 껍데기 같은 시간들을 만나기 쉽다. 비와 바람과 공기와 햇빛과 거리의 간판과 거리의 집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 스쳐 지나가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비의 내면을, 공기의 속삭임과 햇빛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거리와 마주 보고 말을 한다. 소통을 한다.


나는 내가 아니라 이름 모를 나무일 때가, 석양이 수평선 너머로 떠나는 풍경일 때가, 우포늪에 가시연꽃이 피는 그 찰나일 때가, 일억 수천만 년의 시간을 품은 습지를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그때 비로소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내가 아니고서야, 나를 벗어버리고서야 그때 비로소 내가 사는 풍경을 완성하곤 하는 것이다.


강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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