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찜(2)

심규명 변호사 / 기사승인 : 2019-04-17 10: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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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명의 이심전심

토요일 저녁이었다. 서울에서 학업을 하고 있는 딸애를 빼고는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큰놈은 공익근무중이라서 늘상 얼굴을 보고 살지만 작은 놈은 이제 막 제대를 한 터라 날쌘 군사처럼 잠시라도 집에 붙어 있을 새가 없다. 같이 살고 있지만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친구를 찾아다니는 꼴이 심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날쌘 군사였던 적이 있은 터라 가끔씩이라도 식사 자리를 같이 하자는 선에서 타협을 본다. 그래서 마련된 저녁 자리다. 식사를 마칠 즈음 아내가 다음날 새벽에 종교 행사에 간다고 한다. 그 말의 본 뜻은 아침은 알아서 챙겨 먹으란 말이다. 달걀찜이 다음 날 아침 메뉴로 선택된 것은 아침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지 않았던 아내는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허전한지 지인들과 함께 종교를 믿기 시작했다. 사실 종교라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고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모습, 즉 사후세계에 대한 경험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에게 때로는 불안으로, 때로는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같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은 종교를 만들었고 종교는 그러한 목적에 상응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늘 우리 인류와 함께 있어 왔다.


종교가 이러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천국(천당)과 지옥에 대한 믿음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믿음들은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기준을 제시히기도 한다. 그렇게 종교는 인류에게 순기능을 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나는 종교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지 못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하여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파스칼의 내기’처럼 신을 믿지 않고 죽었는데 신이 존재하면 낭패를 볼 수 있지만, 신의 존재를 믿었는데 죽어서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면 천국에 갈 수 있고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 정도이다. 그렇기에 신의 영역인 사후세계는 신에게 맡겨두고 인간의 영역인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이처럼 종교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입증 가능한 근거를 가질 수 없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그 믿음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찰스 다윈이 그러했다. 다윈은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 한 명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다른 한 명은 1년 반 뒤에 사망했다. 그리고 큰 딸인 앤은 10살 때 사망했다. 당시의 영유아 사망률이 20~30%인 것을 감안하면 다윈의 불행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윈은 큰 딸인 앤을 유달리 사랑했다. 사랑의 깊이만큼 충격이 컸던 다윈은 신을 버리고 <종의 기원>을 저술해 진화론을 전파하게 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신이 특정 생명체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윈이 사랑한 큰 딸인 앤을 10살에 데려간 것은 크나큰 패착이다. 많은 사람이 의심 없이 믿어 왔던 창조론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마치 폭격을 받은 건물처럼 위태위태해졌으니 말이다.


새벽에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변의 이러저러한 행사에 같이 동행하는 후배인데 미처 챙기지 못한 행사가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후배의 전화를 받고 옷가지를 챙겨입던 중 아침 식사를 위해 달걀찜을 하기로 약속한 것이 생각났다. 시간을 보니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달걀찜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되지만 갑자기 달걀찜 하는 일이 귀찮아졌다. 달걀찜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약속을 저버린 아빠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윈을 무신론자로 만든 것이 사랑하는 딸의 상실인 것처럼 달걀찜이 아빠에 대한 신뢰를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숱한 갈등 속에 달걀찜은 선택됐다. 아직 아이들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그래도 달걀찜은 맛깔스럽기만 하다.

   
심규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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