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 둘러싸인 개운포 좌수영성

조은미 시민 / 기사승인 : 2021-12-20 0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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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향토사도서관 공동기획-향토사 답사

개운포 좌수영성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시민추진단으로 답사 갔던 날, 심한 비바람으로 성곽을 둘러볼 수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개운포가 고향인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님이 따로 안내하겠다며 번개 탐사를 제안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회원분들과 남구문화원에 모여서 함께 차를 타고 개운포로 이동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 아래 가지런히 자리 잡은 성곽의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상쾌합니다.

 

▲ 개운포 좌수영성 ©조은미 시민기자

먼저 안내판을 보며 성곽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발굴이 두 차례 있었는데, 발굴 결과 북문과 동문은 확인됐지만 서문은 아직 확실한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남문 역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성곽 남쪽에 있는 ‘산디먼당’에 체오정이 있었던 자리가 큰 옹성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 개운포성 남쪽 산디먼당 체오정 추정지 ©김진곤 울산향토사도서관 관장

1980년대에 찍은 선수마을 사진을 보며 사라지기 전 마을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디먼당 꼭대기에 체오정이 있었던 자리와 수많은 집 사이에서 김 관장님이 살았던 옛집의 위치도 알 수 있었네요. 성곽의 방향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옛 지명이 특이했는데, 서쪽을 수구너매, 동쪽을 동밖에, 남쪽을 나무나각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걸어가며 성곽을 둘러봅니다. 부분적으로 깨끗하게 복원된 남쪽 체성을 지나 동쪽으로 갈수록 흙더미와 함께 무너질 듯 오랜 흔적 그대로의 모습을 보입니다. 김 관장님은 주변에 사는 게들 때문에 성이 오래 못 간다고 하네요.


언덕에 오르는 입구 오른쪽에 개울이 있었다는 ‘깨불락’ 안내판이 보입니다. 성곽 주변에 서른 개가 넘는 안내판을 우리 김 관장님이 모두 만들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라진 안내판의 수도 많다고 하니,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언덕길로 오릅니다. 동문 터입니다. 발굴할 때 기왓장 등이 나왔다고 하네요. ‘객사먼디’로 객사가 있었던 곳도 들렀습니다. 지난여름에 왔을 때는 수풀이 무성해서 관장님이 지점을 알려줘도 어디가 어디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겨울이 되니 마른 잎들 사이로 지형이 잘 드러나서 보기가 편하네요. 객사가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사방이 탁 트여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비록 지금은 공장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객사가 멋지게 복원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치성입니다. 아래는 해자가 있습니다. 북문 터에서 북서쪽으로 나 있는 길로 곧장 가면 오른쪽에 ‘짱버듬’이라는 평평한 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이 삼월 삼짇날에 화전놀이를 하기도 하고 용연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기도 했답니다. 짱버듬 안내판의 오른쪽에는 긴 비탈길이라는 뜻의 ‘진등대비알’ 안내판이 있습니다.


북문과 마른 해자(황) 사잇길로 서쪽을 향해 내려갑니다. 치성에서 아름다운 외황강과 옛 염전 터가 보입니다. 북서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쓰레기소각장의 굴뚝과 송전탑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네요. 성곽 서쪽에 난 아랫길로 내려갑니다.


김 관장님은 강 건너편을 가리키며 근대기에 살았던 심원권(1850~1933)의 묘소가 신촌 마을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분은 남구 부곡동에 살았는데 64년 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그 일기는 관리가 안 된 탓인지, 결국 토지박물관에 이전됐는데,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사본을 입수해 간행했다고 합니다. 한자로 적혀 있어 해석은 힘들겠지만 당시 시대상과 주변 환경을 유추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남아 있어 참 다행입니다. 머지않아 완전하게 번역돼 읽어 볼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이 자료는 우리 향토사도서관에도 소장돼 있다고 하네요.


서문 추정지입니다. 하지만 이곳 능선의 고지대인 북문과 동문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이곳을 통해 외황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서문이었을지는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영시끝’은 울산 남구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곶’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남쪽으로 개운포, 북쪽으로 외황강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반드시 감시해야 할 곳이라 합니다. 바로 옆에 성암동 패총 안내판이 있습니다. 신석기인들의 생활폐기물(조개껍데기, 짐승 뼈, 물고기 뼈, 석기나 토기 파편 등)이 남아 있던 조개무지 유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해 당시 생활 모습과 자연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외황강에서 바라본 문수산(오른쪽)과 남암산. 문수산 자락에 있는 영축산에 망해사가 있었다. ©조은미 시민기자

개운포 성곽 남쪽에 있는 둑에도 염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염밭둑’이라 합니다. 개운교 아래로 따라갑니다. 이 부근이 ‘가시끝’입니다. 대나무가 보이는 곳 위로 ‘체오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울산군편 누정(樓亭)조에 체오정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개운포에 있고 천순(天順) 병술년(丙戌年)에 수군절도사 홍익성(洪益誠)이 세웠으며, 뒤에 절도사 이소(李昭)가 중수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남쪽 성벽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벽에 유일한 명문이 있다고 합니다. 안내판 바로 뒤로 성벽 가장 아래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명문 ‘未’는 간지의 한 글자라면 성을 쌓은 날짜일 가능성이 높고 ‘四二九’는 성곽의 축조 거리를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성곽 곳곳을 직접 걸어서 꼼꼼히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처음 확인했던 안내판을 다시 봅니다. 다시 보니 성곽의 구조가 더 잘 이해됩니다. 안내판의 몇 군데 수정할 부분(성곽 둘레 1270m→1264m, 간서끝→가시끝)은 관련 부서에 수정 요청을 해보겠습니다.


조은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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